영광굴비와 불교, 이런 사연이...

백제불교 처음 들어오고 원불교 탄생한 영광 법성포

등록 2013.05.18 11:34수정 2013.05.1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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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에 있는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풍경. 철쭉꽃 옆으로 부용루와 사면 대불상이 보인다. ⓒ 이돈삼


석가탄신을 낀 황금연휴다. 해외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쯤 가까운 곳에라도 발걸음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찾아갔다. '굴비의 고장' 영광 법성포다. 법성포는 백제시대 불교가 처음 들어왔던 포구다. 침류왕 원년, 서기 384년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 존자에 의해서다. 법성면 진내리 좌우두마을이 그곳이다.

법성포(法聖浦)의 지명도 여기서 유래됐다. '성인이 불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라난타가 백제에 처음 지은 절도 불갑사다. 절 이름에 부처 불(佛), 첫째 갑(甲)을 쓴다.


이렇게 영광과 불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석가탄신을 맞아 법성포로 간 이유다. 산과 들에 안개가 연하게 내려앉아 있다. 햇살은 여름날 같다. 차 안 라디오에서 조용필의 노래 '바운스'가 흐른다. 내 마음도 통통 튀며 설렌다.

숲쟁이 꽃동산.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와 연계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 이돈삼


숲쟁이 꽃길. 영광군 법성면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옆에 있다. ⓒ 이돈삼


먼저 찾아간 곳은 숲쟁이 동산. 느티나무 숲과 꽃길 산책로가 반긴다. 느티나무는 오래 전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으려고 심은 것이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에 법성포단오제가 여기서 열린다. 철쭉꽃 사이로 해당화도 꽃망울을 피워 고개를 내밀고 있다. 법성포구의 진한 갯내음이 코앞에서 묻어난다.

숲쟁이 길이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로 연결돼 사면 대불상(四面 大佛像)과 만난다. 암석에 동굴을 파서 만든 석굴사원 형식이다.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하고 좌우에 관음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한쪽은 마라난타가 부처님을 받들고 있다. 마라난타기념관 건립공사도 한창이다. 아래로는 형형색색의 철쭉꽃으로 채색된 불교 도래지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 있는 사면 대불상. 도래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 이돈삼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의 탑원. 백제에 불교를 전한 간다라의 탑원을 본떠 만들었다. ⓒ 이돈삼


사면 대불상 아래 부용루에서 법성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중국 동진에서 먼 길을 항해해 왔을 마라난타를 떠올려 본다. 옅은 안개 속에서 불상을 든 마라난타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부용루는 마라난타사의 임시 법당으로 쓰이고 있다. 석벽에 부처의 인연담과 일대기가 생동감있게 조각돼 있다.

철쭉길을 따라가서 만난 탑원도 독특하다. 야외 공원처럼 생겼다. 마라난타의 고향인 간다라 사원 같다. "간다라 지역의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본떠서 조성했다"는 게 간다라유물관에서 만난 전복심 문화관광해설사의 얘기였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 있는 간다라유물관. 간다라 지역의 불상 등 유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이돈삼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의 철쭉꽃길. 도래지의 풍경을 환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 이돈삼


간다라유물관에선 대승불교 본고장의 불상 등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한 지역의 것이란 생각에 전시품 하나라도 그냥 흘려버릴 수 없다. 여기서 마라난타를 영접했던 백제 사신들의 옷도 입어볼 수 있다.

사원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한국의 것과 많이 다르다. 불교유적이라기보다 공원 같다. 해외여행에 나서 인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넓은 마당에 우뚝 선 보리수나무가 눈길을 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나무다. 하트 모양의 연녹색 이파리를 무수히 달고 있다. 햇볕에 반사된 잎에서 광택이 느껴진다. 바닷가에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소망 기원.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서 만난 수많은 돌탑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풍경. 석가탄신을 맞아 연등이 걸려 있다. ⓒ 이돈삼


길은 여기서 해안을 따라 법성포구로 이어진다. 바닷바람에 실린 갯내음이 더 짙어진다. 갈매기도 고깃배를 따라 무리 지어 날고 있다. 법성포는 옛날 호남의 곡식을 모아 한양으로 올려 보냈던 포구다. 고려시대 조창이 설치됐다. 조선시대엔 호남 제1의 조창으로 번창했다.

옛 말에 "아들을 낳아 원님을 보내려면 옥당골로 보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다. 옥당골은 영광을 가리킨다. 고속도로가 없고 바닷길이 그 역할을 대신했던 시절의 얘기다.

바로 앞 칠산바다는 조기가 지나는 길목이었다. 사람의 원기를 돕는다는 조기(助氣)다.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이 이곳으로 귀양왔다가 맛을 보고 반해 임금에 진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임금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일화로 '굴비'란 이름을 얻었다.

지금도 포구 곳곳에서 굴비를 엮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굴비음식 전문점도 즐비하다. 하지만 파시가 형성됐던 옛 영화는 찾을 수 없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들어오는 고깃배와 흥청거리는 파시 풍경을 그려볼 뿐이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풍경. 건너편 백수해안도로에서 본 모습이다. ⓒ 이돈삼


법성포가 본고장인 영광굴비. 영광을 더욱 영광스럽게 하는 먹을거리다. ⓒ 이돈삼


굴비 덕장이 줄지어 선 포구를 지나 지방도를 따라 백수읍 길용리로 간다. 은선암을 지나서 만나는 해변에 자전거도로가 새로 개설돼 있다. 자전거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포구를 건너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백수읍이고 군민생활체육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오른편으로 백수해안도로가 이어지고 왼편은 원불교의 발상지인 영산성지로 가는 길이다.

영산성지 앞 보은강 연꽃방죽에 수련이 활짝 피었다. 노랑 창포도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풍경을 완성하고 있다.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오후에 잠을 잔다고 해서 '수련(睡蓮)'이지만 한낮인데도 아름답다. 꽃말처럼 청순한 기운이 묻어난다.

수련이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는 영산성지의 대각전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별나다. 원불교 최초의 교당인 영산원도 마주하고 있다. 참 나를 찾는 수도인의 모습마냥 더 고고해 보인다. 방죽을 따라 혼자 걷는데 제법 운치가 있다. 영광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불교다.

수련이 활짝 핀 보은강 연꽃방죽. 원불교 영산성지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원불교 최초의 교당인 영산원. 보은강 연꽃방죽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광산나들목에서 하남산단 도로를 타고 호남대학교 앞으로 가서 22번 국도를 타면 밀재터널을 지나 법성포까지 연결된다. 여기서 842번 지방도를 타고 영광원전 방면으로 가다보면 왼편에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와 숲쟁이 동산이 자리하고 있다.
#백제불교 도래지 #간다라유물관 #숲쟁이동산 #영산성지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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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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