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들이 노숙도 마다 않고 기다리는 꽃은?

[사진] 시흥시 관곡지 빅토리아 연꽃

등록 2011.08.29 15:41수정 2011.08.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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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찍은 왕관모양을 한 빅토리아연꽃이다. ⓒ 조정숙


강렬한 태양이 땅을 달구고 후끈한 지열이 얼굴을 화끈 달아오르게 하는 요즘, 밤에만 핀다는 야화를 보기위해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8월에서10월초까지 피는 꽃으로 잎은 물위에 떠 있고 원 모양이며 지름이 90∼180cm로, 어린아이가 잎 위에 앉아 있을 정도로 크고 가장자리가 약 15cm 높이로 위를 향해 거의 직각으로 구부러져 둥근 쟁반 모양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흰색 또는 엷은 붉은색이지만 2일째 저녁 때에는 차츰 변하여 짙은 붉은색이 된다. 한 겹 한 겹 꽃잎을 벗으며 왕관 모양을 만드는데 왕관처럼 생겼다하여 빅토리아연꽃이라 불린다.


사진가들을 매일 밤잠 설치게 하며 보여줄 듯 말듯 애간장을 태우다 수면의 온도와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잠수해 버리는데 이틀씩 왕관을 보기위해 노숙생활을 하던 사진가들은 허탈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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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연꽃이 첫날 밤에는 이렇게 하얗게 피어난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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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하얗게 피었던 빅토리아연꽃이 다음날은 연한붉은색으로 피기 시작한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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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이었던 빅토리아연꽃이 다음날 오후3시가 넘어 붉은색으로 변하며 서서히 피어난다. ⓒ 조정숙


꽃의 지름은 25∼40cm이고 꽃잎이 많으며 향기가 있다. 가이아나와 브라질의 아마존강(江) 유역이 원산지이고 1801년경 남아메리카의 볼리비아에서 처음으로 식물학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 아르헨티나와 아마존강 유역에서도 발견되었고, 1836년에 영국의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빅토리아여왕을 기념하여 학명을 Victoria regia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오후 3시, 아직 피지도 않은 빅토리아연꽃을 찍기위해 삼각대를 펼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진가들에게는 지루한 시각.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아주 특별한 연꽃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달려와 왕관 모양으로 피어나는 꽃을 기다린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연꽃은 시궁창에서도 더러운 물을 정화시키면서 화려하게 피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아름다울 것만 같은 이 자리에선, 밤마다 연꽃과 어울리지 않는 고성들이 오고간다.

"아, 불 좀 끕시다!"
"아 참 불 줌 끄라카이. 정말 말 드럽게 안 듣네. 혼자만 사진 찍나? 뭣도 모른 것들이 꼭 저런다카이."
"잠시 만요 초점 좀 맞추고요."
"불 비추면 꽃이 가라앉는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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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조명에 빅토리아연꽃은 결국 왕관을 보여주지 않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 조정숙


여기까진 그래도 사진작가라는 명예의식을 갖고 잘 참는 사람들이 내뱉는 점잖은 버전이다. 이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밤에만 피는 꽃이기에 여러 사람들이 서로 랜턴을 비추면, 활짝 피려던 꽃이 꽃잎을 다시 접고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만다. 때문에 여기저기서 언성들이 높아간다.

"아씨 불 좀 꺼라카이!"
"불빛은 은은한 것이 좋아. 장노출로 찍어야 은은하다니깐."
"XX. 혼자만 사진 찍나."
"목소리 크면 사진도 잘 찍나?"
"언넘인지 몰라도 정말 잘났네."
"오늘도 왕관은 날 샜다. 왕관 보여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자장면이나 시키 묵자."
"앞에 머리 좀 비켜주세요."
"사진 찍는 놈 마음이지. 이러쿵저러쿵 난리들이셔 너만 잘났냐? 나도 알만큼 알거든!"

일촉즉발.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다. 작년에는 시흥시에서 빅토리아연꽃을 많이 심어 올해처럼 옥신각신하는 게 좀 덜했는데, 올해는 한 송이 필까 말까 하니 싸움이 자주 벌어진다. 게다가 기온 이상 현상까지 겹쳐 꽃이 왕관을 보여주지 않아 더욱 더 상황이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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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피는 또 다른 열대야 수련의 모습도 그자태가 아름답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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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수련의 모습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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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곡지에서 서식하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금개구리가 마중 나왔다. ⓒ 조정숙


오후 3시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린 게 아까웠지만, 사진가들끼리 옥신각신해 금방 큰 싸움이라도 벌어질 것 같아 도저히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삼각대를 걷어 철수하고 근처에 있는 밤에 피는 열대 수련을 담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군데군데 수련을 담고 있었다.

빅토리아 연꽃은 왕관을 만들 때가지 이틀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조금씩 서서히 꽃잎을 펼치기에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조금 더 좋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자꾸만 실랑이를 벌이며 싸우는 것을 보면서 조금 안타까웠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사진 인구가 많이 늘었지만, 사진가들의 인격은 더 나빠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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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연꽃이 왕관을 보여줄 것 같은 토요일, 전국에서 관곡지에 모인 사진가들이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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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노래공연도 있는 곳이다. ⓒ 조정숙


빅토리아연꽃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뜨거운 태양열도 감내하고 밤새 크나 큰 가시를 뚫고 나온다는 걸 알고있다면, 이런 추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이곳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꽃 구경을 하기 위해 온 가족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악기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불러주는 이벤트가 마련돼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에게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는 게 너무 안타깝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여 격조 높은 사진가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빅토리아연꽃 #금개구리 #수련 #시흥관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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