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고서'에 왜 서울 얘기가?
교육부 보고서 '연구 부정' 의혹

결론도 96% 중복, 오자까지 '판박이'... 한양대 대학원장·서울교대 총장 당선자 공저

등록 2007.06.03 15:17수정 2007.06.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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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최근 교육부(부총리 김신일)와 한국교육개발원(원장 고형일)이 발주한 연구보고서를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국내 교육학계의 유명 교수들이 각 3000만원씩 총 6000만원을 받고 쓴 두 편의 보고서가 오탈자까지 같은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각기 다른 두 지역의 교육행정체제를 연구한 내용이었다.

각기 다른 두 편의 보고서, 오탈자까지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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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구' 97~98쪽(왼쪽)과 '인천연구' 91쪽. 각기 다른 두 개의 보고서가 문구는 물론 오자까지 같다. 붉은 색 원은 오자 부분. ⓒ 윤근혁

문제의 보고서는 한국교육개발원 명의로 2004년에 발간한 '서울특별시 교육행정체제의 진단 및 혁신방향(CR2004-9-1, 서울연구)'과 '인천광역시 교육행정체제의 진단 및 혁신방향(CR2004-9-4, 인천연구)'.

이 두 보고서는 교육부와 교육개발원의 연구를 다수 맡아온 교수 5명에 의해 작성됐다. 연구책임자는 한양대 대학원장인 노아무개 교수이며, 공동연구자 4명 중 한명인 송아무개 교수는 현재 서울교육대학교 총장 당선자이면서 한국초등교육학회 회장이다. 나머지는 강아무개 교수(국민대), 이아무개 교수(중앙대), 유아무개 교수(진주교대) 등이다.

노 교수와 송 교수는 교육학계의 수장급 인사들이다. 때문에 신중한 접근을 위하여 교육학을 전공한 국내 중진급 교수 3명에게 논문부정행위 여부를 의뢰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세 교수는 일치된 의견을 보내왔다. "논문부정행위가 맞다"는 것. 한 교수는 "당장 처벌해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교수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아무리 같은 연구 도구를 썼더라도 지역과 대상이 다른데 결론까지 똑같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 두 보고서의 분량은 서울연구와 인천연구가 각각 A4 용지 99쪽과 93쪽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결론 부분은 두 보고서 모두 17쪽이었다. 결론 부분을 줄 단위로 나눠 중복 여부를 계산해보니 전체 544개 줄 가운데 524줄의 내용(인천연구 기준)이 일치했다. 96.3%의 중복률을 보인 것이다.

제목도 내용도 심지어 오탈자까지 같았지만 '서울'과 '인천' 등 지명과 수치만 달랐을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명이 같은 부분이 인천연구에서 5군데가 있었다. 이 보고서의 13쪽 '인천교육청의 장학과 연수' 항목에서 난데없이 '서울교육청'이란 지명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책임자인 노 교수는 지난 31일, "서울 것을 먼저 하고 인천 것을 나중에 했다, 시기적으로 연말이라 다급하게 하다 보니 착오가 있었다"고 복사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같은 연구 틀로 두 지역을 비슷한 시기에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논문부정행위로 보는 교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두 보고서를 의뢰했던 교육부와 교육개발원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교육개발원 "좀 심했다"... 교육부, 공식 답변 회피

두 기관 관계자는 "당시 책임을 맡았던 분들이 모두 바뀌었다, (그 분들은) 외국에 나가있다"면서 "지금은 당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교육개발원의 중견 간부는 "근본적인 오류는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 연구를 기본 포맷으로 해 인천보고서는 수치만 바꾼 것으로 보인다"며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교육부가 정책 추진 차원에서 보고서 비용을 주고 책임을 진 연구이기 때문에 연구자를 소개시켜준 교육개발원은 큰 책임이 없다"고 해명했다.

교육개발원은 취재가 시작된 뒤인 3일, 교육개발원 홈페이지에서 관련 논문을 모두 삭제한 상태다.

교육부 실무 책임자의 입장을 듣기 위해 5월 31일과 6월 1일 이틀에 걸쳐 다섯 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회의중" "손님과 대화중" "결재 받으러 갔다"고 답해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인천보고서'에 왜 서울교육청 내용이..
말로만 떠돌던 부정행위 의혹... "교육부 보고서 특감 필요"

▲ '서울시 교육청'이란 글귀가 잘못 들어간 인천연구 13쪽.
ⓒ윤근혁

그간 연구보고서의 문제점은 심심치 않게 지적돼 왔으나 이번의 경우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서울특별시 교육행정체제의 진단 및 혁신방향'(CR2004-9-1, 서울연구)과 '인천광역시 교육행정체제의 진단 및 혁신방향'(CR2004-9-4, 인천연구) 보고서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데 대해 교육부와 교육개발연구원은 관리감독 소홀의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 보고서를 본 교육학자들은 서울연구와 인천연구가 거의 판박이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방의 한 중진 교수(교육학)는 "한 논문을 우려먹어도 분수가 있는 법인데, 이건 연구부정행위란 말이 아까울 정도"라고 혀를 찼다.

결론격인 '제언' 부분의 중복률이 96.3%에 달하는 것 외에, 본론격인 '진단결과'에서도 '지명혼재' 현상이 발견됐다. 베끼기를 정확히 뒷받침하는 증거다. 인천연구 13쪽의 '6)장학과 연수' 항목에는 '서울특별시 교육청'이란 말이 두 번 나온다. '인천광역시 교육청'이라고 써야 했지만 베끼기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런 베끼기 증거는 인천연구 기준으로 8쪽, 59쪽, 95쪽에서도 똑같이 확인된다. 모두 5군데나 된다.

오탈자를 그대로 옮긴 사례는 손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결론부분은 인천연구 98쪽과 서울연구 91쪽이 그렇다. 두 보고서 모두 같은 곳에서 오자를 적었는데 "…견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든) 의견이…"라고 잘못 적혀 있다.

교육부, 연구부정 잡겠다더니...

지난 달 2일 대구교대 총장이 대필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최근 교육계는 연구부정행위로 흔들리고 있다. 교육부는 4월 28일 '연구윤리 확립을 위한 권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부정행위는 학문공동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 베끼기 의혹은 교육부 스스로 수렁에 빠지게 됐다. 등잔 밑부터 조사해볼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석균 전교조 사무처장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교육부 발주 보고서의 연구부정행위에 대해 전면 특별감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윤근혁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 쓴 내용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 쓴 내용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논문부정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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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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