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1 11:25최종 업데이트 23.08.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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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 취재진의 추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연합뉴스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3국 정상은 '새로운'이라는 표현을 공통으로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새로운 역사, 새로운 차원, 새로운 시대"를 언급했다.

3국 정상이 말하는 새로운 것 중 하나는 한일관계가 사실상의 동맹 혹은 준동맹이 됐다는 점이다. '캠프 데이비드의 정신'이라는 제목이 붙은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우리 3국은 우리의 조율된 역량과 협력을 증진하기 위하여 3자 훈련을 연 단위로, 훈련 명칭을 부여하여 다영역에서 정례 실시하고자 함을 발표한다"라고 선언했다.


동맹관계가 아닌 국가들도 연합군사훈련을 벌일 수는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3국 연합훈련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이것이 사실상의 동맹을 지향한다는 점은 정상회의의 또 다른 문건인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에서 분명해진다.

"우리 대한민국, 미합중국, 일본국 정상은 우리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가 3자 차원에서 서로 신속하게 협의하도록 할 것을 공약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정이 외부로부터의 무력침공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라고 규정했다.

'언제든지 협의'가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신속하게 협의'로 표기됐다. 안보상의 위협이 발생할 때 3국이 협의하게 한 것은 형식이나 명칭 여하에 관계없이 3국이 사실상의 동맹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1951년 9월 8일 체결된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대체한 1960년 1월 19일의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 제4조는 "체약국은 이 조약의 실시에 관하여 수시로 협의하고, 또한 일본국의 안전 또는 극동의 평화 및 안전에 대한 위협이 생길 때는 언제라도 어느 일방 체약국의 요청에 의해 협의한다"라고 규정했다. 여기에도 '언제라도 협의'가 규정돼 있다.

사실상의 군사동맹이 한미일 3국 정상의 이름으로 위와 같이 합의됐다.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에 관해서는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한 우리 헌법 제60조 제1항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저울질하게 만드는 일이다. 실질적인 동맹으로 내디디면서도 한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공식 동맹 대신에 사실상의 동맹을 선택한 3국 정부의 꼼수를 생각하게 된다.

한일 양국이 미국의 보조 역할 수행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의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장에 3국 정상이 채택한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 결과 문서가 놓여 있다. ⓒ 연합뉴스


사실상의 동맹이냐 국제법적 동맹이냐를 떠나서, 이번에 선언된 3국 군사협력이 한국 국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는 점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군사협력은 한반도나 일본열도, 동북아를 훨씬 뛰어넘는 글로벌한 협력이다. 적의 숫자를 가급적 줄이고 경제 문제에 집중해야 할 한국이 세계안보에까지 에너지를 분산시켜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공동성명은 한미일 군사협력이 글로벌한 것임을 보여주고자 "우리 3국간 파트너십이 모든 우리 국민들과 지역 그리고 세계 안보와 번영을 증진시킨다고 믿기 때문", "우리는 모든 영역과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에 걸쳐 3국 협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평화와 안보를 강화할 것" 등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인도양과 태평양은 유럽을 제외한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과 웬만하면 다 연결된다. 그런 인도 태평양뿐 아니라 "그 너머에 걸쳐"서도 3국 협력을 확대한다고 했다. 앞으로 추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더욱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두세 나라 간의 조약에서도 세계평화는 얼마든지 언급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합의된 것은 그런 원론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미사여구 차원에서 글로벌 문제를 언급한 게 아니라 한국을 세계 곳곳에 끌고 다닐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공동성명은 3국의 글로벌 협력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더욱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지역 구조에 대한 지지를 전적으로 재확인한다"
"태평양 도서국들에 대한 우리의 지지를 재확인하며"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있어 단합한다"
"러시아에 대해 조율된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것이다"


한국 역시 세계의 일원이므로 글로벌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세금과 역량을 투입하면서까지 세계 곳곳에 개입할 필요가 있겠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같은 글로벌 협력을 어떤 태도로 수행해나가겠다는 것인지도 주목할 만하다.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또 다른 문건인 '캠프 데이비드 원칙'은 "국제법, 공동의 규범 그리고 공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그 어떠한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 "3국 안보협력의 목적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고 증진하는 것" 등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3국이 함께 나서서 국제법 등을 기반으로 현상변경 시도를 반대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미국이 수행해 온 세계경찰 역할을 한일 양국도 돕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미국이 우월적 지위를 갖고 세계 문제에 계속 개입하고 질서에 대한 도전을 막을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이 보조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범죄자에게 경찰복 입힌 셈
 

지난 2월 독도 인근 공해상서 펼쳐진 한미일 미사일방어훈련 모습 ⓒ 합동참모본부


한일이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대가로 미국은 "대한민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철통 같으며"라는 확약을 제공했다. 전략핵잠수함·핵추진항공모함·전략폭격기 등을 수시로 한일 주변에 출동시켜 안보 공약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방법으로 '경찰 보조'에 대한 사례를 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의 독자 핵무장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만한 문구도 함께 집어넣었다. 확장억제 공약을 언급한 뒤에 나오는 "우리는 핵무기 없는 세계 달성이 국제사회의 공통의 목표라는 것을 재확인하며, 우리는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는 문구가 그런 판단을 가능케 한다.

일본은 전범국이다. 경찰이 되거나 경찰을 보조할 만한 입장이 아니다. 미국이 그런 일본에 경찰 보조 역할을 맡기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4월 27일의 미일방위협력지침(미·일 가이드라인) 때도 "미·일 양 정부 각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및 이를 넘어서는 지역의 평화 및 안전을 위한 국제적 활동에 참가하기로 결정할 경우"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한 일이 있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를 거의 청산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은 일본이 세계경찰 역할을 보조하도록 만들었다. 범죄자에게 경찰복을 입힌 셈이다. 동아시아가 과거를 청산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에 지장을 준 셈이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피해자인 한국과 가해자인 일본을 한 번에 끌어들여 세계경찰 역할을 보조하게 만들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도 주지 않고 무조건적 화해를 유도하더니, 자국의 세계경찰 역할을 돕는 동지 관계로 묶어버린 것이다.

한국은 일본제국주의의 최대 피해자다. 그런 한국이 이 구도에 편입됐으므로, 제국주의 및 식민지 역사의 청산이 한층 까다롭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경찰이 범죄자에게 경찰 보조 일을 시키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해자마저 가해자의 경찰 보조 활동을 승인하게 된 꼴이다. 일본에 대한 면책 수준이 한층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인 한국마저 말려들었으니, 동아시아의 과거 청산은 더욱 어렵게 됐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이렇게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자국 단독으로는 세계경찰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 같은 자국이기주의에 매몰돼 동아시아의 역사 청산을 훼방하고 한일관계를 퇴행시키고 있다. 이번에 미국이 주도한 것은 반(反)역사 동맹의 성격도 띤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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