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1 06:47최종 업데이트 23.08.21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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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서먼턴 인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최근 한일 정부 사이의 기류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한국 정부의 분명한 지지를 얻고 싶어하는 기시다 총리와 오염수 방류로 인한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최근엔 오염수 방류 시기를 한국의 내년 총선과 연결짓는 듯한 언론 보도가 잇따르면서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양상입니다.  

이런 관측은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오염수 방류 문제가 회담 정식 의제에 오르진 않았지만 기시다 총리가 오염수 방류 계획을 설명하고 이해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교전문가들 분석입니다. 일본 외무성이 낸 보도자료에는 기시다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오염수 관련 일본의 대응에 지지와 이해를 표명해 준 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고 돼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뤄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도 오염수 방류 일정 등을 설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염수 방류 시기 결정, 일본 생색내기로 활용 

주목되는 건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한국 총선에 미칠 영향을 신경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 언론은 회담 전에 기시다 총리가 오염수 방류를 확정할 각료 회의를 한미일 정상회의 직후 열기로 했는데, 이 결정에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배려도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회담 전에 방류 시기를 결정하면 윤 대통령이 한미일 회담에서 곤혹스런 입장에 내몰리고 내년 총선에도 마이너스가 될 것을 우려해서라는 겁니다. 오염수 방류 시기 결정이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본이 윤석열 정부에 생색내기로 활용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일본 언론에선 이번 한일 회담에서 오염수를 의제에 올리지 않은 것도 윤석열 정부를 배려해서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은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벌어진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시행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다수 참모들은 4월의 일본 지방선거 결과를 본 후에 제3자 변제를 시행 여부를 결정하자고 건의했으나 윤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선거에서 이기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최근 일본 언론 보도로 불거진 한국 정부·여당의 총선 전 오염수 방류 요청 논란도 맥락은 같습니다. 당초 정부는 보도가 나오자 "정치권에서 그런 이야기가 좀 있었다, 이 걸 마치 일본에 전달됐고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건 약간의 추측성 해석이 가미된 것"이라고 모호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다 파장이 커지자 "사실무근"이라고 추가 설명을 내놓았지만 여당의 요청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흐렸습니다. 보도의 진위야 어떻든, 정부와 여당 내에서 오염수 방류가 국내 정치와 내년 총선에 미칠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오염수 방류가 현실화될 경우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정부·여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일본의 방류가 기정사실화 된 상황이지만 실제로 방류가 진행되면 여론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충격파는 시일이 지나면서 줄어들긴 하겠지만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특히 여권의 지지기반인 부산경남(PK) 지역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한일 정상의 행보는 서로의 정치적 목적에 유리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듭니다. 기시다 총리와 윤 대통령이 상호 정권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정부가 일본에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기 전 여유를 두고 방류 시기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는 것도 군색합니다. 정작 본질적 문제인 오염수 방류에는 제대로 반대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며칠만이라도 빨리 알려달라는 건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행태입니다. 큰 소리를 쳐야 할 사람은 한국인데 어쩌다 칼자루를 거꾸로 쥐게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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