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9 18:05최종 업데이트 23.08.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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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정부가 한일 경제 관계를 회복시키고 있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일어업협정의 장기간 파행 상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협정에 따른 어업 협상이 복원되지 않아 한국 어업이 불이익을 입는 상태가 2016년 7월 1일부터 8년째 이어지고 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해 9월 27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경색으로 그동안 진전이 없었던 한일어업협정을 재개하기 위해 일본에 실무 협의를 요청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협정 중단으로 국내 수산업계의 피해 규모가 커 일본 농림수산성에 한일어업협정 재개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며 "실무 협의부터 재개하고 협의가 마무리되면 직접 일본을 찾을 생각도 있다"라고 그는 약속했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금년 4월 12일, 해수부가 부산시수협 자갈치위판장에서 개최한 '연근해 어업 선진화 및 규제혁신 정책 토론회'에 조승환 장관이 참석했다. 이날도 어업협정 중단으로 인한 어민들의 고충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7개월 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 6월 13일에는 이 문제를 한국 수산업 최대 현안으로 지적하는 송학수 서남구저인망수협 조합장의 인터뷰가 <부산일보>에 실렸다. 이런 식의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윤석열 정부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한일어업협정의 문제점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업 선진화를 위한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1999년 1월 22일 발효된 한일어업협정(신협정)은 상대국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어획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했다. 이를 위한 양국 협상이 매년 열리다가 2016년 6월 24일 결렬됨에 따라 그해 6월 30일 한국 어선들이 일본 EEZ에서 철수하게 됐다. 그 뒤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한국 어업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한국이 IMF 외환위기 및 구제금융 신청(1997.11.21)과 대통령선거 및 여야 정권교체(12.18)로 혼란스러울 때인 1998년 1월 23일, 일본 정부는 한일어업협정(구협정) 파기를 통보했다.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구협정이 이로 인해 파국을 맞이했다. 그에 따른 재협상의 결과로 1998년 11월 28일 신한일어업협정으로 불리는 지금의 어업협정이 체결되고 이것이 이듬해 발효됐다.

신협정의 수혜자는 일본이다. 일본은 이를 통해 수산강국의 위상을 더욱 키우게 됐다. 독도를 한일 중간수역에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광활한 EEZ를 갖게 됐다. 이로 인해 한국 어민들의 활동 범위는 자연히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영토와 영해를 포함한 일본의 면적은 약 38만 평방킬로미터다. 신협정으로 일본이 갖게 된 EEZ 면적은 447만 평방킬로미터다. 영역의 12배 가까운 EEZ가 생긴 셈이다.

남한의 면적은 약 10만 평방킬로미터다. 신협정으로 갖게 된 EEZ는 약 30만 평방킬로미터다. EEZ가 영역의 3배에 불과하다. 3배 대 12배가 된 것은 일본이 섬나라라서 EEZ를 확보하기가 유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정부가 어업협정을 잘못 체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절'로 평가하는 그 시기에, 한국은 IMF 위기로 대외 협상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내주고 동해 수역 상당 부분을 일본 EEZ로 내주었다. 이 같은 협상 실패는 일본이 해양대국의 위상을 높이는 밑바탕이 됐다.

1998년에 일본이 구협정을 파기한 것은 자국의 EEZ를 공인받기 위해서였다. 일본에 끌려다니며 어업 구역을 내준 한국은 일본 EEZ로 편입된 수역에서 한국 어민들이 조업할 기회를 확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양국의 핵심적 이해관계가 신협정에 반영됐다. 이 협정의 목적은 EEZ의 범위를 정하고 어민들의 조업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신협정은 제1조에서 "이 협정은 대한민국의 배타적경제수역과 일본국의 배타적경제수역에 적용한다"라고 한 뒤 제2조에서 "각 체약국은 호혜의 원칙에 입각하여 이 협정 및 자국의 관계 법령에 따라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 타방 체약국의 국민 및 어선이 어획하는 것을 허가한다"라고 규정했다.

일본이 EEZ를 자동적으로 개방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3조 제1항은 "각 체약국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 타방 체약국 국민 및 어선의 어획이 인정되는 어종·어획할당량·조업구역 및 기타 조업에 관한 구체적인 조건을 매년 결정"한다고 규정했다. 자국 EEZ의 개방 조건을 해마다 결정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신협정의 핵심은 EEZ의 범위를 정하고(A), 상대국에 EEZ를 개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B). A는 일본에 유리한 부분이다. 일본은 EEZ 지정을 통해 수역을 대거 확보했다. 한편, B는 한국에 유리하다. 일본이 훨씬 많이 갖게 된 EEZ에 한국 어선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2016년 협상 결렬로 중단된 부분은 A·B 모두가 아니라 B 하나다. A는 여전히 작동하고 B만 중단돼 있다.

어민 피해 막심... 왜 협정 파행 상태 방치하나
 

지난 6월 3일 독도의 모습. 1998년 신협정에서 독도는 양국 중간수역에 포함됐다. ⓒ 윤성효

 
일본이 협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협정 전체를 종료시키는 게 원칙이다. 협정을 통해 한국이 인정해 준 일본 EEZ도 무효화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신협정은 종료되지 않았고, 한국만 준수하는 상태가 8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국 어선이 2016년 7월 1일부터 일본 EEZ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은 여전히 협정을 준수하고 일본 EEZ를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 EEZ가 한국 EEZ보다 훨씬 넓으므로, 일본 어선이 한국 EEZ에서 거둘 수 있는 어획량보다 한국 어선이 일본 EEZ에서 거둘 수 있는 어획량이 당연히 훨씬 많다. 8일 자 <부산일보>가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근거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그 차이는 10배에 달한다. 일본이 가져간 EEZ가 훨씬 넓으므로 이는 당연하고 부득이한 결과다.

일본 측이 어업협정 파행을 장기간 방치하는 것은 이 상태가 자국 수산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신협정을 깨지 않는 한, 지금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일본에 이롭다.

구협정과 신협정이라는 명칭만 놓고 보면, 1965년에 체결된 협정과 1998년에 체결된 협정이 전혀 다른 협정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을 놓고 보면 두 협정은 사실상 계승 관계를 갖고 있다.

둘 다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이라는 똑같은 명칭을 갖고 있다. 거기다가 구협정의 소멸이 신협정에 의해 규정됐다. 신협정 제17조는 "1965년 6월 22일 도오꾜오(도쿄)에서 서명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은 이 협정이 발효하는 날에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신협정이 구협정을 대체하게 됐음을 명확히 했다.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구협정은 이승만 정부가 독도 동쪽에 그어놓은 평화선을 없애고, 한국이 12해리의 전관수역을 가지며 그 수역 외측에 한일 공동규제수역을 두도록 함으로써 한국 수역을 축소시켰다. 거기다가 독도의 지위도 모호하게 만들었다. 일본이 협정 체결의 대가로 9천만 달러의 어업차관을 제공한 이유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1965년 당시의 국민들이 한일기본조약과 그 부속협정(통칭 한일협정)의 하나인 한일어업협정을 반대한 것은 이것이 한국 어업 구역을 축소시키는 동시에 독도에 대한 일본의 침탈 의지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1998년 신협정은 "1965년 6월 22일"이라는 날짜까지 명기하면서 자신이 구협정의 대체물임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또 일본의 어업구역을 늘려줬을 뿐 아니라 독도를 양국 중간수역에 포함시켰다. 한국인들에게 상처를 준 구협정의 요소들이 신협정에도 녹아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일협정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이런 신협정을 이용해 일본은 2016년에 한국을 농락했다. 배타적경제수역에 관한 부분은 놔두고 자국의 의무에 관한 부분만 파행시키고 있다. 일본이 한일협정의 유산을 이용해 이렇게 하는 것은 한일관계가 아직도 1965년에 얽매여 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한일 경제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말은 허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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