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4 05:06최종 업데이트 23.06.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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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복합물류단지에서 택배사 관계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지금은 가히 '택배만능시대'라고 할 만하다. 우리가 이용하는 거의 모든 물품이 택배로 배송될 뿐 아니라, 1인 가구가 늘면서 가구를 제외한 이삿짐까지 택배로 보내는 경우도 가끔 있다.

어느덧 택배 일은 서민들에게 가장 가깝고,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3D업종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택배 기사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실상(민낯)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직업인이 아닌가 싶다.

21세기 들어 국가와 조직 등에 가려져 있던 개인의 삶과 행복을 존중하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문화의 확산이 어색하게 여겨질 만큼 어쩌면 당연한 권리를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사회시스템과 구조의 문제만은 아니고 서로에 대한 인식과 배려 부족에서 비롯된 것도 적지 않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아프면 쉬세요!'라는 말이 일상화되었으나, 그런 '사치'를 꿈꿀 수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이 연재를 통해 이웃이 다른 이웃을 그저 소비자나 고객, 서비스업 종사원 같은 중립적 용어가 아니라 자신처럼 일상과 생활이 있는 사람임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택배 기사가 택배 물품만큼 존중받는 세상이라면, 누구나 살만할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을 솔직히 나눠볼 생각이다.
 
1993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자로, 또 운동가로 살아온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되었다. 정말 빠르다. 내가 일해 온 기독사회운동도 그렇고, 동네 목회라는 것도 원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 분명한 목적을 갖고 명분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사람들을 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15년 뜻밖에 택배 기사로 일하게 되는 기회를 가졌고, 지금도 틈틈이 그 일을 하고 있다.

2010년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서 교회를 개척해 목사로 일하면서 늘 부족한 가계에 보탬도 되고, 교인들의 일상에도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부업'처럼 할 일을 찾다 보니 가장 눈에 띄는 게 배달직이었다. 일터가 집에서도 가까운 가산역 근처였고 면접차 만난 점장이 마침 청년 때 알던 지인이기도 해서 그해 6월부터 택배 일을 시작했다. 목회자로서의 처지를 생각해 주 4일만 일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완전 생짜 초보인 데다 현역 목사이기도 하니 얼마나 어설펐을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를 어떻게 견디고 이겨냈을까 싶다.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처절한 사투의 연속이었다.

훈련소에 다시 들어간 것 같은 심정
 

예전 배송에 사용했던 가리봉동 지도. 이제는 지도를 사용하지 않는다. ⓒ 구교형


내가 주로 책임 맡은 구역은 영화 <범죄도시>의 실제 모델로 다시 유명해진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택배 물품이 트럭에 가득 쌓여 있는데, 도무지 집을 못 찾겠는 거였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가리봉동을 쉽게 여기지 말라는 점을 배웠다.

예전 구로공단 시절 조그만 영세공장과 공장 노동자들의 벌집촌이 뒤섞여 있던 동네라서 미로 같이 좁은 골목에, 한집에도 여러 세대가 살아 도대체 어느 방에 내 고객이 살고 있는지 탐문수사를 해야 했다. 애써 사람을 찾아 물어보면 '한국말 몰라요!'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더는 말하지 않는다. 한국인과 중국인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할 만큼 중국인과 중국 교포들이 정말 많이 살았다.

당시는 지번 주소에서 도로명 주소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배달 기사들이 매일 아침 각자 자기 구역 지도에 그날 자신이 가야 할 물품의 주소마다 일일이 빨간 체크 표시를 하고 찾아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배달 물건이 별로 많지 않았는데도 길이 낯설고 지도도 제대로 볼 줄 몰라 한 집 찾는데도 수십 분씩 허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감히' 택배하겠다고 나섰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고, 당장 물건을 던져 놓고 어디론가 잠적해 버리고 싶은 유혹도 받았다.

한동안은 새벽 1~2시경에 귀가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하루 배송을 마쳐도 내가 배송을 잘했는지 자신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또는 며칠 전 배송한 물건이 어디 있냐는 날카로운 목소리의 고객 전화를 받아야 했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무조건 '죄송합니다, 제가 초보라서!'를 연발해야 했다(이제는 잘못 배송하는 일도 별로 없지만, 혹시 잘못 배송해도 큰 어려움 없이 다시 다 찾아낸다).

그때는 잃어버린 물건도 정말 많았다. 100만 원도 안 되는 한 달 수수료를 받아 잃어버린 물건을 변상하는데 적지 않은 돈을 썼다. 그러다 보니 퇴근이 없고 쉼이 없었다. 주일(일요일)에는 양복 입고 본업인 교회 목사로 돌아가지만, 혹시라도 잘못 배송하지 않았을까 자꾸 마음이 쓰이고 전화벨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실제 못 찾은 물건을 찾아 예배 후 다시 가리봉동을 뒤지고 다닌 적도 많았다. 사람이 이렇게 무거운 물건을 계속 들어 올리고, 매일 이렇게 많이 걸어도 괜찮을까 염려될 만큼 나이 50에 훈련소에 다시 들어간 것 같은 심정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컵라면이나 빵조각을 억지로 털어 넣고, 오전 6시 50분에 택배 분류를 시작하면 업무 중에는 식사를 못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내내 긴장하며 일하니 밥 먹는 게 호사처럼 느껴지는 탓이었다. 한밤에 들어가면 씻고 그때 받는 첫 밥상이 왕의 수라상 같았다.

인생은 깊고, 오묘하고, 아름답다
 

택배 분류업무 ⓒ 구교형


사실 교회 규모가 크든 작든, 목회자의 일상은 여러 가지 업무로 제법 바쁘다. 그러나 택배를 하는 도중에는 다른 여력이 거의 없었다. 머릿속에는 주일설교에 대한 부담이 크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 정도로 지쳐 성경 읽고 기도한다고 앉아 있으면 꼬박꼬박 졸다 이내 드러누워 자게 된다.

그러나 교인들이 택배하는 걸 알게 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자신들과 한껏 가까워졌다며 제법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누구보다 젊은 청년들이 일부러 '목사님 수고하신다' '멋지다'며 인사를 건네곤 했다. 나 역시 택배 물품을 받아보는 소비자로만 살다가 그때부터 택배 기사들을 무심하게 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에, 집(사택)은 4층에 있었다. 3~4층 교회와 집에 오는 택배는 전부 위까지 올라오지 않도록 3층 시작되는 계단에 택배 올려놓는 탁자를 놓아두어 거기까지만 오도록 써 붙였다. 가끔 큰 상자 여러 개로 주문한 교회 물건들이 오는 날 집에 있으면, 미리 택배 기사에게 연락해 1층에서 함께 올려가고 약간의 수고비를 주기도 했다.

우리나라 부동의 주택구조 1위는 당연히 아파트다. 그러나 내가 배송을 시작했던 가리봉동은 그 흔하다는 아파트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물론 가리봉동도 요즘은 곳곳마다 재건축, 신축 붐이 한창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연립, 빌라 등 다가구 주택이 많아 택배 기사들은 좁은 도로에 눈치 보며 차를 세워놓고 일일이 들고 지고 오르내려야 한다.

소비자는 주문 물품마다 꼬박꼬박 2500~3000원씩의 택배비를 지출하지만, 택배 기사들에게 돌아오는 수수료는 개당 700~800원 수준이다. 1000원도 안 되는 수수료에 옥탑 꼭대기까지 물, 세제, 아이스박스를 지고 올라가고도, 이런저런 푸념을 들을 때는 불평과 욕설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목회자로, 운동가로 살면서 관념적으로 이해하던 치열한 삶의 현장을 피부로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저 단편적으로 겪은 힘든 노동을 소개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에도 짧게 적었듯이 모두가 힘겹게 살아가는 치열하고 고된 삶의 현장을 함께 나눠볼 예정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서로 느끼게 되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때로 답답하고 함께 고쳐보고 싶은, 그러면서 간간이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눠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시련과 고난, 고생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누구도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피해 갈 수 없다. 도대체 그때 그 시련을 어떻게 견뎌내고 이겼는지도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 때문에 사람 되고, 그로 인해 성숙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참 깊고, 오묘하고, 또 아름답게 느껴진다. 개인도, 사회도, 민족도, 역사도 그렇다. 택배 기사들도 자주 그걸 느낀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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