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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여러 법률이 존재한다. 국어사전은 법률의 정의를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라고 정해두었다. 사실 법과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정의로운 방향대로 사회가 운영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 국가 차원의 법과 제도가 서 있는 위치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약칭 노조법)을 통해 우리 사회가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최근 노동자의 편에서 노조법이 온전히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출범했다. 지난 10월 21일, 지금의 노조법 문제가 어떠하며, 어떤 방향으로 2조·3조 개정이 필요한지에 대해 김혜진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과 이야기 나눴다.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김혜진 공동집행위원장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김혜진 공동집행위원장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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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노조법 2조·3조 개정이 필요한 이유

올해 뜨거웠던 여름, 0.3평 남짓 공간에 스스로의 몸을 가둬 놓은 한 명의 노동자가 있었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여름 내내 벌어졌다.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조선업계가 불황이라는 이유로 삭감했던 임금을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며 임금인상과 하청노조 인정 등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파업 후 남은 건 손해배상 청구액 470억 원이었다. 2003년으로 거슬러 가면 배달호라는 노동자가 있다. 당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파업으로 저항하다 징계와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을 당한 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했다. 

"지난 여름,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목숨을 거는 수준의 투쟁이 있었던 거죠. 여기에 사회적 연대도 엄청 많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굉장히 많은 부분을 여기에 쏟은 거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100%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70% 이상의 힘을 다 쏟은 거죠. 당사자들은 거의 한 100%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건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해야만 되는 거 아니냐는 고민이 있었어요. '이제는 우리가 열심히 해보자'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이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우리의 고민을 넓히지 않으면 이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요."


김혜진 활동가는 20여 년 동안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지키고자 싸워온 이들을 향해 자행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바로 노조법 2조·3조 개정의 이유 그 자체라고 지목했다. 

노동권 회색지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개정 노조법

임금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중간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규모는 최대 221만 명에 달한다('특수고용 노동자 최대 221만명, 새로운 유형 55만명', 매일노동뉴스, 2019.03.25 참고).

이들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여야 보호받을 수 있는 법과 사회보장제도 대상이 되지 못한다. 정부가 허용하는 노동자 범위가 너무나 협소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도급이나 용역 계약 형태 등을 근거로 돈을 버는 사람의 어떤 책임도 의무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

김혜진 활동가는 이처럼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현실을 현재의 노조법이 전혀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조법 2조 근로자와 사용자의 정의 조항도 개정이 시급하다 강조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운동본부는 노조법 제2조 근로자 정의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에 더해 '이 경우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자는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현재의 노동법은 일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요. 예를 들어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자성 인정해라.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해라'라고 말하는 것과는 또 완전히 다른 형태가 등장하고 있어요. '이게 원청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일을 하는데 나한테 영향력을 갖고 있어. 원청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워, 그러나 나한테 영향력을 미쳐.' 이런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거죠.

정부 정책이 나에게 영향력을 미치면, 정부가 나한테 영향력을 미치는 거잖아요.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런 노조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 그것에 맞는 방식으로 노동조합의 권리가 확장해야 하는 거잖아요."


한편, 노조법 3조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규정 역시 노동자들의 권리 확장을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파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몰라요. 파업하려면 정말 온갖 종류의 난관을 다 거쳐서 해야 해요. 그렇게 간신히 파업을 하고 나면 아주 작은 꼬투리 잡아서 불법으로 몰아서 손배 청구를 한다는 건 모르죠. 더 웃긴 건 노조 보고 '이기적'이라고 얘기하는데, 이기적이지 않은 싸움을 하면 불법이 돼서 손배 청구를 해요. 노조법은 오로지 '이기적인 싸움'만 하라고 하고 있어요. 이런 현실을 조금 더 많이 알릴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산재 예방을 위한 작업중지마저 손배 청구의 대상?

산업안전보건법 51조, 52조는 사업주와 노동자의 작업중지를 정해두었다. 위험하거나, 위험을 예상할 때 일을 멈추고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노동자의 권리이자 사업주의 의무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작업중지권 행사조차 '손해'를 입히는 행위로 치부하고 실제 작업중지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

현대자동차에서 누수로 컨베이어 벨트에 물기가 스며들자 한 대의원이 비상스위치를 작동시킨 일이 있었다. 추가 누수까지 발생한 상황에도 생산라인을 일방적으로 가동시키려는 회사 관리자를 막기 위해 비상스위치를 파손하자 해당 대의원을 상대로 2억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노동권을 지키는 숫자 33.3 손배가압류 소송기록 아카이브 참고).

다행히 노사 합의에 따라 회사가 소송을 취하해 종결은 되었으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대의원의 행동에 손배 청구를 행한 회사의 태도는 분명 노동자 건강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또 한편에서는 노동권 탄압이 노동자의 불건강을 양산한다는 것도 주목할 점인데, 바로 SPC그룹의 노조탄압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계열사 노동자들의 산재 사고다. 노동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일터에서는 노동자의 건강도 보장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작업중지권 행사가 불가하죠. 조직돼 있는 사업장에서만 가능한데, 사용자는 그것을 자신의 의무로 간주하지 않고 이들의 권리 행사가 타당하냐를 따져서 이걸 가지고 손배 청구를 하는 방식인 거잖아요. 저는 작업중지권의 의미를 어떻게 전복시킬 거냐도 중요한 문제 같아요. 

또 하나, 원청 책임이 노동자의 안전 문제에서 핵심이잖아요. 김용균씨가 희생됐던 구의역 사고에서 원청의 책임이 인정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왔죠. 그게 법으로 제도화됐던 게 산안법 개정이고 중대재해처벌법인 거잖아요. 결국은 산재 예방 과정에 노동자들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느냐가 크게 영향을 미치죠. 산재 예방 관련해선 원·하청이 같이 논의하게 되어 있지만 하청 노동자들이 힘이 없을 때는 그 안에서 자기의 주도력이 발휘될 수 없죠.

원청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지게 할 것이냐가 법적으로 명확해야 노동자들이 실제 권리 개선을 요구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노조법 2조가 갖는 의미는 노동자 건강에도 매우 중요한 현안인 것 같아요."


모든 노동자·시민의 권리를 넓히는노조법 2·3조 개정 운동

김혜진 활동가는 올여름 더위 속에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지지했던 사회적 연대의 힘을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다시 모을 것을 제안했다. 누군가의 고통에 기대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는 싸움을 통해 노조법 2·3조 개정을 이끌어보자는 얘기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자본의 재산권 논리에 대항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공공성을 위해서 또는 사회적 이익을 위해서 당신들도 언제든 제한당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피해를 받은 모든 사람이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소송하는 게 아니라 집단적으로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 걸 보여주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이 힘드니까, 연대하자' 이런 게 아니라, 자본의 재산권이라고 하는 논리를 제약하면서, 집단적 힘을 확보해 가고 이런 가능성을 다양한 영역에서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나래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11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노조법, #노란_봉투법, #손배_가압류, #노조할_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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