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환호에 답하는 손흥민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 카메룬의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손흥민이 경기 종료 후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관중 환호에 답하는 손흥민 9월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 카메룬의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손흥민이 경기 종료 후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지구촌 최대의 축구 축제인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이 어느덧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한국 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12년 만의 본선 16강 진출을 넘어 '원정 역대 최고 성적'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축구가 월드컵 16강에 오른 것은 홈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 대회 두 번 뿐이다.
 
한국축구는 지난 2014년 브라질 대회와 2018년 러시아 대회에서는 연이어 조별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해볼 만하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에서 4년간 다져온 선수구성과 조직력이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역대 최고의 대표팀, 히딩크호? 허정무호?

그동안 역대 최고의 대표팀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전문가와 팬들이 이구동성으로 2002년 대표팀 '히딩크호'를 꼽아왔다. 당시 대표팀은 유럽파 안정환과 설기현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파 위주로 구성되어 선수들의 국제적인 이름값은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조련 속에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축구'를 선보이며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세계적으로 강호들을 연파하고 기적의 4강신화를 이뤄냈다. 박지성-이영표-김남일-차두리 등 히딩크 감독이 발굴한 선수들은 이후로도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성장했다.
 
또한 히딩크호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 '홈 어드밴티지'가 컸다. 한국은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당시 히딩크라는 세계적 명장을 영입할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역대 어느 감독도 누려보지 못한 전폭적인 지원 속에 전권을 휘두르며 사실상 대표팀을 클럽팀처럼 상시 소집-훈련시키는 게 가능했고,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호흡면에서 역대 최고의 조직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또한 월드컵 기간 내내 히딩크호는 국민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바탕으로 경기장 안팎 환경과 분위기 등에서도 홈의 이점을 톡톡히 누렸다.
 
다만 이러한 홈 어드밴티지는 월드컵 이후의 평가에서는 단점으로도 작용했다. 세계축구의 주류이자 한국 4강신화의 최대 희생양이 되었던 유럽권에서는 히딩크호의 선전을 과도한 홈 어드밴티지와 판정 수혜 때문이라고 폄하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2002년 이후 원정 월드컵에서는 아직 그만한 경쟁력을 재현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런 평가를 뒤집지 못한 이유였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은 한국축구가 원정에서 16강의 벽을 뚫어낸 유일한 대회로 꼽힌다. '허정무호'는 아시아 지역예선 1위와 A매치 27경기 연속 무패행진 등의 기록을 세웠고,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토너먼트에 올라 16강전에서 우루과이와 명승부 끝에 아쉽게 석패했다. 운이 조금만 따라줬다면 원정에서 4강신화를 또 한 번 재현할 수도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 팀이었다. 전문가에 따라서는 오히려 2002년 히딩크호보다도 2010년 허정무호의 전력을 더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당시 허정무호의 에이스는 박지성이었다. 2002년 당시에는 유망주였다면, 최전성기를 맞이한 2010년에는 주장이자 명실상부한 '크랙'으로 올라서며 공수 양면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또한 오른쪽에는 당시 볼턴의 라이징스타였던 이청용이 포진해있었다. 2002 멤버이자 좌우풀백인 이영표와 차두리까지 포함하면 당시 허정무호의 측면 라인은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수준으로 꼽힌다. 또한 이때부터 유럽무대에 진출한 스타들이 늘어나며 경험이 쌓인 선수들이 더 이상 큰 무대와 해외강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시기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주목도가 높은 유럽파 스타들을 부각시켜 '양박쌍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박지성-이청용을 제외하고 기성용과 박주영의 실질적인 월드컵 활약상이나 공헌도는 과대평가된 측면이 강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실제로 중추적인 활약을 펼친 것은 오히려 중앙라인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정우와 센터백 이정수로 이어지는 '쌍정' 콤비였다.

김정우는 월드컵에서 2002년의 김남일을 능가하는 역대급 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중원싸움을 책임진 파이터였다. 곽태휘의 부상낙마로 월드컵을 앞두고 주전 센터백으로 올라선 이정수는 본업인 수비는 물론이고 수비수임에도 깜짝 2골까지 터뜨리며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허정무호는 당시만 해도 대표팀 역대 최장수였던 2년 7개월간 호흡을 맞춘 팀이었는데 이러한 연속성은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히딩크호 이후 가장 안정된 조직력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대표팀은 본선에서 역대 대표팀 최다인 6골을 터뜨렸고 이 중 4골이 약속된 '세트피스' 플레이를 통하여 나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조직력과 연관되어 있다.
 
다만 최전방에서 강력한 정통 스트라이커의 부재,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는 '조커'와 플랜B가 부족했다는 것은,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결국 발목을 잡은 허정무호의 한계였다.
 
'이름값' 역대 최강 벤투호... 변수는 유연성과 대진운
 
기자회견 하는 벤투 감독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카메룬과 국가대표 친선경기를 하루 앞둔 26일 비대면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기자회견 하는 벤투 감독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카메룬과 국가대표 친선경기를 하루 앞둔 9월 26일 비대면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연합뉴스

 
2022년의 '벤투호'가 가진 잠재력은 히딩크호와 허정무호를 능가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단 선수구성의 '이름값' 면에서는 역대 최강이 분명하다. 최전방에 주장이자 'EPL 득점왕' 손흥민, 후방에는 한국 수비수 최초의 '월드클래스 센터백'으로 성장한 김민재가 확고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2002년의 중추였던 황선홍-홍명보, 2010년 박지성-이영표 라인보다 선수들의 위상이나 무게감에서 월등하다. 특히 손흥민은 최근 A매치 5경기에서 4골을 터뜨렸고, 한국 선수 세트피스 최다득점 공동 1위(4골)에 오르는 등, 한국축구가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한 세계적인 '해결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밖에도 황의조, 황희찬, 이재성, 황인범, 정우영 등 베스트11의 대부분이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다. 최종엔트리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부상이 없는 한 이들이 모두 월드컵 본선에 승선할 확률은 101%다.
 
조직력 면에서도 역대 대표팀에 밀릴 게 없다. 벤투 감독은 2018년 한국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 4년간 '빌드업과 점유율 축구'를 근간으로 꾸준히 연속성을 이어왔다. 호흡을 맞춘 기간으로는 허정무호를 뛰어넘은 역대 최장수 대표팀이고, 베스트11과 전술을 잘 바꾸지 않는 벤투 감독의 성향 때문에 히딩크호만큼 일관성 있는 색깔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14년과 2018년 대표팀이 잦은 감독교체와 주축 선수들의 부상-컨디션 난조로 최상의 전력을 꾸리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오랜만에 지역예선을 수월하게 통과하며 안정감을 과시했다.
 
변수는 유연성과 대진운에 달렸다. 벤투호의 빌드업 축구로 세계적인 강팀들을 상대로도 정면승부가 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벤투호는 평가전에서 강한 '전방압박'을 구사하는 팀들을 만났을 때 빌드업이 막히며 경기를 풀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준비한 전술이 먹히지 않거나 주전들이 부진할 때 변화를 줄 수 있는 플랜B에도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시아 예선 이후 대부분의 경기를 국내 평가전으로만 치르며 '원정 경쟁력'을 확인할 기회가 부족했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대진운도 최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썩 좋은 편도 아니다. 포르투갈-우루과이-가나 등 각 대륙의 강호들과 골고루 한 조에 배속된 것은 톱시드의 홈 어드밴티지를 안고있었던 2002년(포르투갈-미국-폴란드)과는 비교하기 어렵고, '1강 3중 체제'였던 2010년(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그리스)보다는 더 어려운 대진이라는 평가다.
 
객관적인 전력상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포르투갈과 우루과이가 '양강'으로 꼽히고, 가나도 귀화선수들을 대거 받아들여 호락호락한 전력이 아니다. 다만 포르투갈과 우루과이가 최근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 낙마와 슬럼프로 전력에 변수가 생겼다는 점은 호재다.
 
벤투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을 끝으로 한국축구와 작별할 것이 유력하다. 부임 이래 호평과 혹평이 극명하게 엇갈렸던 벤투 감독이 월드컵 이후 어떤 업적을 남긴 사령탑으로 축구팬들에게 추억될지도 궁금해진다. 과연 벤투 감독은 히딩크와 허정무를 뛰어넘어 한국축구의 역사를 바꾼 감독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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