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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전날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방안 중 '여성가족부 폐지'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전날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방안 중 "여성가족부 폐지"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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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행정안전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포함한 정부조직법 개편 방향을 확정해  발표했다. 급작스러운 발표였다. 지난 8월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가부 폐지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포함 시킬 것이냐"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질문에 이상민 장관은 "행안부 주도 사안은 아니다"라면서도 "관련 부처 간 심도깊은 논의를 거칠 것"이라고 답한 지 38일밖에 지나지 않아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폐지의 이유는 옹졸하고 내용은 빈약하며, 과정은 불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 SNS에 어떤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단 일곱 글자 게시로 공약을 발표한 것처럼 말이다.
  
행안부의 정부조직법 개편안 발표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에 여성가족부 폐지는 "여성·가족·아동·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를 더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권력남용에 의한 성비위 문제에 있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하는 그런 시각에서 완전히 탈피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어떤 보호를 어떻게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없이 민주당 때리기 용도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다고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답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성범죄 무고죄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성범죄 피해 고소에 불신을 전제해 오히려 피해자의 입을 꾹 닫게 할 공약을 내걸었던 대통령이 최소한의 자기 성찰도 없이 옹졸하게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는 셈이다.

불통인데다 빈약한 여성가족부 추진 과정

행안부 장관이 언급한 '부처 간 심도 깊은 논의'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다. 지난 13일 행안부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와 여가부의 장‧차관, 간부, 실무진 간 유‧무선, 대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시 협의 추진'했다고 하나 공식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은 여성가족부를 폐지해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편입하겠다는 방향이다. 하지만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간의 간담회는 지난 7월 8일 단 한 차례였다는 것이 보도됐는데, 여성가족부는 이 회의 역시 정부조직법 개편을 위한 회의였는지조차 밝히지 않으며 '과정은 중요치 않다'는 등 납득 못할 변명만 하고 있다.

지난 10일, 김현숙 장관은 정부조직법 개편 발표 후 '주요 여성단체 간담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한 여성단체는 초대하지 않은 '불통'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기능 강화 방안은 안 보이고, 갈등 부추기는 방안만 보여
 
전국여성연대와 인권운동네트워크, 정의기억연대, 한국YWCA연합회, 불꽃페미액션, 녹색당, 진보당 관계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를 규탄했다.
 전국여성연대와 인권운동네트워크, 정의기억연대, 한국YWCA연합회, 불꽃페미액션, 녹색당, 진보당 관계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를 규탄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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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정부 부처가 사라지고 다른 부처 산하 본부로 격하되는 것 자체에 대한 우려도 있다. 행안부는 차관이 이끌던 여성가족부 조직을 차관보다 높은 본부장이 이끄는 것이기에 부처 격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부처가 폐지돼 장관이 없어지는 것 자체에 우려를 표하는데, 장관은 쏙 빼고 차관이 지금보다 높은 본부장 위치에 서는 것이라 항변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여성가족부 장관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는 것인가.

기능 강화방안도 가족‧돌봄‧보육‧청소년 등 정책으로 일원화된다는 것이 전부다. 무엇이 어떻게 강화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여성가족부 외에도 타 부처와 협력해 업무를 진행하는 사안은 많다. 사각지대 논란이 커질 때마다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는 늘 있었다.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 협력을 강화하는 것과 칸막이가 아닌 부처를 없애는 건 다른 문제다. 부처는 없애도 기능은 강화하겠다는 말 자체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설득이라는 것이다.

기능 강화보다 갈등 조장 문구만 눈에 띈다. 정부조직법상에는 없었던 '양성평등'이 들어간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의 기획‧종합 부처인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에서 '남녀 모두'를 위한 양성평등 정책을 펼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양성평등'업무를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에서 한다는 것은 인구를 생산하고 가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성평등 과제를 우선한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젠더 기반 폭력 예방을 위해 성평등 강화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양성평등'의 이름으로 묵살하는 것이기에 갈등만 조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비스' 제공한다는 빈약한 관점 넘어 '권리 보장' 기능 강화로 가야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된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또 다른 우려는 보건복지부 산하로 간다는 점이다. 성평등 강화의 핵심은 성차별적인 제도와 문화를 고쳐나가는 것이다. 그래야 여성 및 소수자의 일상도 안전해지고, 다양한 분야의 성차별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최저선의 삶의 보장을 위한 물적 지원이나 보호를 우선한다. 여성의 권익증진 정책이 선별된 성범죄 피해자 보호에만 갇히는 한계가 명확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행안부가 설명하는 여성가족부 기능 강화 방안에도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을 확대한다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닌 기능 강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범죄 피해를 입어야만 보호받을 수 있는 현실에서 젠더 기반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별적 성인식을 바꾸는 정책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보호해야 할 피해자를 왜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냐고 여성가족부 폐지할 때가 아니라 애초에 권력형 성범죄를 발생시키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여성가족부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검찰총장이 아닌 대통령이다.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엄벌만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약자 보호 방향도 증명된 바 없다. 2023년 예산안에서도 약자를 보호한다면서 긴축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약자에게 쓰이는 일부 예산을 깎아 제출한 정부가 아니었던가. 윤석열 대통령의 반복되는 거짓말 때문에 '여가부 폐지는 사실상 기능 강화'란 정부 설명 역시 설득력이 없다.

대표적 젠더 기반 폭력이라 할 수 있는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범죄는 점점 늘고 있다. '여성 보호'를 넘어 성별에 기반한 차별이나 범죄 없는 '권리 보장' 기능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는 성평등 개념을 좁히는 여성가족부 폐지 추진을 멈춰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신지혜는 기본소득당 대변인입니다.


태그:#여성가족부, #정부조직법, #성평등, #윤석열,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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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당의 새 이름, 새진보연합 대변인입니다. 2022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였습니다. 당신이 누구든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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