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3 05:25최종 업데이트 22.10.1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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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식 병무청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10월 7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병무청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BTS의 병역특례에 대해 모처럼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한기호, 김기현, 신원식(이상 국민의힘), 정성호(민주당) 의원은 BTS를 위해 병역법을 개정해 병역특례를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었고, 성일종(국민의힘), 설훈, 김영배(이상 민주당) 의원은 병역법을 개정해 BTS가 대체복무나 병역특례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입장이었다. 전자는 병역 의무의 형평성을, 후자는 BTS의 상징성이나 경제적인 효과를 우선했다. 국방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기식 병무청장은 "BTS도 군복무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고 국방부는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이 문제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유승준에서 BTS까지

대학 입시와 더불어 군 입대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다. 특히 유명인이나 특권층의 경우엔 더욱 파급력이 크다. BTS 이전에도 유력 정치인과 재계 인사 자제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의 군 입대 문제가 사회적인 논란이 되곤 했다. 유승준은 '아름다운 청년'에서 하루아침에 '스티븐 유'가 되어 병역기피의 대명사가 되었고, 이후에도 MC몽, 싸이 같은 인기 연예인들이 병역 관련 논란을 겪었다. 반면 배우 현빈과 악동뮤지션 이찬혁, 샤이니 민호는 오히려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이슈가 되었다.


20대 시절 전성기를 보내는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병역은 민감한 문제다. 2004년 병역브로커를 동원해 병역비리를 저지른 일이 드러나 주전급 프로야구 선수를 포함해 26명의 야구 선수들이 구속된 일은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병역면제나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위의 성적을 거둔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병역면제는 원칙을 어겼다는 논란을 불러왔다.

우리나라의 징병제도는 현역, 사회복무요원과 같은 복무제도로 예술체육요원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국위선양 및 문화 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 특기자에 대하여 군복무 대신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하게 하는 제도"이다. 1973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다.

현재 예술요원은 국제 음악경연대회 27개, 무용 17개에서 2위 이상 입상하거나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의 8개 국내대회 등에서 1위를 한 사람들, 체육요원은 올림픽에서 3위 이상 입상하거나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게임)에서 1위를 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월드컵이나 WBC는 애초에 체육요원의 목록에 없지만 '국위선양'이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예외적으로 인정해줘서 논란이 된 것이다. 예술요원 또한 성악 같은 클래식 음악은 포함이 되지만 대중음악은 포함이 안 되는 등 여러 논란의 소지가 있다.

BTS의 병역 문제를 두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야한다는 주장도 말이 되지만, 예술요원 선발 기준이라는 원칙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공정하고 신성한 징병제라는 거짓 신화
 

2020년 2월 3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앞에서 입영장병과 가족 및 친구들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징병제도, 특히 군 입대를 둘러싼 논란은 잊을 만하면 반복되지만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한국은 굉장히 높은 징병률을 달성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에는 병역기피율이 30%까지 치솟았고 국가의 행정력이 미비했던 1960년대에도 22%까지 올라갔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0.01%도 되지 않는다.

물론 세세하게 뜯어보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의 유무,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군복무를 합법적으로 회피하거나 쉬운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나 정보를 얻기 쉽다. 그러다보니 한국사회에서는 권력과 돈을 이용해 군대를 회피하거나 병역비리를 저지르는 일에 대해 반감이 높고, 병역제도는 사회의 공정함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징병제도의 등장과 확대가 시민 계급의 형성이나 정치 참여 확대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징병제를 사회의 공정함이나 형평성의 기준처럼 여기는 인식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징병제도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완전하게 공정한 제도였던 적이 없었다. 권력층의 병역비리나 불평등한 군복무도 문제지만, 징병제도가 가져온 공정함과 형평성은 그 시작에서부터 반쪽짜리였다. 시민 계급이 귀족 계급과 같은 책임과 권리를 가진다는 점에서는 공정함이 확대되었을 수 있지만, 군 입대 자격을 나누어 군대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등 시민으로 내몬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제도였다.

징병제도에서 공정함이나 형평성을 추구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수의 특권층만 혜택을 누리는 것은 잘못이며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그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징병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거짓 신화는 징병제도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을 막아선다. 징병제도는 고정불변인 신성한 제도가 아니라 각국이 자신이 처한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에 맞게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형태로 운용하는 사회제도일 뿐이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때까지 징병제를 유지했지만 의무병의 비율을 상황에 맞게 조정했다. 1차 세계대전 때 72%에 달하는 의무병의 비율이 한국전쟁 때 27%를 거쳐 베트남전쟁 때는 20%미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독일은 2014년 징병제를 폐지했는데 2010년의 통계를 보면 입영대상자 38만 4811명 가운데 14.3%인 5만 5000명만 현역복무를 하고 32%는 대체복무, 53.5%는 면제였다. 태국은 정규 과목 중에 한국의 옛 교련 수업과 비슷한 군사과목이 있어서 이를 이수하면 군대가 면제되고 면제받지 못한 이들 중에서 제비뽑기를 해서 당첨된 사람이 군인으로 복무한다. 

2022년 한국에는 어떤 형태의 병역제도가 필요한지, 국제사회에서 한국군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적절한 군인의 숫자는 얼마인지, 그 숫자를 현재 인구 집단이 감당할 수 있는지, 군복무를 하는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어떻게 줄여가야 할지. 토론해야하는 주제는 산적해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인식에 막혀 사회적인 토론 주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참여연대와 군인권센터는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자체 연구를 통해 현재 한국군의 적정 규모는 30만 명이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심상정 후보가 각각 40만 명과 30만 명으로 적정 규모에 대한 의견을 냈지만 대선 이후까지 논의가 이어지지는 못했다. 국방부는 남한과 북한의 관계, 국제사회에서 위치, 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차이 등이 변했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남북 대치상황이라는 이야기만 고장 난 라디오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병역제도에 대한 유쾌한 상상
 

지난 5월 31일, BTS는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열린 일일 브리핑에 참석해 아시아계 증오범죄를 멈춰달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 연합뉴스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갇혀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병역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유승준의 자리에 싸이가 들어오고, 손흥민의 자리에 BTS가 대체된 것처럼 반복될 뿐이다. 병역제도는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와 논란이 응축되어 있어 개선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병역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반복된다면 이로 인한 갈등 때문에 많은 사회적 비용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토론과 연구는 병역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신성함이라는 거짓 신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군대라는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군복무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군복무에서 배제되거나 그로 인해 차별받는 이들-여성이나 장애인, 이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군복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의 주장과 군대를 거부한 병역거부자들의 주장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총칼로 국경선을 지키는 것만으로 국가안보가 해결되는 시대는 이제 찾을 수 없다. 국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에 국가는 대응해야 한다. 안보를 지키기 위해 군사적인 수단에만 의존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과도하게 군사적인 수단에 의존한 것을 탈피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안보를 지켜야 한다. 안보 개념이 확장되고 안보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식이 고려된다면 병역제도에 대해서도 유쾌한 상상을 발휘해볼 수 있다. 총칼 들고 싸우는 것 말고도 안보를 지키는 길이 있다면 굳이 20대 청년 50만 명을 군대에 잡아둘 필요가 없다. 문화예술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처럼 20대 시절이 중요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게 군대를 가게 할 수도 있고, 군사적 수단 대신 외교적인 수단이나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통해 안보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면 군복무 기간을 대폭 줄여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현저하게 낮출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아이디어들은 실제로 적용하기엔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고, 구체적인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까지 가기 위해서는 엄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병역제도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 때문이 아니라, 변화를 가로막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순수예술은 예술 요원이 되고 대중예술은 안 되는 방식은 논란만 확대할 뿐이다. 기준이 애매한 것도 문제지만 소수에게 예외적으로 특혜를 주는 방식 자체가 평범한 다수에게는 차별적일 수 있다. 소수의 특혜를 늘려가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이 져야 하는 부담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병역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병역제도 특례에 대한 논의가 첨예해지거나 병역에 대한 보상이 깊게 논의되는 방식은 실제로 군복무 자체가 개인에게는 시간 낭비라는 인식을 강화할 뿐 문제의 근본은 고치지 못한다.

50만 대군을 유지하는 것이 국민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필요하지도 않고, 인구절벽 시대에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하자. 군축을 전제로 변화를 논의를 할 때만이 누가 군대에 가고 누구는 가지 않을지, 그럴 때 군대 가는 사람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지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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