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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통해 구도에 목말라 방황하며 존재의 근원을 탐구한 소설 <만다라>를 쓴 김성동 작가가 25일 오전 별세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최근 암 투병을 해오던 김 작가는 이날 건대충주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75세.
 
김성동 작가 (2016년)
 김성동 작가 (2016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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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충남 보령 출생인 김 작가는 1978년 그의 대표작이자 독서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소설 <만다라>(曼茶羅, 1977년 한국 문학사)를 출간했다. 이후 창작집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붉은 단추>, <민들레 꽃반지>를 펴냈다. 장편으로는 <풍적>,<집>, <길>,<꿈>,<국수>를 썼다.

이 중 1980년대 초 <문예중앙>에 연재를 시작한 <풍적>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글이 연재되자마자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와 함께 '6.25 민족 수난사를 주제로 한 문학작품 중 최고봉'이라는 문단의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2회 만에 연재가 강제 중단됐다. 약속이나 한 듯 청탁도 끊겼다. 정부의 비공식 탄압이었다.

그는 지난 2016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소설가를 한 것 자체가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작가의 아버지는 좌익 혐의로 대전형무소에 갇혀 재판을 기다리던 중 6.25가 터지자 다른 좌익 활동 혐의 수감자들과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처형됐다. 그의 어머니 또한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의 큰삼촌은 우익청년단원들에게 맞아 죽었다. (관련 기사 : 김성동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소설가 됐다" ) 

한국전쟁 와중에 아버지와 단란한 가정, 집을 한꺼번에 빼앗긴 김 작가는 성장기를 깊은 상처 속에서 방황하다 1965년(19세) 입산해 불교에 귀의해 정진했다. 1975년 하산해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산내(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지) 때문에 소설가가 됐어. 아버지가 아니면 문학을 안 했어. 왜 죽어야 하냐며 '죽음'에 대해도 묻지 않았을 거야."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한동안 스스로 보이지 않는 검열로 아버지 얘기를 쓰지 않았다"며 "얼마 전부터 아버지 얘기와 민족 수난사를 글로 쓰고 표현해 힘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남로당과 전쟁 이야기로 그의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 <민들레꽃 반지>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중편소설 <고추잠자리>는 이때부터 쓴 글이다.

"고추잠자리는 아버지 얘기야. 불현듯 쓰기 시작했어. 일주일 만에 번개같이 썼어. 쓰면서도 내가 쓰는 게 아니라 불러주는 대로 받아쓴다고 생각할 만큼 막힘이 없었어. 혼령들이 날 부른다고 생각했지. 평생을 글을 쓰지만 이런 일은 흔치 않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그의 아버지와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사를 쓰던 김 작가는 아버지가 사는 땅으로 떠났다.

태그:#김성동, #별세, #만다라,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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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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