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홈리스>에 출연한 배우 전봉석, 박정연, 그리고 임승현 감독.

영화 <홈리스>에 출연한 배우 전봉석, 박정연, 그리고 임승현 감독. ⓒ 그린나래미디어


 
감독의 청소년기 때 실제 경험을 영화로 옮긴 <홈리스>는 말 그대로 박복한 신혼 커플의 처절한 생존기다. 한 푼 두 푼 모아 겨우 살 집을 마련했더니 전세금 사기를 당한다. 결국 두 사람은 찜질방을 전전하고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에 남편은 초췌해져만 가고, 독박육아에 몰린 아내 또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간다. 과연 이 세 사람은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배우 전봉석과 박정연이 영화 속 한결과 고운을 연기했다. 대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둔 이 배우들이 아직 생소할 순 있지만 <홈리스>에서 어쩔 줄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한결이나, 그를 들들 볶으면서 태연한 척 혹은 뻔뻔한 척 한 노파의 집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고운의 모습은 그 자체로 현실성을 강하게 담보한다. 15일 개봉즈음 두 배우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영화 <홈리스> 장면

영화 <홈리스>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사례를 찾거나, 감정에 이입하거나
 
두 사람 모두 1997년생, 동갑내기다. 영화는 청년 세대들의 큰 화두인 주거 문제를 비롯해, 고독사, 그리고 인간의 윤리성을 두루 건드린다. 작은 규모의 영화였지만 오디션 과정을 거치며 전봉석과 박정연은 각자의 간절함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전봉석은 예정돼 있던 광고 촬영을 포기하고 스스로 머리를 밀고 올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부부 역할이기에 촬영 1개월 여전에 미리 만나 친분을 쌓는 시간을 갖고제 제안했던 것도 그였다.
 
"1차 오디션 때 약속보다 2시간 일찍 갔다. 그때 안내를 잘못 받아 대본을 못 받은 채로 즉흥 연기를 보였고 2차 오디션 때 대본을 봤는데 바로 몰입이 되더라. 너무 하고 싶었다. 감독님 연락이 없어서 1개월 동안 제가 먼저 참고 자료를 보내고, 질문도 보내고 질척거렸다(웃음). 어느 날 최종 2인 중 한 명이니 오디션을 준비해달라는 소식에 바로 머리를 밀었다. 머리를 안 밀고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지면 후회할 것 같았다. 정연 배우와 사전 만남은 사실 감독님이 제안했던 거다. 먼저 다가가라고 하시더라. 초반에 노력했는데 선을 긋는 느낌이랄까(웃음). 현장에서 하면 된다는 주의던데 전 사석에서 그런 친밀감을 만들자는 생각이기도 했다. 감독님도 노력하셨다. 셋의 저녁 자릴 주선해주시기도 했고, 전 나름 필살기로 회를 사주기도 했다." (전봉석)
 
"저도 첫 오디션 때 시나리오를 받진 못했다. 시놉시스를 오디션 전날에 짧게 받고 고운이가 11개월 된 우림이를 키운다는 설정이 있어서 일부러 백팩을 앞으로 메고 갔다. 감독님은 모르실 거다. 즉흥 연기 후에 연락을 주신다는 감독님 말에 아직 확정이 아니구나 싶어서 집에 가서 반성하고 그랬다. 대사를 좀 더 잘해볼 걸 하며 마음 졸이고 있었지. 나중에 들은 얘긴데 함께 하자는 의미로 말씀하신 거였다더라. 제가 낯을 너무 가리긴 한다. 촬영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현장서 친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한결을 연기하는 입장에선 미리 친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신 것 같더라. 제가 회를 좋아하니 본인은 못 먹으면서도 우리 동네까지 와서 회를 사주셨다. 덕분에 여러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박정연)

 
 영화 <홈리스>에서 한결을 연기한 배우 전봉석.

영화 <홈리스>에서 한결을 연기한 배우 전봉석. ⓒ 그린나래미디어


  
갓난아기와 세상 물정 모르는 두 청년은 자꾸만 위기에 몰린다. 찜질방에서 난 작은 사고로 아이가 화상을 입고, 병원비가 부족해 한결은 사무실 사장에게 돈을 빌려 보려 하지만 녹록지 않다. 그러다 단골이던 한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목격하고 지갑에서 돈을 훔치던 한결은 끝내 고운과 함께 그 집에서 살게 된다. 다친 아이를 보며 전전긍긍하던 고운은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다 낡은 유모차를 훔친다. 숱한 어려움에도 윤리성을 잃지 않던 이들이 벼랑 끝에 몰린 뒤 내리는 모종의 선택들이 짠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온다.
 
"소재가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데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친구 중에도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있다. 본의 아니게 아이가 생겨 독립한 친구도 있고.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면서 준비했던 것 같다. 감독님 집에 가서 며칠 간 대본 리딩을 하기도 했다. 부모지만, 철없는 아이 같았으면 한다고 주문하셔서 어디에 중심을 둬야 할지 많이 대화했다." (전봉석)
 
"고운은 속에선 어떤 생각하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제겐 한결과 고운이 나이는 비슷해도 가출 청소년에 어린 부부라는 설정이 크게 공감이 되진 않았다. 오히려 관객 입장에서 두 사람을 보며 시나리오를 따라갔던 것 같다. 곳곳에 고운의 감정이 숨겨져 있더라. 마치 감정을 티 내지 않지만, 방바닥을 닦는 모습에서 무서워하는 감정이 튀어나온다든가 하는 식이다. 조금씩 고운의 두려움을 꺼내는 걸 표현하는 게 재밌었다." (박정연)
 

디테일들
 
두 배우 모두 한결과 고운의 선택을 두고 심정적으로 스스로를 설득시키기는 과정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야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왔던 전봉석은 "영화 속 한결처럼 극적 경험은 없지만,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은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며 "제 내면에 있는 감정을 많이 활용했다"고 말했다. 박정연 또한 "한결과 고운이 처한 상황이 안타까웠는데 특히 사망한 할머니 생사를 확인하러 오는 복지사 분이 두 사람의 거짓말 한 마디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고은의 서사를 아는 저로선 그 행동이 이해 가는데, 누군가에겐 비난받을 수 있는 행동이 있어서 그런 지점을 설득시키려 노력했다. 복지사 장면에서도 이렇게 간단히 끝난다고? 싶었는데 실제로 흔하다고 하더라.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영화 내용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말이다." (박정연)
 
"영화를 준비하며 많이 조사했던 것 같다. 개인 사정이 있어서 복지원 등을 찾아보고 그랬는데 의외로 혜택받을 수 있는 게 많더라. 근데 한결과 고운은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하잖나. 주변 문제가 크다. 교육도 제대로 못받았고, 주변에 좋은 어른도 없었으니. 이 친구들이 놓인 환경 문제가 큰 것 같다." (전봉석)
 
 
 영화 <홈리스>에서 고운을 연기한 배우 박정연.

영화 <홈리스>에서 고운을 연기한 배우 박정연. ⓒ 그린나래미디어


 
두 사람 모두 연기를 전공하는 대학생 신분이다. 그간 연극과 여러 단편 영화에서 활약했고, 장편 주연은 모두 처음이라고 한다. 개봉하기까지 3년이 흘렀고, 그 사이 전봉석은 군대를 다녀왔다. 졸업반인 박정연은 "작품과 캐릭터가 탐나서 열심히 촬영했는데 개봉까지 하게 될 줄 생각도 못했다"며 새삼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중요한 건 연기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아닐까. 언제 처음 연기에 빠졌고, 이후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열 살땐가 극장에서 <안녕, 형아>라는 영화를 보는데 사람들이 펑펑 우는 모습에 놀랐다. 어린 마음에 그런 감동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근데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다. 고교생 때 방송반도 하고 영화 동아리도 하다가 성인이 된 후 연기학원 다닐 돈을 아르바이트로 벌면서 오디션도 보러 다녔다. 현장서 저와 함께 하신 스태프분들이 종종 다른 작품을 추천해주시기도 하는데 그만큼 책임감을 더 느낀다. 관객분들이 궁금해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 <홈리스> 이후에도 세상에 보여줄 제 모습이 많다!" (전봉석)
 
"어렸을 때 잠깐 가족이 중국에 살았었다. 그때 혼자 집에서 무서울 때마다 드라마를 크게 틀곤 했는데 그때 자연스럽게 배우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꿈이라 생각했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더라. 그래서 성적을 올릴 테니 하고 싶은 걸 하게 해달라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제가 사진에 찍힐 때마다 몸이 굳을 정도로 낯을 가리는데 새로운 캐릭터로 새로운 이야기 안에 있으면 그렇게 자유롭더라. 작품이 끝났을 때 제가 맡은 인물이 어디선가 어떻게 살아갈지 관객분들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박정연)
  
홈리스 전봉석 박정연 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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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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