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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회의 여러 사업장을 다니면서 일터마다 일하는 사람들의 구성이 판이하게 다른 게 나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새로 만나는 사람을 체형, 말투 등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새로 가는 사업장을 기억하는 단서는 어떤 업종인가와 누가 많이 일하는가이다.

여자가 많은 사업장, 남자가 많은 사업장, 20대나 30대가 많은 사업장, 50대 이상이 많은 사업장, 이주노동자가 많은 사업장, 오래 근무한 사람이 많은 사업장,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근속 연수가 짧은 사람이 많은 사업장 등이 그 사업장을 떠올리는 단서가 된다. 그중 일부 사업장에서 50대 이상 여성이 많이 근무하는데, 해당 일터는 주로 마트 아니면 식품 제조와 관련된 사업장이다. 그중에서도 식품 제조와 관련된 사업장이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고, 여성이 일하는 비율이 높다.

울퉁불퉁한 손가락

"손가락 아픈 건 괜찮으세요?" 식품 제조와 관련된 사업장의 50대 이상 여성 노동자를 만나면 관절이 아픈지 물어보고 그중 특히 손가락이 아프지 않은지 묻게 된다. 그분들의 손을 보면 위와 같은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손가락 마디가 다 굵어져 있기 때문이다.

심한 분들은 관절에 변형이 와서 틀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그런 손을 만나는 횟수가 적지 않다. 즉, 식품 제조 사업장에 근무하는 많은 중년 여성 노동자가 손가락에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흔히 부르는 골관절염(osteoarthritis)을 앓고 있거나 아니면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치료받고 있다.

관절염 또는 퇴행성 관절염이라 많이 부르는 골관절염은 주로 고관절(골반), 슬관절(무릎), 족관절(발목), 척추관절과 손관절에 많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관절염의 위험 요인으로 가장 잘 알려진 건 노화(퇴행성)이며, 다음으로 비만이다. 그래서 골관절염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병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인식하기도 한다. 

노화, 비만 다음으로 손가락에 생기는 관절염의 경우 손을 많이 쓰는 직업 또는 취미가 영향을 많이 끼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류마티스 내과나 손을 진료하는 정형외과 같은 경우 하는 일이 무엇인지, 취미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의사도 많다. 골관절염은 진단이 어렵지는 않으나, 완치를 할 수 있는 질환은 아니다.

대부분의 치료는 관절염 환자가 현재 느끼는 통증을 완화 시키는 데 집중되어 있고, 따라서 골관절염 환자가 병원에서 처방받는 약도 대부분 통증을 줄이기 위한 진통소염제 위주인 경우가 많다. 진통제 처방 외에는 따로 물리치료를 받거나 아니면 임시방편으로 손목, 손가락 등에 테이핑하고 작업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손을 덜 쓰셔야 해요
 
업무로 인해 베이고 데이인 몸, 굽은 손가락. 사진은 서비스연맹에서 열었던 노동안전 사진전
 업무로 인해 베이고 데이인 몸, 굽은 손가락. 사진은 서비스연맹에서 열었던 노동안전 사진전
ⓒ 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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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생긴 골관절염 진행을 늦추거나 완화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지금보다 손을 덜 쓰는 것이다. 이 사실은 나도 알고, 손가락이 아픈 당사자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이 현재 손을 덜 쓰는 게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 생긴다. 식품 제조 관련 업종은 손을 많이 사용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업종을 바꾸거나 그만두지 않는 이상 손에 생긴 관절염 증상을 낫게 하기란 쉽지 않다. 

직업환경의학에서는 위험요인을 가능한 한 없애거나, 대체하거나, 부하를 줄여야 한다고 배우지만 실제 일터에서 노동자의 골관절염을 이유로 작업량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손을 덜 쓰는 작업 공정으로 교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3년마다 단순 반복 작업 또는 인체에 부담을 주는 작업으로 생기는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 중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또는 손을 사용하여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작업'은 근골격계부담작업 중 하나로 명시되어 있어, 3년마다 조사하고 개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조사 덕분인지 여러 사업장에서 근골격계 위험요인은 파악되어 있다. 아니 사실 직관적으로 누가 봐도 손에 부담이 되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이후 작업의 개선이나 관리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집에서도 쉴 수 없는 여성노동자의 손

설, 추석 이후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주부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명절증후군은 명절 이후 발생하는 여러 가지 현상을 폭넓게 이르는 말이지만, 명절 때 갑작스레 증가한 가사 노동으로 인해 관절염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도 포함한다. 갑자기 명절 증후군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50대 이상 여성 노동자들의 관절염을 낫기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 가사노동이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 뭐하시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식사 준비, 청소, 세탁 등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이분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손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가사노동은 다른 건강 관리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중년 여성은 퇴근 후 가사노동을 해야 해서 운동을 못 한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관절염 증상을 낫게 하기 위해 일터에서든 집에서든 손을 사용하는 걸 줄여야 하는데 어느 하나 쉽지 않다. 

근골격계 질환으로 신청하는 산재가 많아지면서 근골격계 질환에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여 업무관련성을 평가하고 있다. 다빈도 근골격계 질환인 추간판탈출증, 회전근개파열, 내(외)상과염, 수근관증후군, 삼각섬유연골복합체파열, 드퀘르벵병, 반월상연골파열에 대해서는 업종과 근무 기간을 고려하여 업무 관련성을 좀 더 분명히 인정하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척추관 협착증, 관절염 등 퇴행성으로 알려진 질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업무관련성을 인정받기가 어렵다. 노동자 본인 또한 퇴행성 질환이라 알려진 병들은 산재로 승인받지 못한다고 인식하거나 아예 업무상 질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근골격계 질환이 이제는 개인 요인이 아니라 업무와 관련해서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이전보다는 많이 알려졌다. 원인 파악 또한 많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현재 증상을 더 낫게 하고, 더 악화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지 실질적인 대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오현정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노동건강권팀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직업환경의학 전공의입니다.


태그:#여성_노동자, #골관절염, #근골격계_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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