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놉> 스틸컷 영화 <놉> 스틸컷

▲ 영화 <놉> 스틸컷 영화 <놉> 스틸컷 ⓒ 영화 <놉> 스틸컷

 
※ 이 기사는 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헤이우드 목장'을 운영하는 OJ(다니엘 칼루야)는 기이한 현상으로 아버지를 잃는다. 동생 에메랄드(케케 파머)도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목장으로 돌아온다. 목장 주변에는 어린 시절 아역 스타로 명성을 얻고, 본인 캐릭터의 이름을 딴 놀이동산 '주피터 파크'를 운영하는 주프(스티븐 연)가 산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목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OJ는 주프에게 소중한 말을 한 마리씩 팔게 되는데… 어느 저녁, 그의 놀이동산 근처에서 아버지가 사망하던 날과 같은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스필버그 우주영화의 상속자

조던 필 감독의 <놉>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 영화를 계승한다. 1977년 <미지와의 조우>, 1982년 < E.T. >, 2005년 <우주전쟁>까지 이어지는 스필버그의 우주 영화들은 <놉>의 소프트웨어다. 최초의 조우를 향해가는 과정과 그 이후의 변화가 앞선 세 편의 주요 테마다. 단순히 외계인과의 첫 만남을 내용에 녹여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와 대상이 축소되어가는 스필버그의 변화까지도 담겨있다. 

<미지와의 조우>에서는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UFO가 출현하지만 < E.T. >는 FBI가 동원된 미국의 이슈로 작아지고 <우주전쟁>에 이르러서는 미국 내 일부 도시와 지역 내의 다툼으로 쪼그라든다. 전 지구적인 역량을 끌어모아 외계인과 소통을 시도하던 모습도 개인의 친교에 이어 의사소통 불가로 나아간다. 외계인 역시 이성과 의도를 갖춘 지성체에서 미지의 침략자로 정서적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할리우드 최초의 블록버스터이자 괴수물인 <죠스>는 <놉>의 하드웨어다. 괴수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희생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눈물 겨우 사투를 벌인다는 틀에서 <놉>과 <죠스>는 동일한 맥락을 공유한다. 더해서 <놉>은 <죠스>를 걸작의 자리에 위치하게 한 세심하고 독창적인 시그니처 역시 계승한다. 바로 사회풍자적 성격이다. 해수욕장 운영으로 생계가 유지되는 애미티 마을에서는 백상아리의 습격을 은폐하려는 고위층과 더 이상의 피해를 막으려는 주인공의 대립이 서사의 중심에 흐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놉>에 와서는 최초의 조우가 조그마한 마을의 개인으로 축소되고 외계인 또한 본능만 가진 생명체로 격하된다. 사실상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마치 <죠스>의 백상아리처럼 본능만 남은 외계인을 상대해야 하는 개인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우선 떠오르는 건 대결이지만 그럴 의무도 없고 자원도 부족하다. 두 번째는 도피다. 그러나 정부가 사라진 <놉>에서 필사의 탈주가 성공한대도 국가에서 생존을 보장할 것 같지는 않다.
 
영화 <놉> 스틸컷 영화 <놉> 스틸컷

▲ 영화 <놉> 스틸컷 영화 <놉> 스틸컷 ⓒ 영화 <놉> 스틸컷

 
그래서 <놉>의 주인공들은 '돈'을 택한다. 팔아버린 말을 되찾고 가업으로 물려내려 오는 농장을 지켜야 하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유일한 선택지다. 물론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돈 냄새를 맡고 막강한 자본으로 밀고 들어오는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과 생명을 저울질하던 <죠스>의 설정이 2020년대에 들어서는 더욱 가혹해졌다. 각자도생이라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주인공들에게 최초의 조우라는 인류사적 의미를 찾아낼 여유 따위는 없다.

이들은 자연스레 '나쁜 기적'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놉>에서는 나쁜 기적이 반복된다. 주프는 피 묻은 운동화를 하나 소장하고 있다. 고디가 폭주한 현장에서 주프가 바라봤던 똑바로 서 있던 운동화다. '고디의 집' 촬영에서 하필 풍선이 터지는 나쁜 기적이 일어나 끔찍한 참사가 벌어진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들도 말과 사람을 빨아들이며 폭주하는 진 재킷의 나쁜 기적을 사진으로 찍어 오프라 윈프리쇼에 팔아넘기려 한다.

그러나 나쁜 기적을 통제할 수는 없다. 정상적인 촬영 현장이던 '고디의 집'도 풍선이 터지는 사소한 사건으로 참사 현장이 됐다. <놉>이 갖고 있는 공포의 영화적인 요소는 언제든 카메라의 프레임만 바뀌면 언제나, 누구든 나쁜 기적의 관람객에서 피해자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인생을 바꾼다는 주프의 쇼를 보러온 관객들 역시 어떤 악의를 가졌던 건 아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을 가십거리를 찾아보는 습관 같은 호기심이 재앙을 초래했을 뿐이다.

영화 내에서도 UFO(미확인 비행 물체, Unidentified Flying Object)의 명칭이 UAP(미확인 공중 현상, Unidentified Aerial Phenomenon)으로 프레임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를 설명한다. 카메라를 상징하는 진 재킷의 눈이 말을 향했을 때는 매혹적인 스펙타클이 되지만, 그 눈이 본인에게 향한다면 끔찍한 재앙이 된다. 환장할 지점은 이 재난을 탓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이다. 주체(Object) 없는 현상(Phenomenon)에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날 카메라 프레임의 이동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자연재해다.
 
'저 너머의 먼 곳'의 영화
 
영화 <놉> 스틸컷 영화 <놉> 스틸컷

▲ 영화 <놉> 스틸컷 영화 <놉> 스틸컷 ⓒ 영화 <놉> 스틸컷

 
흔한 미디어 비판에서 그쳤을 영화는 오프닝에서 머이브리지의 '움직이는 말과 기수'로 깔아뒀던 복선을 회수하기 시작한다. 카메라의 윤리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영화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감독의 야심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변화는 OJ와 에메랄드부터 시작된다. OJ와 에메랄드에 이제 진 재킷을 찍는 건 오프라 윈프리쇼에 나가기 위한 출세도구만이 아니다. 타인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카메라, 무시당하였던 과거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한 액션이 무자비한 외계인 앞에선 무기가 된다.

카메라 앞에서 주눅 들고 시선을 피했던 OJ는 절묘하게 카메라의 눈을 속이며 말을 타고 황무지를 달린다. 카메라 앞에서 주인공이 되려했지만 번번이 기회를 놓쳤던 에메랄드는 과감히 카메라의 뒤편에 선다. 프레임 안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거나 희생양이 되었던 인물들이 당당하게 새로운 자리를 찾아 나서고, 이들에 의해서 그동안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허공을 맴돌던 카메라의 실체가 드러난다.

이제 엔딩이 남았다. 스펙터클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까지 무지막지하게 집어삼키며 진화해온 그것은 끝내 소화하지 못할 것을 집어삼키고 폭사한다. 진 재킷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건 말이 달릴 때 네 다리가 모두 공중에 뜨는지 궁금해하던 최초의 카메라와 닮았다. 뿌연 흙먼지 사이로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있는 흑인 기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머리 위로 '저 너머 먼 곳(Out Yonder)'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어쩌면 이것은 포식자의 프레임을 극복한 저 너머의 새로운 영화일까. 아니(NOPE)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조던 필의 최고작 <놉>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영화 조던필 다니엘칼루야 스티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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