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힐링과 공감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출연자의 사연을 듣고 고민을 상담해주는 '솔루션' 프로그램들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박사처럼 현대인의 심리와 상처를 헤아리고 치유의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은 이른바 '정신적 멘토'로 부상하며 신드롬을 가까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솔루션 프로그램이 대중적 인기나 화제성과 결합하여 '예능화'하면서 일각에서는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일부 출연자들을 둘러싼 자질 논란에서부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사생활 노출과 사연팔이 등을 두고 방송출연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19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는 최성욱-김지혜 부부가 상담자로 출연했다. 모두 연예인 출신의 셀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성욱은 발라드 그룹 '파란' 출신으로 현재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김지혜는 걸그룹 '캣츠'를 거쳐 뷰티 인플루언서 겸 사업가로 활동중이다.
 
같은 사연으로 여러 프로그램 출연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의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부부의 고민은 '경제관념이 없는 남편 때문에 힘들다"는 것. 아내는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부부 소득의 99%는 아내가 버는 수입이었다. 반면 남편은 경제관념 자체가 전무할 뿐만 아니라 아내가 없으면 사실상 아무 것도 못할 만큼 아내에게 의지하며 사회생활 능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극도로 떨어진 상황에서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하기도 했다고.
 
그런데 이 부부는 바로 얼마 전 종영한 티빙 오리지널 부부 관찰예능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도 같은 사연으로 출연한 바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이혼을 고민하던 네 쌍의 실제 부부가 방송을 통하여 그간의 결혼생활과 부부간의 갈등을 돌아보고 앞으로도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지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성욱-김지혜 커플을 비롯한 출연 부부들은 최종선택에서 모두 결혼생활을 지키겠다는 결말을 택한 바 있다.
 
하지만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종영 이후 출연자들은 오히려 응원보다는 의심과 비판 여론에 휩싸인 경우가 많았다. 방송 내내 부부간의 갈등이나 성격차만 자극적으로 부각되던 것에 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봉합하고 결혼을 계속 지켜가겠다는 선택을 내리기까지의 개연성이 그리 납득할 수 있게끔 묘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로그램 출연 기간 중에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결말부에야 공개한 황당한 커플도 있었다. 많은 누리꾼들은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청자를 기만한 '방송용 갈등'이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금쪽상담소>에서도 최성욱-김지혜 부부는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의 에피소드들이 다시 언급되고 자료화면으로도 등장한다. 부부는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도 부부 상담가와 변호사 등 전문가들을 만나 상담을 받았고, 별거 기간과 부부간의 진지한 대화를 거쳐 결국 결혼 생활을 유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물론 방송은 정해진 기간이 있기에 최종선택을 내렸다고 해서 부부간의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문제의 원인을 확인했고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이어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그 다음은 부부간의 몫이다.
 
두 사람이 진지하게 부부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자꾸 '일회성'에 불과한 방송에 반복 출연하여 부부간의 사적인 갈등을 폭로하는 게 아니라, 전문 기관에 도움을 의뢰하거나 부부 스스로 먼저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부부는 <결혼과 이혼사이> 종영 이후 한동안 악플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성욱 역시 <금쪽상담소>에 출연하여 악플을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 김지혜는 방송출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일부 누리꾼들의 시선에 대하여 자신의 SNS에 "잘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저희들을 짓밟지 말아달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는 보란 듯이 또다른 상담 예능에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동반 출연했다. <금쪽상담소>에서 언급된 부부간의 갈등 내용은 <결혼과 이혼사이>에서 다루어졌던 내용의 재탕에서 한치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결혼과 이혼사이> 출연 이후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고 그동안 대체 무엇을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언급되지 않고 갈등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만 드러난다.
 
물론 오은영은 두 사람을 '천생연분'이라고 극찬하며 "끝사랑, 오늘부터 1일이 되라"는 덕담을 건넸다. 충분히 예상가능했던 솔루션의 결말이다. 하지만 몇 년간이나 풀지 못한 부부간의 고민이, 불과 오은영과 몇 시간의 상담으로 큰 깨달음을 얻고 해결되었다는 식의 묘사에 시청자들이 얼마나 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또한 자신들의 의지로 방송에서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노출하여 화제를 모았으면도, 정작 비판적인 반응은 악플이라고 듣기 싫어하는 출연자들의 모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엔터테인먼트화'로 성격 변질된 상담예능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의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이른바 상담 솔루션과 가족 예능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고민의 상품화'와 출연자들의 '겹치기 출연논란'은 최성욱-김지혜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역시 <결혼과 이혼사이>에 출연한 커플로 정주원-이유빈 부부는 지난 3월 방송된 SKY채널-채널A 부부 예능 <다시 뜨거워지고싶은 애로부부>에서도 '남편의 막말'이라는 같은 고민으로 출연한 바 있다.
 
코미디언 강재준-이은형 부부는 <1호가 될순없어> <동상이몽> <돌싱포맨> <금쪽상담소> <개나리학당> 등에 잇달아 출연하여 부부간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토크의 소재로 수없이 써먹었다. 최근에는 <금쪽상담소>에서 스킨십과 섹스리스 문제를 언급하는 등, 부부생활을 주제로 한 민감한 토크를 남발했고, 개그 욕심까지 겹치며 무리한 발언들을 쏟아내가다 대중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개그우먼 조혜련의 동생인 배우 조지환-쇼호스트 박혜민은 아예 '부부 사생활 폭로' 전문 출연자에 있어서는 대표주자로 꼽힌다. 조지환-박혜민 부부는 <애로부부>에 출연해서는 부부 성생활 문제를, MBN <속풀이쇼 동치미>과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는 고부갈등과 경제적 문제 등을 내세우며 여러 부부 예능에 릴레이로 출연했다.

시청자들은 여러 방송을 넘나들며 본업보다 선정적인 이슈와 가족사 팔이로 방송에서 'TMI(과도한 정보)'를 남발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들이 SNS와 유튜브를 통하여 방송에서와는 다른 일상을 공개하며 자신들이 판매하는 제품의 홍보 수단으로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부가 방송에서 보여준 진정성에 의구심을 자아냈다.
 
한편으로 이는 출연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은영표 솔루션으로 대표되는 상담예능이 하나의 고유한 브랜드이자 장르로 자리잡으면서, 치유와 공감이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일종의 '엔터테인먼트화'로 성격이 변질된 측면이 크다. 과거에 범람하던 연예인 신변잡기 위주의 토크쇼에서, 이른바 오은영에게 상담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토크쇼로 대체된 것이다.
 
오은영은 상담 전문가라는 권위를 바탕으로 MC에서 평론가, 해결사의 역할까지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전지전능하게 출연자의 고민들을 척척 해결해준다. 오은영의 주가가 높아지면서 일반인에서 연예인, 셀럽들까지 그녀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한다.

<금쪽상담소> <금쪽같은 내 새끼> <결혼지옥> <오케이 오케이> 등 그녀의 이름을 내세운 비슷비슷한 상담 솔루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발생한 또다른 문제는 출연자 섭외를 둘러싼 의구심이다. 정말로 상담과 치유가 필요한 일반인들도 있지만, 점점 유명세를 앞세운 연예인이나 셀럽 출연자들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나, 때로는 홍보를 위하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오은영표 상담예능에 고민을 의뢰했던 유명인 커플이나 가족들이 실제로는 방송을 위하여 갈등을 연출했다는 설정 의혹이 제기됐다. <금쪽같은 내새끼>에 출연했던 한 쇼호스트 출신 엄마 출연자는, 방송 직후 자신이 운영하는 유투브나 SNS에 방송출연 소식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홍보에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기도 했다.
 
오은영 본인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기가 점점 높아지면서 비슷한 프로그램에 무분별한 겹치기 출연은 물론,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영역에까지 섣부른 조언을 한다거나, 다른 방송에서 썼던 멘트들을 '돌려막기'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이 슬슬 제기되고 있다.
 
사람의 일생에는 누구나 고민과 갈등이 있다. 그동안 솔루션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모았던 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보편적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극복하면서 치유해나가는 자연스러운 공감대에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민과 갈등을 진정으로 치유하는 과정 자체는 뒷전이 되고, 자칫 갈수록 방송 출연을 위한 '명분과 가식'으로 변질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전문가와 제작진, 출연자 모두의 '오락화된 솔루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오은영 솔루션 상담예능 금쪽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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