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만화가 다드래기의 <혼자 입원했습니다-요절복통 비혼 여성 수술일기>는 제목 그대로 작가 자신이 경험하기도 한, 비혼 여성이 수술을 위해 입원해 겪은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다. 여러 측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지만 여성의 노동, 여성의 몸과 건강, 정상가족이라는 세 가지 열쇠말로 이 작품을 얘기해 보고 싶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동갑내기 친구 문조미와 6년째 함께 살고 있는 32세 콜센터 여성 노동자 조기순은 1년째 만성변비로 고생하고 있다. 변비 탓에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르는 그녀 덕에 문조미 역시 '환경적 요인에 의한 변비'에 걸릴 지경이다.

문조미의 충고로 부인과로 간 조기순은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고 수술을 위해 휴가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임원에게 반발해 홧김에 회사를 때려치운다. 간병이 필요하지만 엄마나 가족에게 수술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룸메이트 문조미와 다른 프리랜서 친구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하고 퇴원한다.

퇴원한다고 끝이 아니다. 재발률 50%가 넘는 자궁내막증의 재발을 막기 위해 6개월간 매달 호르몬 주사로 배란을 억제해야 한다. 그로 인해 갱년기 유사 증상, 신경통 등으로 힘들다. 그나마 때려치운 회사의 배려로 재입사를 하고 친구들과 지지고 볶으며 "우리는 아마 계속 건강하게 잘 살 수 있겠지요? 진짜 잘 살 수 있겠지요?"라고 불안한 희망의 질문을 던지며 만화는 끝을 맺는다.

폄하되는 여성의 노동
 
콜센터 노동자는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이다. 온갖 갑질과 성희롱에 노출된다. 노동감시도 심각해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다.
 콜센터 노동자는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이다. 온갖 갑질과 성희롱에 노출된다. 노동감시도 심각해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첫 번째 열쇠 말 여성의 노동. 조기순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지만 병원에 가기 위해 휴가 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그녀가 일하는 콜센터에는 해마다 두세 명씩 갑상선 암 환자가 생기는데도 남성 임원들은 한꺼번에 이삼백 명 모아놓으니 그렇게 보이는 거라며 쓸데없는 소리라 하고, 직원들이 고충을 호소하면 여자들은 일을 잘 안한다며 타박한다.

겨우 휴가를 내 검사를 받고 자궁내막증 진단에 따라 수술 날짜를 잡고 다시 휴가를 신청한 그녀에게 임원은 "그런 수술하는 사람이 한 둘이냐, 건강 관리도 능력인데 어떻게들 하고 다니는 거냐"며 호통을 친다. 그녀는 홧김에 회사를 때려치워 버린다.

콜센터 노동자는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이다. 온갖 갑질과 성희롱에 노출된다. 장시간 같은 자세로 전화를 받다 보니 어깨·목·허리·손목 등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과 수면장애, 청력손실, 우울증 등 산재를 입는다. 노동감시도 심각해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매년 계약이 갱신될 수 있을지 불안하다. 달리 갈 곳이 없어 만화에서처럼 때려치울 수도 없다. 콜센터 업무는 필수적이고 전문적인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필수적이고 전문적인 업무지만, 그녀들의 노동의 가치는 체계적으로 폄하된다.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폭로되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생리통은 무조건 참아야 한다?

두 번째 열쇠 말 여성의 몸과 건강. 조기순의 룸메이트 문조미는 첫 생리를 한 후, 정작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는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이제 남자들이 예쁘다고 만지려 하고 안으려 할 거다,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면 아기가 쉽게 생기니 조심하라는 어이없는 '성교육'을 받는다. 그러니까 성폭력은 조신하지 못한 여자 탓이다.

생리통이 아무리 심해도 약을 먹으면 내성이 생겨서 몸에 안 좋다, 아픈 건 애 낳으면 낫는다며 무조건 참으라고 한다. 생리통 약은 항생제가 아니니 내성 같은 건 생기지 않는다.

2003년 홍콩의 가수이자 배우인 매염방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했을 때, 조기순의 첫 남자친구는 자궁경부암은 성관계가 더러우면 걸린다, 배우니까 얼마나 관계가 복잡했겠냐는 망발을 한다. 남성에게 편향된 데이터로 설계되고 남성의 몸만을 표준으로 삼은 의료체계와 지식이 여성을 배제하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끼리 애틋한 마음으로 돕고 살겠다는데 왜?
  
 다드래기 <혼자 입원했습니다-요절복통 비혼 여성 수술일기>
  다드래기 <혼자 입원했습니다-요절복통 비혼 여성 수술일기>
ⓒ 창비

관련사진보기


세 번째 열쇠 말 정상가족. 학원 강사로 일하는 문조미는 조기순의 수술 당일 간병을 위해 휴가도 아닌 조퇴를 신청하지만 원장은 부모도 동생도 아닌 친구가 아프다는 이유로 조퇴를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되묻고, 동료들은 여자끼리 사귀냐고 수군대며 조롱한다. 6년을 같이 살았건만 결정적 순간엔 '남'인 것이다.

빡친 문조미는 "돌봐줄 가족 있든 없든, 여자끼리 사귀든 말든, 애틋한 마음으로 돕고 좀 살겠다는데 뭔 상관입니까"라며 동료와 원장에게 항의하고 병원으로 찾아가지만, 역시 현실에서는 쉽지 않을 일이다.

우리 법률상 가족 개념은 혈연과 혼인·입양만 인정될 뿐 조기순과 문조미처럼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 돌보며 보살피는 친밀한 관계는 알지 못한다. 이로 인해 특히 성소수자는 주거, 고용, 의료 등 여려 영역에서 차별을 받는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4월 6일 국회의장에게 성소수자의 생활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비단 성소수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법적 혼인과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한 가족 개념은 1인 가구, 비혼 동거, 무자녀 동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가족구성 실태도, 법적인 혼인·혈연관계가 아니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는 관계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국민 다수의 인식(여성가족부의 2021년도 '다양한 가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68.5%가 동의한다고 답변)도 반영하지 못한다.

게다가 정상가족 개념을 지탱하는 이성애 규범성은 성별이분법을 강화·지속시키고 나아가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타자를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그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정상, 보편, 표준, 규범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작품이 무겁고 진지하기만 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전혀 그렇지 않다. 만화답게 재미와 가독성이 최고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주제 의식을 직접적으로 전면에 드러내 독자를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독자가 웃으며 페이지를 넘기는 중에 자연스레 생각하게 한다.

의지와 상관없이 내뱉는 말 "똥 누고 싶어요"

웃음이 터지는 장면 두 가지만 소개하면서 마무리하자.

조기순은 병원에서 여기 저기 들러 이런 저런 검사를 받는 중에 성 경험 있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는다. 대체 그걸 왜 물어보나 했더니, 근종의 정도로 봤을 때 성관계 때 심한 통증이 있었을 텐데 괜찮았냐고 물어보는 의사에게 조기순은 "아니 뭐 관계가 있어야 알지요. 되게 옛날에 했는데 어떻게 압니까?"라고 말한다. (순간 얼음)

수술 직후 조기순은 간호사에게 "똥 누고 싶어요"라고 호소하면서 동시에 속으로는 '내가 지금 뭐라는 거야'라고 놀란다. 간호사는 여러 차례 관장했으니 나올 게 없다고 한다. 조기순은 속으로는 '으어어어 뭐래 닥쳐!' '배가 아픈 거야 배가! 그만 닥쳐라, 나!' 하면서도 "똥 마려워요"라고 연신 읍소한다. (대장과 난소의 협착이 심해 조작을 많이 해서 변이 보고 싶다고 느끼는 것임을 알면서도 마취가 깬 직후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헛소리였다.)
     

혼자 입원했습니다 - 요절복통 비혼 여성 수술일기

다드래기 (지은이), 창비(2021)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