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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누구한테도 비밀입니다."

성당에는 차가 없는 노인 분들을 위해 주일미사가 있는 일요일 오전 한 차례 전세 버스를 운행한다. 버스 탑승객 대부분이 연로한 노인 분들이다. 그 분들은 차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연로한 탓에, 운전에 대한 자신감 내지는 두려움 때문에, 자가운전보다는 성당에서 운행하고 있는 전세 버스를 이용한다.

마지막에 내린 할머니가 운전기사? 
 
일요일마다 한 차례 성당에서 운행하는 전세 버스.
▲ 성당을 운행하는 버스 일요일마다 한 차례 성당에서 운행하는 전세 버스.
ⓒ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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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에 운행되는 성당 전세버스는 항상 오전 10시 10분경에 정확히 성당에 도착했다. 한 분 한 분 버스에서 힘겹게 내려오셨다. 신자들이 버스에서 하차하는 관경을 가끔 지켜보기는 했지만, 버스를 운전하고 온 기사가 누군지는 한 번도 주시해 본 적이 없다. 평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아저씨 같은 인상의 일반적인 대중 버스 운전기사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차에서 탑승객이 전부 내리고 난 잠시 후, 팔순 이상의 나이가 지극해 보이는 외국인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존해서 차에서 힘겹게 내리셨다. 할머니는 성당에 마련된 그늘진 파고라(서양식 정자)를 찾아 편하게 앉으셨다. 할머니가 내린 버스 안에 운전기사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무관하게 아무도 없었다. 

분명 마지막으로 내린 사람이 할머니였는데 설마 운전자가 할머니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운전자가 사라져 버린 미스터리 같은 상황에서 갑자기 할머니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운전기사가 아니라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기대감 없이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 혹시 저기 서 있는 버스 운전기사님이세요?"
"예, 제가 저기 서 있는 노란 버스 운전기사인데요."


예상을 뒤엎는 답변이 날아왔다. 가능성을 열어 두지 못한 판단에 순간 머리가 멍해 왔다. 찰나의 순간이라 했던가. 그 사이에 할머니가 끼여 들어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였다. 이름은 우르술라(Ursula)라 하였다. 한국 이름이 아닌 이유도 있겠지만 친근한 이름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나이가 관건이었다. 할머니는 1938년생으로 올해 84세의 나이를 맞이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를 했다. 일반적으로 일할 나이도 아닌 상황에서 운전, 그것도 대형 버스 운전을 한다는 것이 좀처럼 납득이 가질 않았다.

"쉿! 이야기는 누구한테도 말하시면 안 돼요."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주위에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다.

고국은 당연히 캐나다일 것이라는 추측이 빗나갔다. 할머니의 출생 국가는 독일이셨다. 서독, 동독에 장벽이 설치되던 1960년도, 아버지는 그해 동독군의 습격에 총을 맞고 불운한 죽음을 당하셨다고 한다. 지금의 할머니는 어머님과 함께 캐나다로 망명을 하셨다고 한다. 현재 할머니에게는 65세의 딸이 하나 있다. 연세에 비해 생각했던 것보다 뒤늦게 운전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버스 운전을 한지 올해로 15년을 맞이하셨다고.

노령임에도 버스기사 일이 가능한 이유

"할머니, 혹시 저렇게 큰 대형버스를 운전하시기에 힘들지는 않으세요?"

할머니의 대답은 상상 이상이었다. 운전대만 잡으면 항상 가슴이 설렌다고 말씀하셨다. 일선에서 은퇴하고도 남을 연세에 가슴이 설렌다는 말을 듣는 순간, 거대한 충격이 몰려왔다.

나이가 많으셔도 운전면허 갱신을 위한 적성검사에도 무리 없이 통과하셨다고 한다. 왼쪽 다리가 불편해서 운전할 때에는 오른발이 대신해야 하는 번거로운 핸디캡을 가지고는 있지만 운전하는 데에는 특별히 불편함을 느끼시지 못하신다고 한다.

84세라는 나이 때문일까. 쉴 세 없이 할머니의 사소한 일상의 부분까지도 궁금증이 갈수록 불어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운행 횟수와 수입이 우선 궁금했다. 방학기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주 6일을 일하고 계셨다. 본업인 스쿨버스 운행 5일, 나머지 하루는 성당 전세버스를 운행하고 계셨다.

정부에서 노령 연금도 지원받는다고 한다. 버스 운행으로 버는 수입보다 캐나다 사회에서 나이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 무엇보다 제일 큰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단언하셨다.
 
벤치에서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고 곧 있을 운행 시간 때문에 지팡이를 짚고 운행할 버스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겨갔다.
 벤치에서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고 곧 있을 운행 시간 때문에 지팡이를 짚고 운행할 버스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겨갔다.
ⓒ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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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두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이유도 묻지 않으시고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할머니와 장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교훈을 소중하게 얻어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에 대한 열정과 감동이 그것이었다.
 
할머니는 운전하는 모습과는 달리 차에 올라타시는 모습이 많이 힘겨워 보이셨다.
 할머니는 운전하는 모습과는 달리 차에 올라타시는 모습이 많이 힘겨워 보이셨다.
ⓒ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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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사회에서는 능력만 있으면 나이에 구분 없이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직종에서도 칠순이 훨씬 넘어 보이는 노인분들의 일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오늘처럼 대형 버스를 운행하고 있으신 팔순이 넘은 할머니 운전기사는 처음이다.
 
할머니는 운전석에 능숙하게 앉으셨다.
 할머니는 운전석에 능숙하게 앉으셨다.
ⓒ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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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운전석 자리에 앉으셨다. 오늘 만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 시작의 나이라는 의미는 조건 없이 무의미해 보였다. 우리는 연로하신 분들이 손수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는 소식을 접하면 숱한 질타를 한다. 면허증을 반납하라는 혹독한 댓글이 가장 많다.

캐나다는 나이에 관계없이 능력을 우선 인정해주는 사회로 정착했기에 지금의 할머니도 일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할머니 존경스럽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함께 발행을 합니다.


태그:#버스 운전기사, #은퇴, #노령, #노인, #고령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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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Daum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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