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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터키에 체류하던 도스툼 원수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지지자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스툼 원수 측은 ‘링거를 맞으면서도 열정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도스툼 원수’ 같은 뉘앙스의 상기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오히려 도스툼 원수의 건강을 불신하는 이들이 전보다 더 늘어났다. 현재 그는 터키에 머무르며 재기를 노리고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 링거를 맞으며 업무를 보는 도스툼 원수(Marshal Dostum). 작년 8월 터키에 체류하던 도스툼 원수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지지자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스툼 원수 측은 ‘링거를 맞으면서도 열정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도스툼 원수’ 같은 뉘앙스의 상기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오히려 도스툼 원수의 건강을 불신하는 이들이 전보다 더 늘어났다. 현재 그는 터키에 머무르며 재기를 노리고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 도스툼 원수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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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 무너지고 전근대적 신정국가를 표방하는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이 출범했다. 아프간 북부에서 탈레반을 몰아내고 상당한 세를 구축했던 우즈벡·투르크멘계 군벌 도스툼 장군의 몰락이 결정적이었으나 미국 보호망만 믿고 자립할 생각조차 없던 아프간 괴뢰정부의 무능함이 공화국 붕괴의 근본 원인이었다. 특히나 파쉬툰계가 주축인 탈레반에 맞서야 할 북부의 우즈벡·투르크멘계 주민들조차 별다른 저항 없이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의 수립을 자연스레 받아 들였다.

당시 국내의 내로라하는 중동·안보 전문가들이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 집권이 결국 신장 위구르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하며 극단주의 테러단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의 존재를 언급했다. 즉 미군이 철수한 아프간에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들어섰으니 종교적 탄압에 신음하는 위구르 무슬림을 돕고자 탈레반이 행동에 나설 거란 예측이었다.

반면 필자는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중국이 벌벌 떠는 탈레반의 기막힌 실체 http://omn.kr/1upko'에서 힘겹게 정권탈환을 이뤄낸 탈레반은 결코 중국을 공격할 의도나 능력이 없다고 지적하며, ETIM은 중국이 만들어낸 허상인데다 오래전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들의 적극적 공세로 중앙아에선 자취를 감췄음을 설명한 바 있다.
 
중국 신장과 국경을 맞대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은 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이며 위구르족과 역사문화적으로 밀접한 친족관계를 맺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역시 SCO 회원국으로 올해 의장국을 맡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SCO를 NATO 혹은 CSTO에 버금가는 안보조약기구로 확대시키려 노력중이다.
▲ 지난 25일부터 이틀간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 외교장관 회의 모습. 중국 신장과 국경을 맞대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은 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이며 위구르족과 역사문화적으로 밀접한 친족관계를 맺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역시 SCO 회원국으로 올해 의장국을 맡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SCO를 NATO 혹은 CSTO에 버금가는 안보조약기구로 확대시키려 노력중이다.
ⓒ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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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사 '탈레반이 중국 코털도 못 건드리는 이유'에선 중앙아시아에서 몰라보게 높아진 중국의 위상과 그 원인을 살펴보고, 후속편 '위구르 독립운동가는 왜 야스쿠니를 참배했나'에선 위구르 해방운동의 암울한 현실과 그 미래에 관해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러시아·중국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작년 8월 아프간 위기가 고조되자 미국·영국·일본·한국 등 이른바 '자유민주진영'은 자국민 철수뿐 아니라 공관까지 폐쇄해 버렸다. 이에 한국 주류언론들은 금방이라도 탈레반의 대규모 숙청·학살·테러가 이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며칠 후 날아든 '판지시르의 사자' 고 마수우드 장군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우드가 이끄는 저항군 소식은 더 큰 정국혼란을 예고하기도 다. 반면 이슬람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러시아와 중국은 공관폐쇄를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의 불안정한 치안을 개선할 것으로 내다봤다.

잘 알려진 것처럼 소련·아프간 전쟁(1979-1989)은 소비에트 연방을 무너트린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당시 소련군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무자헤딘 전사들이 바로 오늘날의 탈레반 집권층에 대거 포진해 있다. 중국 또한 테러·분리주의·극단주의를 3대 악으로 규정하며 신장 무슬림 탄압의 명분으로 이슬람 원리주의 예방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러시아와 중국의 태도는 오히려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의 표본과도 같은 탈레반을 감싸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탈레반 정부 수립 초기 이란으로 탈출하겠다던 필자의 지인조차 마음을 바꾸곤 현재 자우즈잔 대학교에서 예전처럼 평범한 교원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달라진 점은 월급이 3분의 1로 줄었다는 것뿐이다. 즉 서방의 예상과 달리 탈레반은 1996년 1차 집권기에 벌였던 무자비한 학살극이나 인권탄압을 자행하는 대신, 보다 안정되고 성숙한 국가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대(對) 중앙아 외교에 능란한 러시아는 그렇다쳐도 중국이 아프간의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경거망동하지 않은 점은 놀랍다. 그 비결이 뭘까?

일대일로 첨병으로 부상하는 신장런(新彊人) 세대

최근 필자는 사마르칸드 공자학원에서 일하는 어느 중국어 교사를 만났다. 리(李)라는 성을 가진 30대 중반의 독신 남성인 그는 (이하 리선생으로 칭한다) 얼핏 보기엔 세종학당 한국어 교사들처럼 평범할 뿐이었다. 그러나 대화를 거듭할수록 그의 중앙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언어감각이 필자를 놀라게 했다. 리선생은 본인의 모어(母語)인 북경어뿐 아니라 위구르어, 우즈벡어, 타직어, 아프간 다리어까지 현지어 대부분을 섭렵해 있었다. 우즈벡에 부임한지 고작 일 년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십 년 이상 중앙아 역사를 연구해온 필자의 노하우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세종학당은 프랜차이즈처럼 사설학원이 공공기관인 세종학당재단의 인준을 받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세종학당 교사는 한국어 교습능력의 요건만 갖추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다. 반면 중앙아의 공자학원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중국 공산당의 철저한 관리 하에 운영되는 직영점이다. 중국어만 아니라 현지문화 및 언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공자학원의 목적이 단순히 중국어·중국문화의 세계전파가 아닌, 과거 서구열강이 식민지에 파견했던 선교사들처럼 정보전을 겸하는 스파이 양성소임을 반증한다.
▲ 공자학원과 세종학당의 로고.  세종학당은 프랜차이즈처럼 사설학원이 공공기관인 세종학당재단의 인준을 받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세종학당 교사는 한국어 교습능력의 요건만 갖추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다. 반면 중앙아의 공자학원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중국 공산당의 철저한 관리 하에 운영되는 직영점이다. 중국어만 아니라 현지문화 및 언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공자학원의 목적이 단순히 중국어·중국문화의 세계전파가 아닌, 과거 서구열강이 식민지에 파견했던 선교사들처럼 정보전을 겸하는 스파이 양성소임을 반증한다.
ⓒ 공자학원과 세종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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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앙아에서 활동하던 중국인들은 위구르족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가까운 친족관계를 갖는 현지 민족들과 손쉽게 교류하며 중국 내지 상품을 중앙아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한때 위구르족으로 중국 부호 10위권 안에 들기도 했던 레비야 카디르 여사 또한 91년 소련해체 이후 중앙아 무역을 통해 재벌로 성장한 인물이다. 한족들은 언어·문화·종교적으로 이질적인 중앙아 민족들을 직접 상대하는데 부담을 느꼈고, 이로 인해 초기엔 위구르족 같은 무슬림 소수민족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레비야 카디르는 두 차례나 세계위구르대회(World Uyghur Congress) 의장을 지낸 위구르 해방운동의 정신적 지주이다. 90년대의 그녀는 중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성공한 소수민족 재벌이었다. 그녀의 아키다 그룹은 중앙아의 대규모 무역 네트워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했고, 우루무치에 수십 채의 상가와 빌딩, 백화점까지 보유했다. 그러나 99년 공안에 체포돼 장기간 수감생활을 거친 끝에 미국으로 망명했고 이후 그녀의 아키다 그룹은 당국에 의해 공중분해 되었다.
▲ 고 아베 신조와 레비야 카디르 여사. 레비야 카디르는 두 차례나 세계위구르대회(World Uyghur Congress) 의장을 지낸 위구르 해방운동의 정신적 지주이다. 90년대의 그녀는 중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성공한 소수민족 재벌이었다. 그녀의 아키다 그룹은 중앙아의 대규모 무역 네트워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했고, 우루무치에 수십 채의 상가와 빌딩, 백화점까지 보유했다. 그러나 99년 공안에 체포돼 장기간 수감생활을 거친 끝에 미국으로 망명했고 이후 그녀의 아키다 그룹은 당국에 의해 공중분해 되었다.
ⓒ World Uyghur Con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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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80년대부터 다수의 가난한 한족 농민공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버리고 서북 변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신장 출생 혹은 유년시절 대부분을 신장에서 보낸 아이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은 곧 중앙아의 언어·문화에 친숙한 한족 청년들로 성장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보다 신장의 주도(區都) 우루무치를 유행의 중심지로 여기는 그들을 중국에서는 '신장런(新彊人)'으로 부른다.
 
한족 가수이자 코미디언 왕양(王洋)은 신장 카쉬가르 출생으로 굴자(伊?)에서 자랐고 우루무치에서 활동하는 독특한 배경을 지녔다. 그는 2017년 신장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新疆人》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신장 출생 한족 청년들의 자부심과 애향심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어디를 가든 나는 내 고향, 내 신장을 노래하네)” 리선생 역시 신장의 주요도시 코를라(Korla) 출신이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만이 아니라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중국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 왕양(王洋)의 가요 《新疆人》 포스터.  한족 가수이자 코미디언 왕양(王洋)은 신장 카쉬가르 출생으로 굴자(伊?)에서 자랐고 우루무치에서 활동하는 독특한 배경을 지녔다. 그는 2017년 신장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新疆人》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신장 출생 한족 청년들의 자부심과 애향심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어디를 가든 나는 내 고향, 내 신장을 노래하네)” 리선생 역시 신장의 주요도시 코를라(Korla) 출신이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만이 아니라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중국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 王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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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중앙아에 선교사... 중국은 스파이 보낸다

과거 필자가 우루무치에 있을 때, 현지 한국인들은 생업보다 선교에 열심이었다. 신장 공안(公安)들도 이에 질세라 필자를 선교사로 오인하고 숙소까지 쫓아와 괴롭히곤 했다. 그런데 가까운 우즈베키스탄에 오니 한국인의 선교력(?)이 신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다만 선교사들의 현지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 언어능력은 신장 선교사들만큼이나 형편 없었다. 그들의 무지와 방만으로 인해 2007년 샘물교회 피랍사건이라는 국가적 재난이 초래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중앙아에서 활동하는 중국인들은 철저히 '국익'과 '안보'의 두 가지 측면에 집중한다. 공자학원은 이러한 대승적 목표를 위해 친중파 양성의 메카이자 정보수집의 허브로서 기능한다. 특히 공자학원 교사들은 모두 한족임에도 러시아어는 물론 리선생처럼 현지어에 능통한 요원(?)들도 상당수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신장 출신들의 중앙아 진출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그래서일까 필자가 만난 현지인들 대다수가 중국에 큰 호감을 갖고 있었다. 위구르족을 동정해 중국을 경계하고 적대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히려 생활 전반에 물밀 듯 쏟아지는 중국산 제품들은 중국의 위상을 러시아와 대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2편 '위구르 독립운동가는 왜 야스쿠니를 참배했나 http://omn.kr/205ys'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알림잔(송호림)은 東西 투르키스탄의 근현대사와 고전 차가타이어를 연구하는 독립적인 아마추어 사학자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위구르 문제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며 실제와 다르게 소개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거주하며 페이스북에 '중앙아시아 연구회(Central Asia Research Group of Korea)' 모임을 운영 중이다.


태그:#탈레반,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일대일로, #공자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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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 역사문화를 중심으로 고전 차가타이어와 지역 근현대사를 탐구하는 아마추어 연구자입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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