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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계속 가보겠습니다>, 메디치, 18000원.
 임은정, <계속 가보겠습니다>, 메디치, 18000원.
ⓒ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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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대구지방검찰청 부장검사의 첫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메디치)가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지난 10년 동안 임은정 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게시한 글 19편과 2019년 이후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 13편을 자세한 후일담과 함께 담아놨다.

과거사 재심에 무죄 구형했다고 '도가니 검사'가 '빨갱이 검사'로

검찰의 내부고발자로 이름을 알린 임은정 검사.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검찰의 치부를 드러내고자 마음 먹고 검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딸 부잣집의 막내로 태어나 법관이 되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람에 자식으로서 부응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20대 젊은 나이에 '영감님' 소리를 듣게 됐단다. 발령 후 10년은 실적을 중시하는 평범한 검사였다고.

2011년 임 검사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광주 인화원 성폭력 사건의 공판검사를 맡은 사실이 영화 <도가니> 개봉 후 뒤늦게 언론에 알려지면서 '도가니 검사'로 이름나게 된다.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으로부터 격려의 말과 선물도 받았다. 스타 검사로서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았던 시절이랄까.

하지만 그는 예정된 성공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2012년, 임은정 검사는 박형규 목사의 민청학련 재심사건, 윤길중 전 의원의 반공법 위반 재심사건에서 연달아 무죄를 구형해 검찰 수뇌부의 눈밖에 나게 됐다. 공안부에서는 관행에 따라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는 소위 '백지구형'을 지시했지만 임 검사는 징계를 각오하며 끝내 무죄를 구형했다. 임 검사는 무죄구형을 결심한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죄를 무죄라고 하지 않는, 검사들을 앵무새 취급하는 검찰을 내버려 둔다면,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본디오 빌라도와 무엇이 다른가? 내가 이의 제기를 했으니 할 만큼 했노라고 손을 씻고 물러선다고 하여 책임을 피할 수 있나? 본디오 빌라도가 되어 검찰이 과거사 피해자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걸 내버려 두느니, 내가 검사의 십자가를 감당하자.
 
그렇게 '검사의 십자가'를 감당하게 된 임 검사는 '도가니 검사'에서 약 1년 만에 '막무가내 검사' '빨갱이 검사'로 불렸다. 검찰은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에 임 검사는 징계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5년의 행정소송 끝에 대법원은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결 내렸다.

임은정의 '디딤돌 판례' 만들기
 
'피렌체의 식탁'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임은정 검사.
 "피렌체의 식탁"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임은정 검사.
ⓒ 피렌체의 식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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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징계 취소 판결 이후 검찰은 '과거사 재심 사건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더 이상 다투지 말고 무죄 구형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른다. 무죄를 구형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내리던 검찰에서 이제는 반대로 무죄를 구형하는 것이 옳다고 입장을 180도 선회한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변화에 임은정 검사는 "검찰의 돌변은 정권 교체 때문이겠지만 제 징계 취소소송 판결 영향이 없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벅찬 희열을 느꼈"다며 "검사 인생을 건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바로 '디딤돌 판례 만들기'다. 임 검사는 디딤돌 판례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검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도 상사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검찰의 잘못임을 명확히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검사도 처벌받는다는 당연한 명제를 판결로 확인받기 위한 대(對)검찰 선전포고.
 
그는 검찰을 향한 선전포고에 앞장섰다. 서울남부지검 성폭력 은폐 사건, 부산지검 고소장 위조 등 사건 은폐사건,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 등 검찰의 부조리함을 연이어 고발하며 검찰의 민낯을 법의 이름으로 파헤치고자 노력하고 있다.

'별종 검사'가 아닌 정부의 의지가 절실한 검찰 개혁이지만...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에 계속 등장하면서 기함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익명 검사들의 견해들에 비하면 임은정 검사가 견지하는 견해는 '공익의 대표자'임을 강조하는 '검찰 선서'에 부합하는 검사임을 보여준다. 임 검사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별종 검사'다.

그러나 '검찰의 십자가'를 임은정이라는 개인이 짊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임 검사도 법의 힘을 빌려 '디딤돌 판례'를 쌓고자 힘을 쏟는 것. 하지만 부조리에 저항하는 개인은 소수고 법의 판결은 1, 2년은 가볍게 시간을 끌며 개인을 갉아 먹는다. 결국 검찰개혁 역시 그릇된 구조 자체를 바꿀 힘을 지닌 권력, 즉 정부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의지'는 어떨까.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인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지난 26일 대통령 업무보고 후 취재진으로부터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 강화에 수반돼야 할 수사권 오남용 및 인권침해 시비 극복 방안, 검찰의 민주적 통제 방안에 대한 구상'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한 장관은 "검찰 수사가 그동안 해온 국가에서의 범죄대응 역량이 심각하게 줄어들게 된 상황"이라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범죄대응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수사권) 오남용에 대한 어떤 대책 같은 건 어떤 수사 체제라든가 권력 행사에서 다 있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당연히 디폴트값으로 준비해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법률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검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도 말을 아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구조적 개혁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임 검사같은 내부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은 이런 검찰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할까. 
 
지난 14일 서초동 대검찰청의 모습.
 지난 14일 서초동 대검찰청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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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부고발자의 기록을 넘어... 변화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

임은정 검사는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는 '결과 보고'가 아닌 '중간 보고'라고 했다. 그는 책의 제목대로 가야 할 길이니 계속 가보겠으나 함께 간다면 세상이 좀 더 빨리 바뀌지 않겠냐면서 독자들을 설득한다. 그 길에 동행하는 방법은 각자 다를 것이다. 구조적 개혁을 원하는 인물을 투표를 통해 권력에 위임할 수도 있고, 임 검사 같은 개인을 나름의 방식대로 연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다만 확실한 점은 동행하는 이들 모두의 공통된 목표가 더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는 데 있다. 비단 검찰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처한 여러 어려움들을 마주할 때, 결국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다는 공통점을 잊지 않는다면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는 검찰의 잘못에 대한 한 내부고발자의 생생한 투쟁 기록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하나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 -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

임은정 (지은이), 메디치미디어(2022)


태그:#계속 가보겠습니다, #임은정,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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