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핀, 배롱나무 꽃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핀, 배롱나무 꽃 ⓒ 김혜원


인근에 나무와 꽃이 많다는 건 큰 축복이다. 이른 봄에는 눈물처럼 피고 지는 목련과  아찔한 벚나무 아치가 있고, 늦은 봄엔 갖가지 색의 영산홍과 철쭉이 화단을 뒤덮어 자꾸만 발길을 멈추게 하더니, 한여름의 전령사를 자처하는 건 바로 집 초입의  백일홍이다. 정확한 이름은 '목 백일홍' 혹은 '배롱나무 꽃'이고. 작은 꽃잎들이 사이좋게 뭉쳐져 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몽글거리는 꽃이다.

지독한 혹서의 기운을 지닌 도시에 사는 괴로움을 단박에 상쇄시켜주는 배롱나무 꽃은,  여름의 기운을 내내 지니고 이렇게 더위를 견디는 꽃도 있으니, 당신들도 힘을 내 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꽃인 것만 같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들면 극도로 외출을 삼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하루의 루틴에 따라 운동만은 멈출 수가 없어 나갔다 오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예의 그 수줍은 새색시의 홍조 같은 빛깔로 '오늘도 잘 견뎌내셨군요, 좋아요! 내일도 그렇게 힘을 내 봐요'라는 말을 건네며 등을 두드려주곤 한다.

그래서일까, 몇 번의 가지 치기 끝에 몸집이 몹시도 아담해져 버린 그 나무에 연분홍 꽃으로 토실하게 살이 오르기 시작하면 알 수 없는 신열이 끓어오르곤 한다. 이는 필시 이성복 시인의 시, '그 여름의 끝' 때문일 게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 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로 시작하는 몸을 한 없이 달뜨게 만드는 그 시 말이다.

고백한다. 이 시를 처음 접하기 전까지, 꽃과 나무의 이름들을 다정하게 불러보거나, 하루를 앓을 정도로 마음을 빼앗겨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시의 놀라운 핍진성은 나를 꽃의 세계, 아니 더 정확하게는 꽃이 지닌 질긴 생명력의 세계로 인도하며 앞으로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임을 예고해 주었다.

그리고 그 여름의 끝에 묘사된 꽃, 배롱나무 꽃의 이야기에 몰입한 그 후, 해마다 피고 지는 꽃이지만 그 꽃들이 지닌 사연에 눈과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 열린 눈과 귀는 음악이라는 강을 건널 때, 훌륭한 인도자가 돼 주었다.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사연

사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엔 각 계절마다 그 계절을 대표하는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 눈길을 머물게 한다. 하지만 왠지 봄이나 가을에 피는 꽃들보다 여름, 혹은 겨울을 자신의 계절로 삼은 꽃들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것은 왜일까. 신청곡 코너에 올라오는 사연만 봐도 그렇다. 긴 겨울을 끝내고 새 봄에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올라치면 청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야말로 꽃노래에 꽂혀버린다.

"아침 출근길에 활짝 핀 벚꽃이 너무 예뻤어요, 벚꽃 노래 좀 틀어주세요"라든가,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어린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런 가사 나오는 노래 부탁합니다"는 기본이고 가사가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무조건 꽃노래가 듣고 싶으니 2부엔 꽃노래만으로 채워달라는 다소 무리에 가까운 사연도 있었다. 가을이라고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더해지면 더해졌지.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잖아요. 코스모스가 등장하는 노래 듣고 싶습니다"부터 "국화향기 가득한 노래, 어디 없을까요?"까지 다양하다. 요즘처럼 검색 기능이 없던 시절, 그야말로 음악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프로듀서와 작가는 음악에 관한 한 '걸어 다니는 사전' 이 되어야 할 만큼 청취자들의 요구는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았다. 물론 경험이 축적되기 시작하면서 이런 사연들은 소중한 데이터 베이스가 됐지만.

그런데 계절이 여름이나 겨울로 옮겨오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된다. 가뜩이나 덥고 추운데 사람들에겐 꽃을 볼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열대야에 시달려 퀭한 눈으로 일터로 향하면서, 혹은 잔뜩 움츠린 채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봄날의 그 서정성이나 가을의 낭만으로 신청곡을 띄우는 경우도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어쩌면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날,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어느 한 여름의 두 달쯤 다양한 여름꽃들의 사연과 함께 유독 한 곡의 노래만을 주야장천 신청하는 청취자가 있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사연의 주인공, 그는 몹시도 의문을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여름꽃, 그러니까 앞서 언급했던 내 인생의 모멘텀을 가져왔던 목 백일홍이나, 해바라기, 나팔꽃, 능소화, 그리고 일반인들에겐 너무 생소한 각시원추리 같은 꽃들을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말미에는 꼭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신청한 사연자가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꽃의 종류와 꽃말. 그리고 섭생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지 때로는 놀라울 정도였다.

아무리 검색을 한다고 치더라도 정성이 묻어나는 꽃들에 대한 설명은,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다른 청취자들에게 들려주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을 굉장히 훌륭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항상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었는데, 문장은 이랬다. "이렇게 꽃이 아름답지만, 그래도 사람꽃보다 아름다운 꽃은 없습니다. 우리 서로에게 아름다운 꽃이 되도록 노력하며 삽시다".

어떤 꽃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으음-음--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 안치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사


꽃이 아무리 제 각각의 모습으로 아름다워도 사람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수 있겠느냐는 사연은 이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가진 메시지에 정확하게 부합하고 있었다. 항간에 떠돌며 사람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던 한 시인(정지원 시인으로 노래가 발표된 지 한참 후,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을 발간하게 된다)의 시를 기반으로 안치환이 가사와 곡을 쓴 노래이다.

이 곡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고요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며 스며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무엇보다 서정적 노랫말을 일순에 흔들어 버리는 곡의 흐름과 힘 있는 안치환의 목소리가 묘한 위로를 건네주고는 했었고.  

거의 여름 내내 이틀이나 사흘 간격으로 도착하는 이 사연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담당 피디를 비롯, 엔지니어와 어느 날엔 출연자까지 합세해 이 사람의 직업을 추리하기에 나섰다.

"꽃에 대해서 이렇게 소상한 이야기들을 나열할 정도면 꽃집 사장님 아닐까요?"
"그건 너무 원초적인 추리지! 아마도 꽃을 전공한 원예가이거나 연구하는 학자일 확률이 더 높아!"
"에~헤이!, 그냥 검색해서 자기 사연이랑 버무렸다니까요, 이런 건 검색하면 다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서로 자기 추론이 맞다며 간혹 목소리가 높아지기까지 했다. 그 모든 추론 중에서도 내 것은 좀 달랐다. 이 사연자가 어떤 사람이냐 보다는 왜 이렇게 꽃에 집착하는지, 그것도 봄도 아닌, 가을도 아닌 여름 꽃에 천착하는지에 의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왜 그의 신청곡이 그 많고 많은 꽃노래들 중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한 곡으로  귀결되고 있는지를 파고들었다.

결론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아마 그도 나처럼 어떤 여름 꽃에 의해 인생의 전환이 될 만한 순간을 맞게 됐고 그때 딱, 귀에 들렸거나 마음속으로 떠올린 곡이 이 노래일 거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어쩌면 꽃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귀결되는 자기만의 사연이 있을 수도 있었을 수도 있고, '꽃과 사람' 묘하게 양립하는 두 가지의 생명 사이에서 그이는 어쩌면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의 사연은 유난히도 무더웠던 그해 여름, 스튜디오에 갇혀 사는 프로그램의 스태프들을 잠시나마 웃게 만들었던 소중하고도 고마운 사연이었다. 비록 방송법에 따라 매번 그의 사연이 채택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이성복 시인이 시인의 눈으로 읽어낸 배롱나무 꽃의 성정은 강인 함이다. 태풍이 몇 차례 지나가도 스러지지 않는 힘을 지녔다. 그것은 한 여름 닥쳐온 시련에도 꿋꿋하게 꽃을 피워내, 바라보는 이들의 절망을 거짓말처럼 사라지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힘이다. 시인은 배롱나무 꽃에 자신을, 그리고 사람을 이입한다.

안치환의 노래에 나오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은 아닐는지. 어떤 외로움, 어려움 다 이겨내고 마침내 짙푸른 숲도 되고, 산과 강이 되어 생의 한가운데로 오롯이 스며드는 그런 사람.

무더운 여름에도 꽃은 핀다.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꽃들이 지천이다. 어쩌면 이 혹독한 계절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기에 여름꽃들은 그렇게 더 진한 빛깔을 지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한 해 여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자던 사연의 주인공은 지금 어떤 꽃을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세월에 함몰돼 꽃이 아름답든, 사람이 아름답든 자연의 거대한 순리 앞에선 무슨 소용이랴 싶다가도 가끔은 눈길을 잡아채는 꽃에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주변에서 그 매혹의 향기에 젖고픈 것도 저항할 수 없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혜원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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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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