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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인가. 1986년도쯤 된 걸로 기억한다. 가톨릭맹인선교에서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를 위한 강연을 열었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시각장애인 선배의 강연이었다. 선배는 과학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시각장애인은 더욱 소외된다고 했다. 과학과 문명이 시각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채 발달하다 보면, 시각장애인은 또 다른 장애의 벽에 부딪힌다는 얘기였다.

당시 나는 그 얘기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면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고 편하게 살 텐데, 유독 시각장애인만 힘들어진다니. 선배에게 질문했지만, 뚜렷한 답은 듣지 못했다.

그 후 한참이 지나서야 그때 선배가 했던 얘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영등포의 아파트에는 무인셀프편의점이 있다. 들어가면 아이스크림과 과자가 진열돼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인 내게는 그림의 떡이다. 원하는 과자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찾는다고 해도 결제하기가 쉽지 않다.
 
무인셀프편의점에서 물건을 구매하지 못하는 기자
 무인셀프편의점에서 물건을 구매하지 못하는 기자
ⓒ 조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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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구매해보려고 무인 단말기(키오스크) 앞에 섰다. 바코드로 추정되는 곳에 물건을 가져다 대 봤다. '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있는데, 누군가 물건을 사기 위해 매장에 들어왔다. 헤매는 내 모습을 보고 "아저씨 두 번 찍혔어요"라고 말해줬다. 과자 하나를 사려 했는데, 두 개의 값을 치를 뻔했다.

'도움'을 받아 키오스크를 이용하라고?

이렇게 무인점포는 불편을 넘어서 시각장애인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영화관, 경기장,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 등 일상 속에 키오스크는 수없이 많다. 스마트폰과 스마트TV,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을 더욱더 힘들게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야말로 또 하나의 장애의 벽이 생긴 셈이다.

7월 초, 코로나19로 3년 동안 문 닫았던 우리 지역 장애인복지관이 개방됐다. 오랜만에 복지관을 방문했다. 3년만이라 그런지 구조도 변했고 도움받을 안내 창구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돼 식권을 구매하고자 창구를 찾았다.

식권 구매하는 곳이 키오스크로 바뀌어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복지관에 웬 키오스크인가. 이리저리 만져 봐도 도저히 식권을 구매할 수가 없었다. 10여 분을 허덕이다 복지관에 근무하는 직원을 통해 간신히 식권을 샀다. 만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점심 한 끼를 굶어야 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식권을 구매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기자.
 장애인복지관에서 식권을 구매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기자.
ⓒ 조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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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용한 키오스크에선 기본적인 음성 안내가 나오긴 했지만, 시각장애인이 사용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음성 기능은 따로 탑재돼 있지 않았다. 첫 화면에서 버튼을 누르기 전까진 안내가 나오지 않아, 시각장애인일 경우 시작부터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였다. 

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다. 물론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은 아니고, 전 유형의 장애인을 위해 서비스하는 곳이다. 하지만 장애인복지관이란 곳이 어찌 시각장애인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직원을 붙잡고 "장애인 복지관에 왜 이런 키오스크를 설치해 시각장애인을 불편하게 하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우리(직원들)가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시각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 비장애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원하는 메뉴를 골라 사 먹고 싶다.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는 시각장애인은 아무도 없다. 

키오스크를 '장벽' 없이 이용할 수 있기를 

지난 11일 오전,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는 서울시청 근처의 유명 패스트푸드 매장을 찾아 단체로 키오스크를 이용해보는 집단 행동을 벌였다. 시각장애인들이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 겪는 어려움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시위였다.

이들은 "(해당 매장의 키오스크는) 전맹 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기능이 전혀 없고, 저시력 장애인을 위한 화면 확대 기능도 무의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키오스크 무인단말기 설치율은 높아지고 있는 데 비해, 장애인을 위한 안내 기능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을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 인건비와 편리성 측면에서 앞으로도 키오스크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은 앞으로 훨씬 더 힘든 생활을 참아야 할지 모른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조속히 해결돼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도 해당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난 13일, 김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의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 이용 관련 권리보장을 위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이 하루빨리 좋은 결과로 맺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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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 속에서도 색채있는 삶을 살아온 시각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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