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주연'과 '조연', 그리고 '단역'의 구분은 있을지언정 연기와 인생의 주연, 조연은 따로 없습니다. 액터 인사이드는 연기를 해오며 온갖 희로애락을 겪었을 배우들을 응원하는 코너입니다.[기자말]
 
한상조 배우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오두환 역의 한상조 배우.

▲ 한상조 배우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오두환 역의 한상조 배우. ⓒ 이정민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두환은 일종의 숨구멍이었다. 중심 인물들이 저마다 번뇌하고 갈등을 빚을 때 두환만큼은 늘 제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기 때문이다. '유기견'이라는 별명처럼 누군가에겐 버림받고 상처받은 존재일지언정 끝내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그 본성은 변하지 않는 인물이다.
 
1화부터 15화까지 곳곳에 등장하며 창희(이민기), 미정(김지원), 기정(이엘) 삼남매의 든든한 친구였던 그 캐릭터를 무명에 가까운 그가 연기했다. 나름 무대에서 그리고 여러 독립영화와 단편에서 조단역을 맡아온 배우 한상조다. 드라마 종영 후 난생 처음 소속사도 생겼고, 차기작 또한 일찌감치 정해진 그는 "작품이 끝난 후 다시 단역 배우로 돌아가는 거라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뭔가 이젠 조연급 캐릭터 제의가 오고 있다. 너무 감사한 일"이라며 근황을 전했다.
 
두환이 만들어지기까지
 
본래 유기견 캐릭터는 독립영화계에서 개성 있는 연기로 자릴 잡아온 배우 김충길이 우선 순위였다. 일정상 그가 참여하지 못했고 연출자인 김석윤 감독은 대대적인 오디션을 진행했다. 2018년 무렵부터 국내 제작사를 돌며 프로필을 직접 돌려온 한상조는 "<나의 해방일지> 캐스팅 담당 이사님이 제가 아주 예전에 돌린 프로필을 보셨더라"며 "사실 그때만 해도 단역만 해도 출연만 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았다"라고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지정 대본을 몇 개 주셔서 준비했는데 그게 두환의 대사였다. 이사님께서 프로필에선 노안이라 불렀는데 생각보다 어려 보인다고 하셔서 떨어졌구나 싶었지. 단념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김석윤 감독님께서 두환의 신체구조랄까? 그게 저와 맞아떨어진다고 잘해줘야 한다고 하시더라. 소속사도 없는 무명배운데 이런 배역을 주셔도 되는지 여쭤보니 감독님도 불안하지만 충분히 잘해줄 거라 믿는다고 해주셨다. 전체 리딩 때도 실감이 안 났다. 첫 촬영 날짜가 잡혔을 때에야 마음이 놓이더라. 언제든 저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로 배역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경기 남부권인 산포시라는 가상의 동네, 그곳에 자리 잡은 두환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젊은 나이임에도 대도시로 떠나지 않고 카페를 운영하며 동네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는 두환을 두고 한상조 또한 고민이 많았다. 감독과 상의한 끝에 본래 본인의 모습에 두환이라는 캐릭터를 입히는 방향으로 갔다고 한다.

서울 동대문구 토박이인 그는 실제로 경기 남부에 사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촬영 전 해당 지역에 답사를 가기도 했다고. "실제로 두환과 비슷한 이미지의 아저씨가 계시더라. 무념무상으로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계셨는데 사람 구경을 하시며 웃고 계셨다. 실제 두환이라면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캐릭터 잡기가 참 힘들었다. 감독님이 제 말투를 보시더니, 한상조라는 사람에 두환이를 조금 입히자고 하시더라.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다. 평소 말투, 빠르기 그대로 가라고, 뭔가 연기하려 하지 말자고 하셨다. 두환이가 화도 잘 못 내고, 살짝 어리버리하고, 순박한 사람인데 저도 사실 모태솔로다(웃음). 산포시의 터주대감인데 나름 그의 전사를 만들어봤다. 아마 과거에 운동을 했는데 부상이나 집안 사정으로 그만 두고, 부모님 중 한분이 안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놀랍게도 14화에 창희를 위로하는 대목에서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 슬프지 않았어'라는 대사를 하잖나. 그만큼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아 애정 결핍이 좀 있고, 친구들이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서울로 가는 게 두려운 거지. 산포시에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놓고 욕심 없이 좋아하는 친구들과 흘러가는 대로 사는 인물로 해석했다. 정말 유기견 같은 존재지. 창희가 제 견주라고 생각했다. 10화에 쫄래쫄래 따라가는데 창희가 돌을 던지며 쫓아내는 장면이 있는데 일부 시청자께서 정말 불쌍한 강아지 같다 하시더라(웃음)."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 jtbc

  
소심했던 아이
 
1993년생인 그는 2017년 연극 <걸리버 여행기>로 본격 무대 연기를 시작했다. 그전까진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연기공부와 생계를 병행했다. 그는 "문득 이대로 가다간 답이 없다 싶어 직접 프로필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정말 출연하고 싶은 작품의 제작사엔 일주일 내내 찾아가기도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함께 공부한 동료들은 쭉쭉 치고 나가는데 저만 제자리인가 싶었다. 2018년까진 공연만 하다가 다음 해부터 프로필을 돌렸다. 2020년 때는 정말 열심히 돌렸다. 사실 그 직전 연기를 그만둘까 싶었는데 할 줄 아는 게 연기뿐이라 남들보다 잘하진 못해도 열심히는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정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이미지 단역을 해도 좋으니까 후회를 남기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때 비디오 빌려서 영화 보는 걸 좋아했는데 꽂히면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하곤 했다. 그 긴 대사가 외워지더라. 사촌 형과 정말 놀이처럼 즐기며 했다. 제가 그때만 해도 너무 내성적이라 어머니께서 절 병원에 보내려 했다더라. 흔히 말하는 '일진'들에게 괴롭힘도 많이 당했다. 근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부 모집 포스터를 보고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고자 지원했다. 무대에 올라 대본을 말하는 순간, 옛날 그 느낌이 나더라. 공연을 준비해 올리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전까진 꿈도 희망도 없었는데 이 길을 파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의 반대 또한 있었다. 그러다 약속을 한 게 서른 살까지 뭔가 납득 할만한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상조 스스로는 "설마 서른 때까지 아무 것도 못할까 싶었는데 군대 다녀오니 서른 문턱에 와 있더라"라며 "운 좋게 스물아홉 때 <나의 해방일지>를 만나서 아버지도 천직인 것 같으니 끝까지 잘 해보라고 격려해 주셨다"라고 말했다.
 
"부모님께 손 안 벌리려고 차비나 식비, 프로필 인쇄비 정도는 벌어 썼다.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인데 그래도 부족할 때가 있어서 부모님 몰래 동생에게 돈 10만 원을 빌리기도 했다. 그걸 아껴보겠다고 한여름에 따릉이만 타고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더위 먹고 몸살이 나서 결국 어떤 작품에서 촬영을 못한 적도 있었다. 너무 서러웠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운동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운동할 시간에 대본 한 번 더 보라고도 했지만, 몸을 만드니 일이 들어오더라. 그래서 <야구소녀> <낫아웃> 같은 영화도 할 수 있었다. 제가 힘들 때 마동석 선배님 작품을 보며 버텼다. <범죄도시>에도 너무 출연하고 싶어서 여러 차례 제작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한상조 배우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오두환 역의 한상조 배우.

▲ 한상조 배우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오두환 역의 한상조 배우. ⓒ 이정민

 
마침 <범죄도시3> 오디션이 있었기에 물으니 "봤는데 떨어졌다"라며 그가 사람 좋게 웃었다. "오히려 잘 됐다. 8편까지 시리즈가 나온다고 하는데 제대로 준비해서 꼭 선배님을 현장에서 뵀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또하나의 결심
 
인터뷰 중 그는 유독 감사하다는 말과 운이 좋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겸손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연기를 대하는 나름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 힘든 환경에서 연기하는 동료들에 비해 편하게 연기하는 것"이라며 그는 "그래서 반성하며 더욱 열심히 하려 한다"는 다짐을 밝혔다.
 
"저보다 훌륭한 선배들이 많다. 평생 단역만 꾸준히 해도 행복할 것 같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기회가 좀 더 빠르게 온 것 같기도 하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제게 믿음을 주신 거라 생각한다. <나의 해방일지>가 많은 공부가 됐다. 연기하면서 힘 빼는 걸 잘 못했거든. 사채업자, 조폭 등 강한 이미지를 주로 하기도 했고, 성격이 급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이번에 많이 배웠다. 한번은 구씨(손석구), 미정(김지원)과 밥먹는 장면에서 천호진 선배님이 그러시더라. '대사는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라 툭툭 던지는 거'라고. 그 말씀이 제겐 크게 남아있다.
 
앞으로 자연스럽게 연기를 즐기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언젠가 SNS 메시지로 정말 연기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에 너무 감사하더라. 아무래도 즐겨야 연기가 잘 나오지 않을까. 지금까진 대사 안 틀리려 급급했다면 <나의 해방일지>를 촬영하면서는 기분 좋아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게 실제 제 감정이기도 했다. 역시나 시청자분들은 다 느끼시는구나 싶었다."

 
여전히 그는 자신을 '밑바닥 배우'라 명명했다. 한상조는 "규모가 크든 작든 촬영장이 늘 고픈 배우"라며 "운이 좋아 좋은 드라마를 했지만 불러만 주시면 현장에 속한 배우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학생이든 전문가든 언제든 찾아달라는 그는 정말 연기에 배고픈 배우다.
한상조 나의 해방일지 야구소녀 이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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