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바운드로 떨어진 공을 걷어 올려 담장을 넘길 정도로 엄청난 괴력을 자랑하는 '괴수' 블라디미르 게레로는 2004 시즌을 앞두고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에인절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게레로는 이적 첫 해 타율 .337 39홈런126타점124득점을 기록하며 2004년 아메리칸리그 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당시 게레로에게는 만5살이었던 아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가 있었다.

아들 게레로는 그로부터 15년의 시간이 지난 2019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2년 만에 빅리그 적응을 끝낸 게레로 주니어는 만22세 시즌이었던 2021년 48홈런111타점123득점OPS(출루율+장타율)1.002라는 괴물 같은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게레로 주니어는 오타니 쇼헤이(LA에인절스)에 밀려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 2위를 기록하며 '부자 MVP 등극'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KBO리그에도 이성곤(삼성 라이온즈)과 박세혁(두산 베어스), 장재영(키움 히어로즈), 정해영(KIA타이거즈), 진승현(롯데 자이언츠) 등 많은 야구인 2세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야구팬들에게 가장 유명한 2세 선수는 단연 이종범(LG 트윈스 2군감독)의 아들인 '바람의 손자' 이정후(키움)다. 올해 프로 6년 차 25세가 된 이정후는 아버지가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던 25세 시즌에 아버지에 이어 '부자MVP'를 노리고 있다.
 
 2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2 신한은행 쏠(SOL) KBO 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 1회초 무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 선 키움 이정후가 1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2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2 신한은행 쏠(SOL) KBO 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 1회초 무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 선 키움 이정후가 1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야구'를 잘했던 아버지

광주일고와 건국대를 졸업한 이종범은 1993년 1차 지명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현재 KIA는 FA나성범에게 150억 원을 투자 부자구단이지만 그 시절 해태는 모기업 사정이 썩 좋지 않아 국가대표 내야수였던 이종범에게도 계약금을 7000만원 밖에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종범은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명문' 해태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며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사실 이종범은 그 해 신인왕이었던 양준혁(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나 한양대 시절 '일본킬러'로 명성을 날리던 구대성, 고려대 시절 14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을 세운 이상훈 등 입단 동기들에 비하면 다소 낮은 평가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종범은 입단 첫 해부터 전 경기에 출전해 득점1위(85개), 최다안타(133개)와 도루(73개) 2위를 기록했고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는 무려 7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시리즈 MVP에 등극했다.

하지만 이종범에게 루키 시즌 활약은 2년 차 시즌의 대폭발을 위한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종범은 프로 2년 차가 된 1994년 타율 .393 196안타19홈런77타점113득점84도루라는 놀라운 성적을 올리며 정규리그 MVP에 등극했다. 196안타 기록은 2014년 서건창(LG)에 의해 깨졌지만 84도루는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동안 정수근, 이대형, 박해민(LG) 등 그 어떤 후배 대도들도 넘보지 못한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90년대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이종범은 '잘 치고 잘 잡고 잘 뛰는' 다재다능한 야구선수의 대명사였다. 특히 큰 경기에 더욱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종범은 1993년에 이어 1997년에도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됐고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타율(.400)과 안타(10개) 1위를 차지하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이 되면서 '불세출의 야구천재' 이종범도 어느덧 은퇴가 가까운 노장선수가 됐지만 '포스트 이종범'을 그리워하는 야구팬들을 설레게 하는 소식이 들려 왔다. 바로 1998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이종범 주니어'가 KBO리그 진출을 목표로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이종범이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던 2017년, 휘문고를 졸업한 이종범의 장남 이정후가 프로에 입성했다.

부자 타격왕 이어 부자 MVP에 도전하는 이정후 

이종범과 마찬가지로 이정후 역시 그 해 프로에 입단한 신인들 중 '최대어'는 아니었다. 그 해 가장 주목 받던 신인은 단연 롯데에 입단한 부산고의 윤성빈이었고 LG에 입단한 충암고의 고우석, 고교 최고포수 나종덕(롯데, 2020년 나균안으로 개명 후 투수변신) 정도가 신인왕을 노릴 수 있는 선수로 꼽혔다. 하지만 이정후는 입단 첫 해부터 역대 신인 최다안타(179개)와 최다득점(111개) 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10년 만에 순수신인왕에 등극했다.

이정후는 2018년 크고 작은 부상으로 109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지만 타율 .355 163안타로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성공적인 2년 차 시즌을 보냈다. 이정후는 프로 데뷔 2년 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도 김현수(LG)에게 대부분의 기록이 뒤지며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이정후는 2019년 타율 .336 193안타91득점, 2020년 타율 .333 181안타15홈런101타점의 호성적으로 3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2018년의 논란을 불식시켰다.

작년 시즌 123경기에서 .360의 타율을 기록하며 세계 최초로 부자 타격왕에 등극한 이정후는 4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과 함께 올 시즌 연봉이 7억5000만원으로 상승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KBO리그 최고 외야수로 등극했다. 이정후는 올 시즌 5월까지 타율 .326 6홈런31타점26득점을 기록했다. 분명 좋은 성적이지만 타격에 관해서는 '경지'에 오를 거라던 야구팬들의 예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이정후는 6월 들어 본격적으로 타격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6월 22경기에 출전한 이정후는 타율 .404(89타수36안타) 7홈런24타점15득점 OPS1.192라는 만화 같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최근 10경기로 범위를 좁히면 이정후의 타율은 무려 .477까지 치솟는다. 이정후는 27일 현재 타율 1위(.351)를 비롯해 최다안타 공동 1위(97개),홈런3위(13개), 타점 공동3위(55개), OPS 1위(.997) 등 대부분의 타격 지표에서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다.

이정후는 올해 프로 6년 차에 한국나이로 25세가 됐다. 공교롭게도 KBO리그를 지배했던 1994년 이종범의 나이와 같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내심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MVP 트로피를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다. 물론 당장 MVP투표를 한다면 이정후는 가장 유력한 MVP 후보다. 하지만 이정후가 28년 전의 아버지처럼 25세 시즌에 독보적인 성적으로 MVP에 등극하기 위해서는 6월의 활약을 시즌 막판까지 꾸준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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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6월 대폭발 부자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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