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국대는 국대다> 한 장면.

MBN <국대는 국대다> 한 장면. ⓒ MBN

 
금메달리스트들의 진검승부는 바로 이런 것이다.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졌어도 열정과 집념은 녹슬지 않았다. 배드민턴 레전드 하태권이 또다른 레전드이자 현역 최강 이용대와 마치 올림픽 결승전을 연상시키는 명승부를 펼치며 감동을 자아냈다.
 
6월 25일 방송된 MBN <국대는 국대다>에서는 한국 배드민턴의 두 전설 하태권과 이용대의 경기가 펼쳐졌다. 이번 대결은 특이하게도 현역 선수가 레전드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구도로 진행됐다.
 
이용대는 하태권과의 대결을 희망한 이유로 "내 인생의 레전드는 하태권"이라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용대는 존경하는 선배와의 대결을 실제 시합처럼 진지하게 준비했다. 코트를 넓게 활용하에 체력을 키우는 투 코트 훈련, 순발력을 극대화하는 흑막 훈련 등을 소화했다.
 
하태권은 함께 수많은 금메달을 합작했던 스승 김중수 감독(현 배드민턴협회 부회장)과 만나 특훈을 진행했다. 김 감독은 "하태권이 원래 자신감이 넘친다. 오버스러운 면도 있어서 별명이 크레이지 보이다. 파이팅이 넘치는 선수가 충분히 할수 있을 것 같다"라며 제자를 응원했다.
 
하태권은 김 감독이 데려온 고등부 일인자 오재혁과 연습경기를 진행했다. 체력적으로 월등히 불리한 상황에서도 하태권은 특유의 파이팅과 정신력으로 버티며 접전 끝에 오재혁에게 승리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김 감독은 기술은 여전하지만 체력보강이 필요하다고 냉철하게 조언했다.
 
승부의 날이 밝았다. 하태권은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부터 마치 올림픽 경기를 앞둔 듯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 감독은 "하태권은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다. 네 별명을 뭐라고 불렀는지 아나?"라고 묻자 하태권은 머뭇거리다가 "미친 놈"이라고 자백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김 감독은 "광기가 있어야 한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라며 제자를 격려했다.
 
이용대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로 복식을 해왔는데 정식 단식 경기는 15년 만이다"라며 부담을 드러낸 이용대는 "하태권 선배가 '단식은 내가 이긴다'라고 너무 자신있게 이야기해서 당황했다"라고 고백했다. 이용대는 이날 승부의 관건으로 하태권의 장기인 스매시를 얼마나 잘 받아낼수 있을지를 승부의 관건으로 꼽았다.
 
화려한 오프닝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무대에 등장한 하태권은 "내가 아직도 배드민턴을 좋아해주시는 팬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게 있구나.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경기를 하고싶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김중수 감독은 하태권에게 승산이 있겠냐는 질문에 "승산이 있다고 믿고싶다. 또 해낼거고"라며 제자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용대는 "저는 무조건 이기려고 들어간다. 공격적으로 갈 것"이라고 선언하며 "하태권 선배가 이제 체력적으로 안되실 거기 때문에 빨리 체력을 빼는게 저의 전략"이라고 도발했다.
 
경기장을 찾은 하태권의 아내 서지영씨는 "여기 오신 분들이 이용대 선수가 이길 거라고 하지만 저는 당신이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후회없는 경기하기를 바란다"라며 진심어린 응원을 전했다. 
 
하태권과 이용대의 대결
 
  MBN <국대는 국대다> 한 장면.

MBN <국대는 국대다> 한 장면. ⓒ MBN

 
하태권과 이용대의 대결은 배드민턴 단식 국제경기 규칙에 따라 진행됐다. 승리한 선수의 이름으로 배드민턴 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이 전달된다. 이날 해설을 맡은 임방언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복식 전문 선수들의 단식 코트 적응을 최대의 변수로 거론했다. 또한 두 선수의 차이로 하태권은 세계적인 수준의 후위 공격력을, 이용대는 네트에서 가까운 전위 플레이의 마술사라고 평가했다.
 
이용대의 서브로 경기가 시작됐다. 이용대는 복식 선수의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드라인을 공략하며 선취점을 뽑아냈다. 하태권이 곧바로 장기인 스매시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리드를 뒤집었다. 하지만 이용대가 연이은 점프스매시를 작렬하며 재역전에 성공했다.
 
이용대는 집요하게 하태권의 몸쪽을 공략한 집중스매시로 5-2로까지 점수차를 벌렸다. 3연속 실점을 허용한 하태권은 라켓 체인지를 요청하며 경기흐름을 끊고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재개된 경기에서 이용대는 스매시 동작에서 절묘한 드롭샷과 사이드라인 공략으로 2점을 더 추가했다. 끌려가는 흐름이 계속되자 김중수 감독은 하태권의 볼(리시브)이 짧다고 지적하며 셔틀콕을 더 길게 치라고 주문했다. 김 감독의 지시에 따라 리시브에 변화를 주면서 하태권의 장기인 타점높은 스매시가 살아났고, 두 선수는 서로 득점을 주고받으며 한동안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쳤다.
 
5-9로 여전히 끌려가던 상황에서 하태권이 갑자기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하태권은 급하게 응급처치를 하고 경기에 복귀했지만 이용대의 몸쪽 공략을 막지 못하여 점수차는 다시 6-11, 5점차로 벌어졌다.
 
인터벌(경기중 11점에 도달했을 때 60초간 휴식시간) 타임에 김 감독은 "이용대의 공은 사이드 뒤쪽까지 나가는데 하태권의 공은 앞쪽까지밖에 안 나간다. 그러니까 엄청 뛰어다니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가쁜 숨을 몰아쉰 하태권은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다"라며 뜻대로 풀리지않는 경기와 이용대의 실력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허벅지 통증에 대한 불편함에도 하태권은 "뛸수 있을 것 같다"라며 의욕을 드러냈다.
 
이용대 측도 하태권을 얕보지 않았다. 이용대는 "스매시를 하나도 못 받았다"라며 하태권의 녹슬지 않은 실력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인터벌 이후 하태권은 김 감독의 작전대로리턴을 길게 가져가는 전략의 변화를 주며 3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9-11까지 점수차를 좁혔다. 하지만 이용대는 재차 하태권의 몸쪽을 공략하여 득점에 성공하며 위기를 벗어났고, 하태권의 실수와 전매특허 헤어핀 플레이까지 선보이며 다시 9-14로 점수차를 벌려 흐름을 찾아왔다.
 
하태권은 네트를 맞고 넘어가는 행운의 득점과 특유의 점프스매시로 연속 득점하여 추격했다. 하태권은 이번엔 앞뒤로 리시브의 완급을 자유자재로 조절하여 이용대를 최대한 분주하게 많드는 전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용대는 단단한 수비력을 과시하며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하태권의 완벽한 강스매시를 받아내는 그림같은 역습플레이를 선보이며 매치포인트까지 몰아넣었다. 조급해진 하태권은 헤어핀플레이에서 아쉬운 범실까지 저지르며 결국 13-21으로 첫 세트를 내줬다.
 
임방언은 첫 세트를 평하며 "의도와 상관없이 랠리가 너무 오래갔다. 득점하든 실점하든 최소한의 랠리로 효율적인 경기운용이 필요하다. 여유있게 가져갔어야 하느데 경기를 빨리 끝내려고 조급해지다 보니까 범실까지 나오면서 뜻대로 풀어가지못했다"라며 하태권의 체력적인 부담을 우려했다.
 
김중수 감독은 첫 세트를 내주고 다소 의기소침해있는 하태권에게 "너는 광기로 해야한다. 이렇게 얌전하고 진지하게 경기하는건 처음 본다"라며 아쉬워했다. MC들도 즐기면서 파이팅있게 할 것을 주문하며 하태권을 격려했다. 이용대 측은 이기고있어도 방심하지 않았다. 이용대는 1세트에서 하태권의 푸시 범실 3개를 되짚으며 "그것만 아니었다면 위험했다"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2게임에서 다소 에너지를 회복한 하태권은 특유의 광기와 점프스매시를 선보이며 먼저 선취점을 뽑아냈다. 2게임은 첫 세트보다 좀더 여유있는 경기운영을 선택한 하태권이 리드를 잡으면 이용대가 따라가는 흐름으로 진행됐다.두 선수는 번갈아가며 동점과 역전을 주고받는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쳤다.
 
하태권이 6-4로 앞서가던 상황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하태권의 격렬한 움직임을 견디지 못한 운동화가 갑자기 터져버린 것. 예비 신발을 가져오지 않은 하태권은 당황했으나 다행히 사이즈가 같은 허형선 코치의 운동화로 대체할 수 있었다. 배성재 캐스터는 "희귀한 장면이다. 배드민턴 선수 신발이 찢어지는 장면이 나왔다"라며며 신기해했다.
 
팽팽한 공방 끝에 하태권이 11-8로 리드를 유지한 상황에서 인터벌에 돌입했다. 이용대 측은 하태권의 템포가 살아났다며 경계했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경기에 당황한 이용대는 "이러다간 내가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고백했다.
 
재개된 경기에서 이용대는 앞뒤로 하태권을 흔들며 체력을 소모하고 전위플레이를 유도했고, 하태권은 강점인 점프스매시를 살리기 위하여 후위플레이를 지키려는 전략을 각각 들고 나왔다. 차근차근 점수차를 좁혀나간 이용대는 빠른 연속공격으로 결국 동점을 이뤄냈고,15-15로 맞선 상황에서 이용대가 스매시로 위장한 페이크 드롭샷을 선보이며 결국 역전에 성공했다.
 
하태권도 물러서지 않고 헤어핀플레이와 후위 스매시로 재역전에 성공하며 19-17로 다시 리드를 잡았다. 2점만 추가하면 2게임을 따내고 최종전까지 몰고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고비에서 이용대가 탄탄한 수비에 이은 역습과 절묘한 스매시로 잇달아 3득점을 따내며 다시 경기를 뒤집었다. 이제 이용대가 오히려 경기를 끝낼수 있는 매치포인트의 기회를 잡았다.
 
하태권은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집념을 발휘하며 승부를 다시 듀스로 몰고갔다. 하지만 이번엔 갑작스런 팔꿈치 통증까지 하태권을 괴롭혔다. 하태권의 허벅지는 통증을 참기 위하여 스스로 라켓으로 수차례 때리기도 했다. 
 
두 선수가 치열한 랠리를 주고받는 가운데 하태권이 힘을 쥐어짜내 시도한 스매시가 라인 밖을 벗어났다. 지켜보던 MC와 팬들도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하태권은 "내가 생각했던 내 몸이 아니었구나하고 느꼈다"라고 느꼈다며 아쉬워했다. 이용대는 "선배님의 승부욕만큼은 배울 점이 많다"라며 감탄했다.
 
다시 이용대의 매치포인트가 된 상황. 이용대의 서브에 이어 세 번의 랠리를 주고받은 끝에 하태권이 점프 스매시를 시도했지만 또다시 네트에 걸리며 22-20으로 2게임도 이용대가 승리했다. 이로서 치열했던 승부는 최종 결과 2-0, 하태권의 석패로 끝났다.
 
멋진 승부를 펼친 두 레전드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하태권은 이용대를 비롯하여 코칭스태프-MC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홀로 조용히 경기장 뒤로 걸어갔다. 한 구석에 주저앉은 하태권은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눈을 감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조용히 감정을 추스렸다.
 
하태권은 "이기고 싶었다. 경기니까. 그런데 막상 승부가 결정되고 나니 그래도 나를 위해서, 나만을 위해서, 하태권이 주인공이 된 하루를 보낸 게 너무 행복했다"라고 고백하며 "이런 날이 다시 나에게 올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하태권은 떨리는 목소리로 "정말 이기고 싶었다. 이겨서 하태권이 '즐겁고 유쾌하지만 실력도 있는 선수구나'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속내를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용대는 "하태권 선배님의 열정과 파이팅이 넘치는 경기를 함께하면서 저도 그 나이까지 노력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대한민국 배드민턴사에 레전드중의 레전드라는 생각을 했다"라며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국대는 국대다>의 매력은 승패를 떠나 스포츠 영웅들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도전하는 과정이 주는 진정성에서 나온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 누구와 비교해도 최선을 다했던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준 하태권의 열정과 집념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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