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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는 이가현(가명) 씨는 기름값 인상으로 달라진 삶의 변화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과거 매일 같이 차를 타고 출퇴근했다던 이씨는 기름값이 리터당 2100원대로 오르자 더이상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기름값이 진정될 때까진 앞으로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닐 예정"이라고 이야기했다.

기름값이 '천장'을 뚫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21일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112.85원을 기록했다. 사상최고치인 지난 2012년 4월의 2062.55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경유 가격은 그보다도 비싼 리터당 2122.64원으로 집계됐다.

고공행진하는 기름값에 국민들의 시름이 깊어지자 정부는 '마지막 카드'를 내놨다. 오는 7월 1일부터 연말까지 유류세 인하 폭을 현행법상 최대 한도인 37%로 확대하기로 한 것. 유류세는 이미 지난 5월부터 30% 할인율이 적용되고 있지만, 기름값 급등에 체감할 수 있는 가격 인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37%라는 할인폭 또한 '역대급'이라 기름 가격이 실제로 잡힐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국제원유 가격의 급락 또한 '기름값 하락'을 향한 국민들의 기대 심리를 키우는 요인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는 7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6.82% 떨어진 109.5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5월 12일 이후 최저치다.

유류세 할인폭 확대하지만...기름값 잡힐까
 
주유소 전경
 주유소 전경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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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시장에선 국제 정치·외교 이슈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당분간 기름값 급등세를 잡기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최근 기름값이 급등한 건 늘어난 수요에 반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 때문인데 최소 몇 개월간은 이 같은 상황을 나아지게 할 만한 마땅한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가 유류세 할인폭을 늘린다고 해도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가격 인하 효과는 금방 사그라들 수 있다. 국제원유 가격이 단기 급락한 이유 또한 엄밀히 따져보면 기름값 하락의 청신호라고 볼 수 없다. 시장에선 미국이 큰 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는 우려로 기름값이 급락했다고 보는 분위기다. 경기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산유국들은 또다시 공급 통제에 나설 수 있다.

한편 원유를 향한 늘어난 수요, 부족한 공급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최근 원유 선물시장은 백워데이션(선·현물 가격 역전) 상태다.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낮다는 이야기다. 보통은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높다. 시간이 갈수록 원유 보관 비용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사실상 폐쇄되다시피 했던 국경이 최근 다시 열리기 시작하면서 '지금 당장' 원유 실물을 받아 써야 하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 수요가 오르자 가격도 높아진 것이다.

게다가 계절적인 요인으로, 앞으로 최소 몇 개월간 원유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은 이미 '드라이빙 시즌'으로 접어들었다. 5월 말부터 9월 연휴까지 기간을 뜻하는 이 시즌은 통상 방학이나 여름 휴가로 휘발유 수요가 늘어나는 때다. 중동 역시 에너지 사용이 많은 여름엔 통상 원유 수출량의 일부를 통제해 왔다.

늘어난 수요에도 여전한 '공급 위축' 요인들
 
21일 오후 4시 기준 국제원유가격
 21일 오후 4시 기준 국제원유가격
ⓒ TRADING ECONOMIC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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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원유 공급을 위축시키고 있는 원인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원유 가격 급등의 시발점이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이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전쟁 이전 90달러 수준이었던 국제유가는 단숨에 급등해 21일 현재 110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된 지난 2월 이후 4개월 만에 가격이 약 23% 오른 셈이다. 

세계 각국이 러시아 제재 차원에서 러시아로부터의 원유 수입을 중단하면서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러시아는 세계 2위의 원유 수출국으로, 전 세계 원유 수출량의 11%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 3월부터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연합(EU) 국가들 또한 올해 말까지 부분적으로나마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기로 지난 5월 합의했다. 

줄어든 러시아의 원유 공급분을 상쇄할 만큼, 주요 원유 수출국들이 원유를 증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원유 수출국 협의체인 '오펙 플러스(OPEC+)'는 지난 2일(현지시간) 정례 회의를 열고 7~8월동안 하루에 64만8000배럴씩 증산하기로 했다. 하루 43만2000배럴이었던 기존 증산 목표보다 50% 가량 늘었다. 

그런데도 국제 유가는 되레 상승했다. 러시아 침공 이후 감소한 러시아산 원유 공급량은 하루에 100만 배럴 가량인데 OPEC+가 결정한 증산 규모가 여기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OPEC+가 지난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원유 가격이 급락하면서 겪었던 대규모 손실을 우려하며 원유 증산을 꺼려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와 관련해 앤드류 리포 리포오일협회의 회장은 로이터통신에 "OPEC+가 시장 예상보다 약간 더 생산량을 늘리는데 동의했지만 기존 감산 등으로 이미 하루 200만 배럴 이상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추가 공급에 대한 의미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우디로 향하는 바이든..."정치적 타협 없으면 고유가 계속될 것"

숱한 악재에도 가까운 미래,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없을까. 전 세계의 이목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입으로 향해 있다. 현 사태에 미국의 러시아 제재 또한 일조하고 있으니, 해결책 또한 그로부터 나올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 유가 문제를 해결할 가장 빠른 방법은 중동의 맹주이자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 증산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앞엔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사우디는 오랫동안 미국의 우방이었지만 최근 몇 년간은, 특히 바이든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지난 2018년 사우디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아마드 카슈끄지가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되면서 양국의 관계가 틀어졌다. 미국이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를 암살의 배후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19년 민주당 경선 당시 "그들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 그들을 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영미권의 원유 증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CNN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의 고위 당국자 말을 인용해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양국 관계를 재설정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달 중순 중동 방문 일정에 사우디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여러 긴급 대책보다 근본원인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자체가 종결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온 프랑스, 독일 등 EU 주요국들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와의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서도 긍정 신호가 나왔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는 데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협상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할 수 있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침략을 당한 우크라이나는 국제사회에 더 많은 무기지원을 호소하며 영토수복을 다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은 "현재의 고유가는 사실상 우크라이나 사태가 촉발했다고 봐야한다"며 "결국 정치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껴 있긴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힘 겨루기를 하고 있어서 생겨난 문제"라며 "정치적인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당분간 고유가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그:#우크라이나, #기름값, #고유가,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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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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