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으로 제편된 춘천시청 여자 컬링팀. 춘천시청은 공동 1위로 한국선수권 예선을 마쳤다.

네 명으로 제편된 춘천시청 여자 컬링팀. 춘천시청은 공동 1위로 한국선수권 예선을 마쳤다. ⓒ 박장식

 
갑작스러운 주축 선수의 이적, 그리고 성큼 다가온 국가대표 선발전. 한국 컬링 최초로 세계선수권 메달을 따왔던 여자 컬링팀 춘천시청, 이른바 '춘시' 선수들은 올해 초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기존 멤버 중에서 새로운 스킵을 찾고, 개편된 상황에 맞춰 새로이 훈련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 

지난 봄 오랫동안 춘천시청의 스킵을 맡았던 김민지 선수가 경기도청으로 이적했다. 춘천시청은 팀 재구성에 들어갔다. '막내' 하승연 선수가 새로이 춘천시청의 스킵을 맡고, 서드 김혜린, 그리고 세컨드 양태이와 리드 김수진까지 네 명의 선수는 단단해졌다. 

15일 열린 2022 한국컬링선수권에서 춘천시청은 경기도청을 연장전 승부 끝에 6-5로 이기고 플레이오프로 향했다. 선수들은 "우리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었다"라며 입을 모았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경기도청 상대 짜릿한 복수 성공

컬링에서 스킵은 배의 선장에 비유된다. 그런데 그런 스킵이 갑작스럽게 다른 팀으로 떠났다. 스킵이 떠난 자리를 비워둘 수 없었다. 막내 하승연 선수가 스킵이 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준비 기간을 보냈다.

국가대표 선발전인 한국선수권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각오 역시 남달랐다. 김민지 선수가 경기도청으로 이적한 후 첫 맞대결인 데다, 2019년 이후 3년이라는 기간 달지 못한 태극마크를 달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춘천시청 선수들은 5승 1패, 공동 1위로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15일 열린 예선 최종전에서 경기도청을 상대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다. 10년 동안 함께 했던 선수와 경쟁 상대로 만나 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춘천시청 선수들은 첫 득점을 스틸로 올린 데 이어 연장까지 이어진 경기에서도 승리를 가져가며 자존심을 지켰다.
 
 4인 체제로 바뀌면서 핍스였던 양태이 선수(가운데)가 세컨드로 경기를 뛰게 됐다.

4인 체제로 바뀌면서 핍스였던 양태이 선수(가운데)가 세컨드로 경기를 뛰게 됐다. ⓒ 박장식

 
예선 경기가 끝난 후 춘천시청 선수들은 오히려 의연했다. 하승연 선수는 "플레이오프 진출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선에서 다른 팀에게 패한다 하더라도,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예선에서 부담을 덜 갖고 뛰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하승연 선수는 경기도청과의 최종전도 복기했다. 하 선수는 "예선 마지막 경기가 경기도청이어서 더 지고 싶지 않았다. 기본적인 것만 잘 하려고 애썼고, 놓치면 안 되는 부분에서는 실수 없이 경기 이어가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전력 이탈, 하지만

춘천시청이 네 명의 팀으로 변했을 때 우려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특히 김민지 선수의 공백이 드러날 것이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선수들이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춘천시청을 향한 기대감이 줄었다는 것. 양태이 선수는 "다들 새로 맞춰진 팀에 대한 기대만 많이 한다"라며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의지가 더 차올랐다"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김민지 선수 이적 이전에도 네 명이 나선 적이 있었다. 김민지 선수가 지난해 믹스더블 국가대표가 되면서 팀에서 이탈했던 탓이었다. 심지어 팀을 이끄는 이승준 코치까지 함께 믹스더블 팀에 파견을 나갔다. 춘천시청 선수들은 이때 '세계 랭킹 상위 팀들의 전쟁'인 그랜드슬램 2개 대회에 넷이서 나서야 했다.

양태이 선수는 "그랜드슬램 때 우리끼리 작전을 짜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코치님과는 경기 끝나고 영상통화로 경기를 다시 풀어보곤 했다"라며 "우리끼리 해 본 적이 있었다는 것이 큰 자신감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혜린 선수는 "마음고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우리끼리 팀을 꾸렸던 적이 있기에 다시 빠르게 팀을 맞출 수 있었다"라며 웃어보였다. 

"우리끼리 최고의 플레이 펼칠게요"
 
 진천선수촌에서 열리는 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서 춘천시청 김혜린 선수(왼쪽)와 하승연 선수(오른쪽)가 상대 경기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진천선수촌에서 열리는 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서 춘천시청 김혜린 선수(왼쪽)와 하승연 선수(오른쪽)가 상대 경기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 박장식

 

'하승연 체제'가 되면서 팀 컬러도 바뀌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과감하고 무리한 샷을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정석적인 경기 운영을 가져간다. 그런 기본기가 통한 것이다. 과감한 도전도 좋지만, 경기를 예측 가능하게끔 운영해 결국 승을 쟁취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돋보인다. 

김수진 선수는 "우리가 국가대표를 했던 2018년 한국선수권 예선전 때, 송현고 소속로 나왔던 승연이네 팀한테 져서 4위로 겨우 올라갔다"라면서 "춘천시청에 와서도 같이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띄더라. 그래서 결국 팀의 스킵까지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막내 온 탑' 전략은 성공이었다. 양태이 선수는 "승연이가 오래간만에 스킵을 맡았음에도 감을 빨리 찾았다. 송현고 때 스킵을 하면서 잘 하기도 했기 때문에, 언니들이 오히려 막내를 믿고 가게 된다"라면서 ""우리가 앞에서 잘 던지고, 스위핑도 잘 해서 부담을 줄여줘야겠다"라며 웃었다. 

물론 새로운 스킵을 찾는 과정에서 이승준 코치의 고민도 컸다고. 양태이 선수는 "짧은 준비 기간 동안 어려움이 많았기에 코치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오래간만에 스킵을 맡았던 하승연 선수도 처음엔 힘든 점이 많았단다. 그렇지만 점점 더 서로가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고. 하 선수는 "이승준 코치님도 서로 합을 맞출 수 있도록 계속 도와주셨고, 언니들이랑도 같이 훈련하면서 케미를 맞춘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춘천시청은 16일 오전 열리는 준결승에서 '팀 킴' 강릉시청을 상대한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경기다. 김수진 선수는 "이 기세를 가지고 가면서, 실수하지 않고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겠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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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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