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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청년'을 둘러싼 담론은 내부의 차이에 주목해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기보다는 특정한 배경을 가진 집단의 서사를 보편화해왔다. 그러나 보편화된 '청년문제'에는 대졸/남성/수도권 거주민이 아닌 청년의 서사들이 보이지 않고, 그렇기에 텅 빈 어떤 것이 되었다.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길어지는 취업 준비 기간과 높아지는 첫 취업 나이에 초점을 맞추는 담론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20대 초반 노동자의 일자리의 질과 관련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이는 불안정한 노동자의 문제이지, 청년의 문제는 아니게 된다. 디지털 성폭력, 낙태죄 폐지 등 여성의 안전과 재생산권 문제를 직접 제기하고 의제화한 청년여성들의 문제 제기와 실천들은, 청년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라기보다는 여성의 문제로만 읽힌다.

코로나19 이후 '청년여성' 역시 코로나로 타격을 많이 입은 집단이라고 주목받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연령과 성별로만 이 문제를 보는 것이 가능할까? 문제를 그렇게만 바라본다면 모호한 수준으로 '청년여성'이 정의되면서 구체적인 진단과 예방대책이 요원해질 것이다.

청년여성 집단 내의 차이들을 살펴보는 것은 아직 구체적으로 언어화되지 못한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청년여성'으로 묶일 수 있는 공통점보다는 다양한 차이들을 살펴보기 위해 비진학 청년 고졸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 문제를 다룬다.

정의되지 못한 문제

코로나19 이후 20~30대 여성의 자살률 증가는 청년 문제에서 '여성'이 대두된 얼마 안 되는 사건이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20년 1~9월의 자살 사망자 수의 증가세가 여성의 경우 전년에 비해 4.8% 상승했다. 자살 사망자의 숫자는 남성(6732명)이 여성(3023명)보다 두 배 이상 많지만, 증가율의 추이를 보았을 때 남성 자살자가 8.9% 감소한 것에 비해 여성 자살자의 증가 폭이 크다. 청년 여성의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데이터는 다른 곳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가령 코로나19 이전에도 청년여성의 자살률이 증가해왔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병원에 내원한 자살 시도자 2만1545명 중 여성이 59.9%에 달했고, 나이로는 20대(23%)가 가장 많았다.1)

국무총리 산하 자살 예방위원회가 2018년 신설되었지만, 청년여성의 정신건강 문제는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다. 청년여성은 2020년부터 코로나와 연관하여 청년여성 자살률 문제가 제기된 이후 발표된 3차 자살 예방대책에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심리 정서 지원을 위한 자조모임과 커뮤니티 활동 지원, 1인 가구 사회적 고립 예방을 위한 사회관계망 지원 프로그램 확대 운영, 무급휴직 중인 청년여성과 프리랜서 발굴/지원 및 경력단절 여성 인턴제도 확대라는 <20·30대 위기 여성 종합 지원 프로그램> 계획도 발표되었다.

2021년 6월에 발표된 4차 자살 예방대책에서는 고위험군의 사각지대를 해소해나가면서 특히 20~30대 여성 대상 정서적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3차 대책보다 축소된 것도 문제지만, 3, 4차 위원회에서 모두 청년여성' 문제가 정확히 무엇이고, 이들이 겪는 문제가 어떤 것들인지 제대로 정의되지 않고 있다.

발표된 자살 예방대책의 내용은 심리 정서 지원을 위한 자조모임, 사회관계망 확대, 인턴제도 등이지만 당사자들의 필요는 그것이 아니다. 2020년,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은 청년여성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당사자들은 '안정적 일자리와 주거, 여성이 안전한 사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즉, 정신과 상담이나 커뮤니티를 통한 사회적 관계망의 확장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닌, 노동, 주거 등을 아우르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비진학청년(고졸)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

비진학청년인 고졸 노동자는 여성 집단 내의 계급적인 차이를 잘 드러내는 주체이기도 하고, 코로나와 관련해서 가장 큰 영향을 입은 집단이기도 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서 2021년까지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청년의 고용률 감소 폭이 대졸자보다 컸다. 졸업 직후인 고졸 이하 여성은 전년에 비해 고용률이 1차 유행(14.4%)과 2차 유행(14.9%)하는 동안 감소한 데 반해, 전문대졸 이상의 여성은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감소세였으나 하반기에는 고용률이 회복되었다. 졸업 직후 여성 중 고졸 이하 학력 소지자는 감소한 고용률만큼 실업률이 높아졌지만, 전문대졸 이상 학력 소지자들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실업률이 지속해서 감소해 학력별 차이가 컸다.2) 직장 생활 10년차인(공공근로, 게임회사, 서울시 중간지원기관 등) 비진학청년여성 노동자를 만나 어떤 노동문제를 경험했는지, 정신건강과의 연관성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청년 여성 내에 다양하게 교차하는 현실은 더 드러나야 한다. 사진은 2021년 11월 열린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 토론회 홍보물
 청년 여성 내에 다양하게 교차하는 현실은 더 드러나야 한다. 사진은 2021년 11월 열린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 토론회 홍보물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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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코로나19로 청년여성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이에 공감하시나요?

"네. 전 직장이 주로 계약직, 파견직이었어요. 최근에 국비 지원 프로그램으로 플로리스트 수업을 듣고 있는데, 주변에 들어보면 은연중에 우울증이 있어서 회사 그만 두고 꽃 배우러 오는 분들이 4명이 있었거든요. 이렇게 체감이 될 정도면 정말 만연한 문제구나 싶어요. 그런데 '슬프다' 이런 감정이라기보다 저한테는 그냥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에요. 20~30대 여성 자살률이 높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대학을 나와서 취업을 하고, 이런 사람들인지 구체적인 계층이 더 궁금하긴 해요."

- 지금까지 10여 년 일해오시면서 고졸 노동자의 노동환경 중 우선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셨던 것이 있나요?

"20대 초중반에는 파견직 공고가 엄청 많아요. 그런 일자리들은 대부분 20대를 쓰고 싶어 하기 때문에 30대가 되는 순간 일이 딱 끊기는 걸 체감해요. 일하는 과정에서도 쉽게 사람들이 잘리고 처우에 대해서 책임지는 주체가 없죠. 일하면서는 같은 직원인 것처럼 행사 참석을 하라거나 그런 분위기를 요구하지만, 막상 일하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냥 편하게 관리하는 하청 업체 직원일 뿐이에요. 전에 일했던 한 회사에서는 2년 파견 이후에 정규 계약직원이 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평가 체계가 감시 도구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견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접 고용이 꼭 필요해요."

- 사내 계약직으로 전환해준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평가와 감시만 강해진 거네요. 일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었나요?

"제가 게임회사에서 CS 업무를 담당했는데, 따로 쉬는 시간 자체가 없었어요. 그냥 알아서. 옆자리 사람이 화장실을 가면 나는 무조건 앉아 있어야 하는 거죠. 나 혼자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서버가 터지면 5분 동안 민원 전화가 300통 넘게 오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폭증해도 일상 업무는 그대로 지속해야 하고요. 서버가 터진 것에 대해 불만인 사람들이 어마무시한 성희롱을 하기도 하고, 한번은 '너네 회사 찾아가서 아무 여자나 찔러 죽이겠다'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어요. 그런 전화에 '죄송합니다' 하고 끊는데, 그 사람이 상담사가 전화를 먼저 끊었다고 본사에 메일을 보낸 거예요. 그 이후에 모든 상담을 녹취하는데, 그게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감시하기 위한 거였죠."

- 노동권이 보장되는 것 이전에, 그걸 얘기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 배우고 있는 플로리스트 과정도 비슷해요. 같이 공부한 사람들이 호텔 결혼식장 실내장식 알바를 나갔어요. 결혼식에는 꽃이 엄청나게 중요한데도, 작업공간조차 따로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주차장 같은 곳에서 꽃 컨디셔닝을 했고, 작업이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였는데,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앉을 의자도 없었대요. 직원이 '어지러우면 의자를 갖다주겠다'고 했다더라고요. 주차장에서 쪼그려 앉아서 일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작업을 하라, 앉지 말고 서서 일하라고 하고요. 새벽시장에서 꽃을 사 오는 것부터 여러 작업 과정이 있는데, 완성작만 짠하고 남고 그런 노동들은 싹 지워져 버리는 것 같아요."

- 여성노동자가 추가로 겪는 문제점이 있을까요?

"앞서 말한 성희롱 등의 성폭력 위험뿐 아니라 여성들이 계속 부딪히게 되는 일상적인 수준의 문제들이 있어요. 일터 내에서 성차별적이거나 불평등한 상황들을 보면서 이걸 참아야 할지 문제를 제기해야 할지 고민 들 때가 많죠. 문제를 제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체념하게 되기도 하고, 아무래도 일을 지속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죠. 여전히 일터에 남성 네트워크가 강하다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CS 업무를 했던 회사에서도 남성 직원들은 파견직이어도 우르르 나가서 담배를 피우면서 여러 가지 교류를 하더라고요. 언제쯤 인사공고가 나오니 접수해봐라 등 공적인 정보들이 그 자리에서 나오는 거죠. 그럼 여성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밀려나는 거고요."

1) <코로나 우울, 20대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여성신문, 2020년 9월 17일.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403
2) <한국의 사회 동향 2021>, '코로나19와 청년 노동시장', 178쪽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지안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노동건강권팀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청년_여성_노동자, #노동자_정신_건강, #여성_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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