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한 장면

SBS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한 장면 ⓒ SBS

 
여기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 정치인이 있다. 그렇기에 국민들 역시 그 정치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믿고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 정치인이 입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이익과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악한 인물이라면 당신은 과연 그에게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많은 이들이 그 정치인을 선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와 맞서기 위해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쉽지 않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한 젊은 검사가 있으니, 바로 28일 종영한 SBS 금토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김희우(이준기 분) 검사이다.
 
김희우는 자신의 젊음을 바쳐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거물 정치인 조태섭(이경영 분)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 끝에 그가 맞이한 결말은 안타깝게도 조태섭의 하수인에게 당해 죽는 것이었다.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는 순간, 김희우는 '회귀'라는 비현실적 상황을 통해 고등학생 시절부터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 얻은 삶의 기회에서 김희우는 이번 만큼은 조태섭을 확실히 무너뜨리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김희우가 짠 계획의 핵심은 2가지였다. 하나는 조태섭에게 대항해 자신의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모으며 기반을 다지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조태섭을 무너뜨리기 위해 조태섭의 권력 유지에 도움을 주는 하수인들을 한 명, 한 명 차근차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김희우가 계획에 맞춰 조태섭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고구마를 먹은 듯한 꽉 막힌 답답함으로 채우기보다 중간 중간 청량한 사이다를 마시는 듯한 통쾌함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하며 보는 즐거움을 안겼다.

나 역시 그런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던 시청자였다. 그런데 정작 <어게인 마이 라이프>를 끝까지 다 본 지금, 내 마음 속을 가득 채운 것은 통쾌함보다는 허탈함, 무력감, 두려움, 무력감이었다.

내게 허탈함이 몰려오게 한 것은 <어게인 마이 라이프> 최종회에 나온 마지막 장면이었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는 김희우가 잡아 넣은 조태섭의 하수인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은 후 막강한 재력을 지닌 재벌에게 빌붙어 또 다른 악한 짓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 나온다. 하나의 악이 사라지고 또 다시 등장하는 악. 이처럼 사람을 허탈하게 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런 서사는 기존의 드라마에서도 종종 등장했기에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김희우와 같은 정의로운 검사가 회귀라는 비현실적 힘을 빌려 몇 년간의 치밀한 준비를 한 후에도 끝끝내 조태섭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지 못했다는 점은 허탈함을 넘어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무력감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검찰의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된 조태섭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김희우를 돕는 선배 검사 입을 통해 조태섭과 시신의 DNA가 일치한다면서 조태섭이 죽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조태섭과 김희우의 대결에서 김희우가 승리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수많은 드라마에서 그렇게 사라진 악인들이 부활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조태섭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김희우의 개운하지 못한 승리로 보였다. 회귀라는 비현실적 상황을 통해 어느 정도 상대의 패를 안 상황에서 자신의 젊음을 바쳐 싸웠으나 그럼에도 끝끝내 완벽한 승리를 하지 못한 김희우.
 
 SBS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한 장면

SBS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한 장면 ⓒ SBS

 
그런 김희우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 속 가득 찬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회귀라는 치트키를 쓸 수 없는 현실 세계에서 우리 사회 어딘가에 숨어 있을 조태섭 같은 정치인을 잡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이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져 갔고 무력감 역시 커졌다. 그리고 검사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이 된 김희우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두려움도 몰려왔다. 아마도 이 두려움은 조태섭이 자신의 일을 괴롭히는 배후 세력이 김희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비서들에게 한 대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늙은이들은 두렵지 않아. 나이 들수록 지켜야 할 것이 많고 체면이라는 것을 생각하거든."

이 말이 그 무엇보다도 섬뜩하게 들린 이유는 그토록 정의로운 김희우 검사도 나이가 들면서 지킬 것이 많아지는 상황이 오면 부당한 일을 보고도 모른 척하거나 더 나아가 악과 타협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태섭의 말은 드라마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기에 더더욱 무섭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정의롭던 이들마저 변해버린다면 이 세상은 그 얼마나 끔찍하게 변하겠는가.

그러나 참 신기하게도 뒤이어진 조태섭의 말 덕분에 두려움 뿐만 아니라 희망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놈들은 아니야. 체면도, 두려운 것도, 지켜야 할 것도 없지."

세상이 존재하는 한 어린 놈들, 즉 젊은 청춘들은 존재할 것이니 설령 김희우 검사가 나이가 들어 변한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김희우 검사를 대신해줄 정의로운 젊은 청년들이 나올 것 아니겠는가.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청년들은 존재하고 나이로는 청년이 아니더라도 마음만큼은 그런 청년들과 같은 이들이 있어 왔다. 그랬기에 지금껏 이 사회가 유지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서 발견한 이러한 희망이 현실 세계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이 드라마를 우리나라 여야 정치인들이 꼭 시청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며 자신들이 조태섭을 닮은 괴물 정치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김희우처럼 젊은 마음을 가진 정치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여야 정치인뿐 아니라 사회 각계 각층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마지막에 김희우가 던진 말을 가슴 속에 새겨보았으면 한다.

"정의가 없는 나라는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김희우의 마지막 말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면 어쩌면 판타지 드라마보다 더 판타지 같은 세상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중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송고됩니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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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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