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를 의미하는 '요즘 것들'이라는 표현 뒤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하지만 신세대이고 나이가 어리다고해서 걱정의 대상이라는 건 일종의 편견이다. 오늘날에는 기성세대보다 더 나은 요즘 것들. 본받을 만한 요즘 것들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시각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흔히 '요즘 것들'이라 불리우는 MZ세대, 그들이 꿈꾸는 '갓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5월 25일 첫 방송된 KBS 2TV 새 예능 프로그램 <요즘 것들이 수상해>에서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인생의 꽃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는 청소부 김예지-여행 유튜버 '빠니보틀' 박재한이 출연하여 자신의 삶과 철학을 공개했다.
 
MC 이경규는 자신을 "원조 요즘 것"이라고 소개하며 "사람들이 저를 꼰대라고 그러는데 아니다. 저는 미국 스타일이고 내츄럴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스펀지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홍진경은 "카메라가 켜지면 미국, 꺼지면 조선 말기 스타일"이라며 칭찬인지 욕인지 알쏭달쏭한 평가를 남겼다. MZ세대인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인 홍진경은 "요즘 시대의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노력형 요즘 것"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른바 '오리지널 요즘 것'에 해당하는 정세운은 "부캐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처럼, 작사-작곡-편곡, 연주, 책 출간까지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해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경규는 "예전엔 한 우물만 파라고 했다면 요즘은 이것저것 다 해봐야 한다"고 공감했다. 홍진경은 "그래서 이경규가 유연하다. 예전엔 굵직한 한 프로그램만 하셨다. 시대가 바뀌니까 여기저기 다 나온다. 그래서 오래 하시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알고보니 데뷔시절 홍진경의 남다른 개성과 재능을 알아보고 담당 PD에게 추천하여 데뷔의 기회를 열어준 것이 이경규였다고. 홍진경은 이경규를 은인으로 예우하며 "선배님의 인격이 8개든 12개든 다 맞춰드릴 수 있다"고 약속했다. 이경규는 "홍진경은 제가 가진 마지막 카드다. 강호동은 이미 썼고, 이수근은 지금 쓰고 있는 중이다. 홍진경만 믿고 날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홍진경을 당황하게 했다.
 
불안장애였던 나를 살린 청소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 KBS 2TV

 
이날 첫 등장한 '요상이들' 김예지와 박재한은 패션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8년차 청소부 김예지는 요즘 MZ세대의 키워드는 '갓생(God+인생,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이라고 소개하며,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알차게 소비하는 '미라클 모닝'의 매력을 강조했다.
 
새벽 4시 반에 기상하여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김예지는 청소카를 직접 끌고다니며 건물 상가나 공장 곳곳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이많은 사람들이 하거나 험한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김예지는 "저에게 청소란 책임감"이라고 쿨하게 정의했다. 26살에 시작하여 8년이나 청소 일을 한 것이 어른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해줬다는 것.
 
김예지는 청소부로서의 시작을 회상하며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젊은 사람이 청소 일을 한다고 놀라는 사람들의 반응이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럼에도 8년동안 일을 했던 것은 경제적인 매력 때문"이었다고 솔직히 밝혔다. 청소일로 한 달 수입은 400만 원 정도였고, 8년 동안 열심히 일하여 어느새 본인 명의의 아파트까지 장만했다고.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 KBS 2TV

 
김예지의 어머니도 동료이자 직원으로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모녀는 티격태격하면서도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딸에게 처음 청소 일을 제안한 것도 바로 엄마였다고. 보통의 엄마들은 자녀들이 더 좋은 직업과 환경을 가지기를 원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었다.
 
김예지는 "엄마가 보기에도 뭔가 잘 안 될 것 같으니까..."라고 솔직하게 고백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 이전에 회사를 1년 정도 다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무작정 회사를 나온 이후 현실적인 생계문제로 고민하던 김예지는 청소일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균형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청소부라는 직업에 대하여 김예지는"이만한 일이 없더라. 우리는 대개 사회에서 적응하고 맞춰야 하는 상황이 많지 않나. 이 일을 하면서 내 성향대로 살아도 괜찮구나하는 걸 느끼게 해줬다"며 직업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청소일에 대한 편견)을 신경쓸 필요없고,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라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 KBS 2TV


 사실 김예지에게는 작가라는 또다른 직업이 있었다. 김예지는 일주일의 반은 청소, 나머지 반은 그림에 집중하며 격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재택 근무를 할 때도 자칫 해이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출근한 것처럼 외출복을 차려입고 일을 했다. 청소일을 하면서 접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만화에세이를 출간하여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김예지는 "저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책"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당초 10년 기한을 목표로 청소일을 시작했다는 김예지는 "현재 2년이 남았는데 지금으로는 계속할 것 같다"며 어느 정도 생계가 안정되었음에도 청소일이 주는 수입에 솔직하게 만족감을 드러냈다.
 
밝고 긍정적으로 보이던 김예지에게도 어두웠던 순간들이 있었다. 김예지는 한때 불안장애로 죽음까지 고민했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김예지는 엄마와의 식사 자리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예지의 힘든 시간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던 엄마는 딸에게 어떻게든 삶의 희망을 불어넣고 싶었다.
 
청소일을 권유한 것도 딸이 생계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김예지에게 엄마는 청소뿐아니라 딸의 얼룩진 마음까지 닦아준 고마운 존재였다. 현재 김예지가 구상중인 새로운 작품도 바로 엄마를 주제로 한 이야기라고.
 
딸과 함께 8년의 시간을 직장동료로서 함께한 엄마는 "청소일을 권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예지는 "저처럼 살아도 행복하다. 제 삶이 누군가에게 좋은 예시가 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빠니보틀 "요즘 세상은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다"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 KBS 2TV

 
두 번째 요상이는 세계여행을 주제로 한 유튜브를 3년째 운영중인 전업여행 크리에이터 박재한이었다. 예명인 빠니보틀은 인도어로 물병이라는 뜻이라고. 구독자만 122만을 자랑하는 빠니보틀은 여행을 좋아하는 MZ세대라면 모르는 이들이 없을만큼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 400여 개 국을 돌아다니며 인도에서 꼴등석 기차여행, 아제르바이잔에서 기름 목욕,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지옥의 불구덩이 체험 등, 주로 돈없이 하드코어한 난이도의 고생 여행체험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빠니보틀은 "살면서 세계여행이 꿈인 분들이 많은데 저는 직업으로 삼았다는 게 항상 감사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평범한 회사도 다녀왔지만 항상 일 년을 넘기지못하고 그만두며 대리같은 걸 한 번도 달아보지 못하고 신입사원에서 끝났다고 밝혔다. 장소도 일도 똑같고 반복되는 직장생활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지켜보던 김예지는 "저는 할 수 없는 사람이라 너무 멋지다"고 칭찬했으나, 전 세계를 다니면서 청소일을 해보 는건 어떠냐는 주변의 권유에 "솔직히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고 거부하여 폭소를 자아냈다.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 KBS 2TV

 
빠니보틀은 최근 여행을 일시 멈췄다. 여행지에서 목표했던 일정을 전격 취소하는 모습이 구독자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빠니보틀은 "타지에서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있다보니 외로움이 굉장히 컸다"고 고백했다. 힘든 여행을 추구하는 만큼 타지에서 겪는 돌발상황이나 불합리한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힘든 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빠니보틀은 "제가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집도 돈도 차도.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니 잃을 게 없더라. 유튜브를 하면서 한 달에 50만 원만 벌어도 숙소비는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여행 영상이 뜨자마자 벌어들인 수익이 직장생활의 2~3배였다"며 뜻밖의 인생역전을 맞이한 순간을 설명했다.

홍진경은 "뭔가 빠니보틀만의 짠내가 있다"고 지적하자, 이경규는 "고상한 표현인데, 한마디로 '없어보인다'라는 뜻"이라며 빠니보틀을 당황하게 했다.

한편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잠시 중단되었던 시절,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웹드라마 <좋좋소>는 한국 웹드로는 최초로 프랑스 칸 영화제 국제시리즈 페스티벌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빠니보틀이 이경규의 <복수혈전>과 비교하여 "요즘 시대였다면 더 맞는 B급 정서"라고 평가하자 이경규는 B급이라는 단어에 발끈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중소기업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좋좋소>는 일상적이고 공감대가 큰 스토리와 캐릭터가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빠니보틀은 영화/드라마 전공자도 아니었고 초저예산으로 만든 작품이라 연출, 각본, 미술, 편집, 섭외 등을 모두 홀로 감당해야 했다.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KBS 2TV <요즘 것들이 수상해>의 한 장면. ⓒ KBS 2TV

 
"엉성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관객들에게 중요한 것은 화질-음질보다 이야기더라"며 작품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비결을 자평했다. 함께했던 배우들은 처음엔 이게 과연 완성이 될까 의아해하면서도 혼자서 씩씩하게 일당백을 수행해내는 빠니보틀의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고백했다.
 
빠니보틀은 "인생을 살면서 성공해본 게 여행 유튜브 하나였다. 그런데 무작정했던 시도가 성공했다. 드라마도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완성해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도전해봤다"며 MZ세대다운 당찬 패기를 드러냈다.
 
이어 "저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부모님 세대는 제대로 살려면 남들처럼 대학가고 회사가야 한다고 말씀하곤 했다. 저는 어른들의 기준에서는 그 말을 안 듣는 청개구리였지만, 그래서 저만의 성공기준을 만들었다"고 고백하며 "요즘 세상은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다. 당장 일주일 뒤에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누가 먼저 새로운 걸 하고 적응을 빨리 하느냐가 관건인 시대"라는 소신을 밝혔다.
 
과거에는 세상이 정한 꽃길을 따라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세상의 벽을 넘어 '내 꽃길은 내가 스스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MZ세대의 도전정신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요상해>는 MZ세대의 직장과 라이프스타일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MBC에서 방영한 <아무튼 출근>를 떠올리게 한다. 오피스라이프의 가치를 예찬하는<아무튼 출근>과 비교하면, MZ세대의 도전과 '왜 그 일을 해야만 했는지'의 과정에 좀더 비중을 두었다는 게 차이점이다. 다만 한편으로 현실적인 모습보다는 이색적인 직업과 당장 화제성 높은 유명 인플루언서들만을 내세워, 자칫 '꿈과 도전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만 부추기는 듯한 모양새는 신중해야 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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