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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사이를 거닐다 마주한 자연이 조각한 동상.
 계곡 사이를 거닐다 마주한 자연이 조각한 동상.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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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들이 가지고 놀았다는 희귀한 바위 구경을 끝내고 호주 내륙에 있는 도시 앨리스 스프링(Alice Springs)으로 향한다. 고속도로를 타고 400km 정도만 운전하면 도착할 수 있다. 황량한 평야를 가로지르는 직선 도로다.

솔개들이 아침을 장만하기 위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머물고 있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가끔 마주치는 운전자들은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이 예사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도로에서 새 떼를 만났다. 작은 새들이 도로변에 있다가 자동차 소리에 놀라 날아간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보다 빠를 수 없다. 새 한 마리가 앞 유리창에 부딪혀 옆으로 튕긴다. 서너 마리의 새가 도로 한복판에 줄지어 죽어 있기도 하다. 도로를 주시하면서 새가 보이면 경적을 울리며 운전해야 했다. 오지에서만 겪을 수 있는 특이한 경험이다.

앨리스 스프링에 도착했다. 동서남북 모두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호주 대륙 한가운데 있는 도시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다. 동네 중심지 가까운 곳에 예약한 야영장에 도착했다. 큰 야영장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잘 정돈된 야영장이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서인지 외진 장소밖에 없다고 한다. 더운 날씨다. 조금은 지쳐있기도 하다.

금액을 더 주고 좋은 장소(Ensuite Site)에서 지내기로 했다. 공중 시설이 아닌 나만의 샤워실과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는 장소다. 이렇게 좋은 장소에 캐러밴을 주차하기는 처음이다. 오랜 여행 중에 한 번쯤은 호강(?)해도 되지 않을까.

호주 내륙의 한식당에서 마주친 '막걸리'

오지를 다니느라 한국 음식을 오랫동안 먹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한국 식당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의외로 한국 식당 하나가 올라온다. 반갑다. 저녁 시간에 맞추어 식당을 찾았다.

식당에 들어서니 눈에 익숙한 소주 광고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한국 냄새가 어느 정도 풍기는 적당한 크기의 식당이다. 그러나 김치와 찌개 냄새가 진동하는 한국 식당과는 거리가 멀다. 메뉴에도 얼큰한 국물은 보이지 않는다.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자가 주문받는다. 그런데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 중국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중국 사람이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다.

메뉴에서 '부다'라는 이름이 붙은 채식 비빔밥을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식당 주인이 옆자리에 막걸리를 놓고 간다. 막걸리를 주문한 호주인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막걸리는 처음 마신다고 한다. 한국 식당도 처음이라고 한다.

원주민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며 자신을 소개한다. 나에게도 막걸리를 권한다. 흔쾌히 한 잔 받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 음식도 호주에 많이 알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사람까지 한국 음식점을 운영할 정도가 되었으니.

다음 날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야영장을 나섰다. 낯선 동네에 가면 자주 들르는 식물원(Olive Pink Botanical Garden)에 가보기로 했다. 식물원 입구에 자리 잡은 카페에는 늦은 아침을 즐기는 사람이 제법 많다. 카페 옆으로 산책로가 보인다. 돌계단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 작은 동산 꼭대기에 도착했다.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정상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캥거루 두 마리가 나를 쳐다본다. 이곳에 서식하는 캥거루 가족이다.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는 캥거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옆으로 지나가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동산에서 내려와 식물원을 둘러본다. 건조한 들판에서 자라는 선인장 종류 식물이 대부분이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사람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꽃이나 특이한 식물은 보이지 않는다.
 
식물원 뒷동산 정상에서 만난 캥거루 가족.
 식물원 뒷동산 정상에서 만난 캥거루 가족.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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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스프링에는 볼거리가 널려있다. 사막 관광(Alice springs desert park)을 비롯해 은하수를 찾아 밤에 떠나는 관광 상품도 있다. 시내에서 떨어진 농장에 있는 베트남 식당도 인상적이다. 베트남에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베트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식당이다. 밤늦게 각국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시내 한복판에서 동네 사람들의 공연을 구경하기도 한다. 관광객이 많이 찾을 수밖에 없는 호주 대륙 한가운데 있는 도시다.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돌산의 웅장함
 
베트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식당. 석가모니 동상까지 모셔 놓은 식당이다.
 베트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식당. 석가모니 동상까지 모셔 놓은 식당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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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맥도넬 산맥(West MacDonnell Ranges)을 둘러보기로 했다. 앨리스 스프링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빠짐없이 둘러보는 산맥이다. 따라서 이곳을 둘러보는 관광상품도 다양하다. 산맥은 650km 정도로 방대하다. 모두 둘러보는 것은 무리다. 시간이 허락하는 데까지만 둘러볼 생각으로 자동차에 오른다.

서쪽으로 길게 늘어선 2차선 도로를 달린다. 왼쪽 차창 밖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산맥이 줄지어 있다. 산이라고 하지만 정상은 잘려 나간 산봉우리가 없는 산들이다. 드디어 첫 번째 볼거리(Simpsons Gab)가 있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려 들어가니 거대한 돌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앨리스 스프링을 상징하는 산맥의 모습. 봉우리가 없는 산이 끝없이 줄지어 있다.
 앨리스 스프링을 상징하는 산맥의 모습. 봉우리가 없는 산이 끝없이 줄지어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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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많이 찾는 장소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차장이 넓다. 큼지막한 안내판에는 사진과 함께 이 지역의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산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거대한 두 개의 돌산이 마주 보고 있다. 돌산을 올려본다.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웅장함이 펼쳐진다. 두 개의 돌산 중간에는 제법 많은 양의 물이 고여 있다. 우기에는 물이 많아 관광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단체 관광객들이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하루 동안에 가능하면 많은 곳을 구경할 생각이다. 서둘러 다시 차에 오른다. 도로변에 관광지 이정표가 있으면 빠짐없이 둘러보며 서쪽으로 계속 운전한다. 이곳에는 시선을 끌 만한 계곡이 줄지어 있다. 구경도 많이 하고 걷기도 많이 했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간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관광포스터 사진에 자주 나오는 관광지(Standley Chasm)를 외면할 수 없다. 서쪽으로 더 운전해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여섯 대의 캐러밴이 보인다. 주차장 근처에 무료 야영장이 있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아 포도주잔을 들고 늦은 오후를 즐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습이 인상적이다. 

서둘러 돌산을 향해 걷는다. 깊은 계곡 사이에 조성된 산책길이다. 주위에 시선을 돌리며 천천히 걷고 싶은 길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서둘러야 한다. 드디어 사진에서 보았던 거대한 돌산에 도착했다. 풀 한 포기 없는, 깎아지른 돌산과 돌산 사이에 작은 공간이 있다. 공간에 들어선다. 수직으로 뻗은 산에 잘려 나간 하늘을 올려본다.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적막한 공간이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이 스며든다.
 
깎아지른 돌산이 마주하고 있는 유명한 관광지(Standley Chasm)
 깎아지른 돌산이 마주하고 있는 유명한 관광지(Standley Chasm)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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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걷고 많이 구경했다. 자동차에 오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중년의 여자도 자동차 시동을 켠다. 자동차에서 숙식이 가능한 봉고차다. 작은 도로를 함께 빠져나와 큰 도로를 만났다. 앞에서 가던 봉고차는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는다. 계속 산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 밤은 산속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야영장에 돌아와 땀에 젖은 하루를 씻어낸다. 나만의 호화스러운(?) 개인 샤워장이다. 문득 늦은 시간임에도 산 깊숙이 들어간 여자가 생각난다.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하지 못할 것이다. 저녁은 비좁은 자동차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힘든 만큼 특이한 경험도 많이 할 것이다.

흔히 삶을 여행이라고 한다(Life is Journey).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힘들었던 경험을 많이 기억하며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고된 여행을 일부러 찾아 나서는 사람도 있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려웠던 시간이 나의 삶을 살찌우는 데 도움을 준 경우도 많았다.

많은 영적 지도자가 어려운 삶, 심지어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산과 산 사이에 호수가 있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계곡(Simpsons Gab).
 산과 산 사이에 호수가 있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계곡(Simpsons Gab).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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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호주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앨리스 스프링, #ALICE SPR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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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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