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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성 암, 협착 사고 등 심각한 산업재해 뉴스가 늘 따라다니던 한국타이어 공장. 작년 12월 한국타이어 고무노조 역사상 최초 파업 이후 1700여 명의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탈퇴해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이하 '지회')에 가입했다.

2014년 지회 설립 이후 죽을힘을 다해 노동안전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이어온 이들이 대표노조가 되었다. 어떤 열망이 모여 이런 결과가 생겼는지 듣기 위해 김용성 지회장, 오동영 부지회장, 변우석 금산공장 노안실장, 현진우 대전공장 노안실장을 만났다.
 
8년 동안 소수노조였다가 얼마 전 대표노조 지위를 갖게 된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활동가들을 만났다.
 8년 동안 소수노조였다가 얼마 전 대표노조 지위를 갖게 된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활동가들을 만났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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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았을 뿐 변화는 눈앞에

지회 설립 직후 1500명 가까운 조합원이 들어오기도 했고, 사측의 압박에 못 이긴 조합원들이 우르르 나가 고무노조로 향해 300 명만 남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작년은 달랐다. 작년 12월, 임금 협상 끝에 한국노총 고무노조가 최초로 파업까지 했지만, 위원장이 임금 6% 인상안에 대해 조합원 투표도 없이 회사와 합의해버렸다. 이후 조합원들의 고무노조 집단 탈퇴와 금속노조 집단 가입이 줄을 이어, 지회는 조합원 2500여 명의 대표노조가 되었다.

김용성 : 이제까지 고무노조가 노동조합 역할을 못 했어요. 그런데 파업을 하면서 조합원들이 스스로 깨우쳤던 것 같아요. 예전에도 임·단협 할 때마다 조합원 수가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던 건 조합원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고무노조에 대한 판단을 보여준다고 봐요. 그런데 이번에는 조합원들이 파업 집회에 직접 참석을 했고, 그러면서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다 넘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오동영 : 그때 고무노조 위원장이 자기가 처음에 자기가 공약 내세운 거는 다 하겠다고, 절대 직권조인 안 하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어요. 그랬는데 오후에 직권조인을 해버린 거예요. 조합원들한테 설명회도 없었고요. 투표를 해야 되는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해버렸죠.

한국타이어 위험노동의 경험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하나같이 경험하고 견뎌낸, 위험 공정의 역사를 들어보았다. 지회 설립 시기 현장 상황은 어땠을까?

김용성 : 제가 2002년에 입사했을 때 금산공장 성형 공정에서 노동자 한 명이 설비에 머리가 끼어서 돌아가셨어요. 제가 일하는 곳 바로 옆 설비에서요. 그런데 그 설비 한 대 세우고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도 다들 그냥 일하고 있는 거예요. 노동자가 사람 취급 못 받고 있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한 공정에서 사고가 안 나면 팀이 같이 호봉이 올라가고, 내가 다쳐서 얘기하면 다른 사람 임금이 못 올라가는 시절이 있었어요. 산재를 은폐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 놨던 거죠.

현진우 : 지회가 설립됐을 때 저는 고무노조 조합원이었어요. 몰드 교체 업무를 했어요. 업무를 하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고무노조에 산재 신청하겠다고 요청을 했는데 고무노조 부위원장이 산재 신청 어렵다면서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혼자 하겠다고 하고서 병원 가서 진단받고 시술을 받았어요. 그때 김용성 지회장님이 도와줬거든요. 산재 승인되고 치료받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도 바로 금속노조 가입은 안 했어요. 그런데 금속노조의 도움을 받았는데, 지금 이렇게 있는 게 맞나 계속 자책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무노조를 탈퇴하고 금속노조로 가입했죠. 노안 활동도 곧 시작하고요.

소수노조의 무기, 노동안전 활동

한국타이어지회는 초기부터 현장 활동으로 노안팀을 꾸렸다. 지회가 노안 활동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 또 어용노조와 구분되었던 지회의 활동은 무엇이었을지 물었다.
 
한국타이어지회 김용성 지회장
 한국타이어지회 김용성 지회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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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성 : 노동조합이 대표노조로서 교섭을 못 하면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소수노조로 할 수 있는 게 노안활동이었어요. 한국타이어 사업장에 질병도 많고 사고도 많잖아요. 고무노조랑 회사가 안 하고 숨기던 부분을 계속 부각시키고 산재 처리가 당연하다고 알리는 활동을 계속했죠. 저희가 6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출범을 했거든요. 그중 6명 정도가 노안 교육을 받고 산재 신청 방법을 배웠어요. 계속 교육받으면서 차근차근 한 공정씩, 한 사람씩 산재 신청하고 승인받았죠. 그리고 성과가 실질적으로 보이니까 조직화로 이어지더라고요. 고무노조나 회사에 말하면 안 되지만 금속노조는 하니까요. 노안 활동이 조직화 사업이기도 하고 노동조합을 지키는 일일 수 있어요.
 
한국타이어지회 오동영 부지회장
 한국타이어지회 오동영 부지회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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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영 : 소수노조는 활동을 하려면 근무시간 외에 하기 때문에 참 어려워요. 소수노조라고 해서 회사한테 기죽거나 그러지 말고, 노안 활동을 통해 회사가 개선하게 만드는 게 중요해요. 또, 재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본인하고 동료들하고 같이 단합하고 배우고 활동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김용성 : 고무노조 조합원이 현장에서 유리를 딱 짚으면서 깨져서 팔목이 반 정도 베였거든요. 회사에서는 이를 자해로 몰고 갔고 고무노조 노동조합은 방관했죠. 금속지회에서 도와줘서 산재를 했거든요. 이게 민주노조와 아닌 노조의 차이죠. 노안 활동을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회사의 편에서 입장을 내는지, 노동자 편에서 입장을 내는지가 차이죠.

배우면서, 부딪치며 깨우치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어쩐지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지회 활동가들은 노안 활동을 어떻게 배우고 실천했는지 물었다. 또 노안 활동을 통해 현장을, 인식을 바꿔낸 경험과 기억에 남는 일화를 물었다.

김용성 : 저는 참 무식하게 배웠던 것 같아요. 지회 활동 초기에 금속 중앙에서 교육을 받았거든요. 노조 실장님이 병원에서 진단을 잘못 내리면 싸워야 된다고 하길래 의사랑 싸웠거든요. 그랬더니 벌금 나왔어요.(웃음) 그런데 활동이라는 게 그런 거 같아요. 교육만으로는 안 되고, 부딪치고 실천하면서 내 것이 되는 거예요.
 
한국타이어지회 대전공장 현진우 노안실장
 한국타이어지회 대전공장 현진우 노안실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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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우 : 재해자가 어느 부위가 아파서, 상병 진단받고 산재 신청을 하게 되는데, 현장 관리자들이 "야, 너만 아픈 거 아니야. 여기 10년 이상 한 사람들 다 아파" 이렇게 말을 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전해듣고, 그 반 조회 시간에 제가 직접 같이 가서 항의했어요. 그랬더니 그 관리자가 미안하다고 재해자에게 직접 사과한 일도 있거든요. 조합원들이 요청을 했을 때 현장에 찾아가서 직접 같이 대응을 해주는 게 진짜 중요한 거 같아요.
 
한국타이어지회 금산공장 변우석 노안실장
 한국타이어지회 금산공장 변우석 노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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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우석 : 활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사고가 나서 산재 처리를 했어요. 사고성 재해 같은 경우는 보통 일주일에서 2주 정도 걸리거든요. 한 달이 지났는데도 결과가 안 나왔다고 해서 근로복지공단 전화해 보니까 사업주가 반대 의견을 냈더라고요. 그래서 사고 경위 확인하고 동료 진술서 받은 다음에 바로 공장장한테 이런 사고 있었는데 지금 산재 은폐하는 거냐고 따졌어요. 노동청 산재 예방과에도 은폐하는 것 같다고 신고하고 공단에도 얘기를 했어요. 그 다음 조사하고 있는 와중에 승인이 났더라고요. 회사에서 인정을 해 가지고.

소수노조 활동 속에서도 조금씩 달라진 지회의 위상

소수노조에게 있는 활동 제약, 현장을 바꾸는 활동을 해도 늘지 않는 조합원 수는 지회 간부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함께 산재 신청을 한 후 지회로 가입했다가 다시 고무노조로 재가입한 조합원은 지회 간부들을 서운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희망을 그려본 시간들이 있다.

오동영 : 산재 입증은 재해자가 해야 하니까 우리가 작업 영상을 촬영해야 하거든요. 우리가 회사에 요청하면 취업규칙 위반이라면서 작업 영상을 못 찍게 해요. 소수노조가 힘이 없다 보니까 그냥 틈틈이 몰래, 며칠씩 걸려서 촬영해서 그걸 가지고 산재 진행을 해야 했어요. 그래도 우리 동지들한테 고마운 게, 동지들이 희망이 있었어요. '언젠가는 우리가 다수노조 된다', 이렇게 희망을 갖고 포기하지 않았어요. 또 농담일지 모르는데 지회장님이 그랬어요. 어디 가서 점을 봤는데 우리가 다수노조 된다고 했대요. (웃음)

김용성 : 우리 동지들이 열심히, 자기 시간 쪼개서 활동했잖아요. 조합원들하고 뭔가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그 희망이 없으면 할 수가 없거든요. 저는 조합원 동지들한테 희망을 주는 게 노동조합 할 일이라고 봐요. 목표가 있어야 활동력이 더 강화되니까요. 점을 본 건 아니고요. (웃음)

희망을 가지고 오랜 시간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한 결과 지회의 위상은 서서히 변화
하기 시작했다. 사측이 노동안전 이슈에 대해 지회를 테이블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하나씩 하나씩 활동을 쌓아간 결과 지회는 어느덧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김용성 : 2017년에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노동청, 사측, 2개 노조로 노사정 TFT가 만들어졌어요. 어쨌든 계속 큰 중대 재해가 발생했고, 한국타이어지회 동지들이 힘차게 싸움을 했기 때문에 노동청에서도 우리를 TFT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현장 감독을 해보니까 법 위반 사항이며 현장의 위험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저희가 주로 문제제기를 하니 저희를 부르고,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고요.

그 뒤에 대전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또 났거든요. 그러니까 작년에, 우리가 대표노조가 아닌데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대신 법적인 책임은 없는 내용으로 산보위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못 한다는 입장으로 협상 중이었는데 다수 노조가 돼서 산보위를 이제 정식으로 할 수밖에 없게 됐죠.

더 크게 품을 시간, 지회의 계획

대표노조가 된 이후 소수노조였을 때의 조합원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과 함께, 이전에 해보지 않은 활동까지 하게 되었다. 조합원들의 기대, 지회의 새 계획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김용성 : 지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교육 시간을 따내는 겁니다. 지금 안전 교육을 회사가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시간도 몇 분밖에 안 하고 있거든요.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자들이나 현장 작업자들이 안전에 대해서 무지해요. 유해물질이 뭔지, 설비가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거예요. 노동조합이 올해 안전 교육은 반드시 제대로 따내야 해요.

현진우 : 4월에 사측에 임금 협상을 위한 상견례 공문을 보냈어요. 그전에 조합원들한테 설문지를 배포해서 임금 관련 요구를 확인했어요. 타이어 업계 3사 중에서 저희가 임금, 복지가 제일 꼴찌라 임금 인상 요구가 크긴 커요. 투명하게 조합 운영을 해달라는 조합원 요구도 크고요.

오동영 : 사측에서 투자를 해서 설비를 제대로 개선해야 해요. 사측이 이런 걸 바꿔 나가려면 진짜 결정해서 집행할 수 있는, 실제 사업주가 나와야 되잖아요. 공장장 같은 사람들한테 아무리 얘기해 봐야 결정권이 없으니까 답답하죠. 실제 사업주하고 제대로 된 협의를 해서 현장을 바꿔 나갈 수 있게끔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지회의 전략이자 돌파구로써 노동안전 활동을 해온 지난 8년이었다. 기존 지회 조
원, 탈퇴 후 가입한 조합원, 그리고 이제 소수노조인 고무노조의 조합원들까지 살펴야 할 범위가 넓어졌다. 해나가야 할 활동도 크게 늘었다. 이제 한국타이어의 대표노조로서 훨씬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으며, 노동조합 활동을 펼쳐나갈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청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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