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나이를 뛰어넘는 최고령 언니들의 용감한 질주가 조금 일찍 막을 내렸다. 5월 11일 방송된 SBS <골 때리는 그녀들>(아래 골때녀)에서는 '원조 챔피언' FC불나방과 '신흥강자' FC액셔니스타의 슈퍼리그 조별 예선 2차전 경기가 펼쳐졌다.
 
파일럿과 시즌1에서 2연속 우승을 차지한 불나방은 이번 슈퍼리그에서는 1차리그를 거쳐 올라온 구척장신-액셔니스타와 함께 A조에 편성됐다. 불나방은 1차전에서 구척장신에게 0-1로 패하며 개막전부터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만일 액셔니스타와의 2차전마저 패하면 그대로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
 
하석주 감독은 변화를 위하여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송은영과 서동주를 수비로 내리고 에이스 박선영을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했다. 공격수에는 그동안 최전방 수비수만 맡아왔던 최고령 맏언니 신효범을 깜짝 배치했다. 팀의 약점인 부족한 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한 변칙 용병술을 시도했다. 주장 박선영은 "팀을 리셋해서 초심으로 돌아갔다. 저희 팀이름인 불나방처럼 모닥불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액셔니스타를 잡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초반 불나방이 경기를 주도했다. 액셔니스타는 불나방의 포메이션 변화에 적응하지못하고 위치를 잡는 데 애를 먹는 모습을 보이며 여러 차례 공격 기회를 허용했다. 신효범은 최전방에서 타깃맨 역할을 맡으며 동료들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주는가하면 상대 킥인 상황에서 얼굴도 가리지 않고 몸으로 공을 막아내는 투혼을 선보이며 오히려 상대팀인 액셔니스타가 신효범을 걱정해주기도 했다.
 
액셔니스타는 1차리그 MVP인 '혜컴' 정혜인의 위협적인 킥 능력을 내세워 세트피스로 반격의 실마리를 풀어갔다. 심상치 않은 흐름을 감지한 하석주 감독은 주도하는 분위기에서도 곧바로 작전타임을 불러서 상대에게 최대한 킥인을 내주지 말 것을 주문했다. 하석주의 전략을 눈치챈 이영표 액셔니스타 감독은 정반대로 무리한 드리블 대신 터치아웃을 유도하여 킥인을 활용한 세트피스 공격을 주문했다.
 
불나방이 공수를 넘나드는 박선영을 중심으로 촘촘한 조직력을 앞세워 경기를 풀어갔다면, 액셔니스타는 정혜인과 최여진의 콤비플레이를 바탕으로 선굵은 역습에 치중했다. 양팀 모두 개인기량과 공간 압박능력이 향상되며 좀처럼 득점찬스를 내주지 않았다. 액셔니스타 이영진이 하프라인에 날린 중장거리 슈팅, 박선영의 킥인이 수비벽을 맞고 굴절되며 각각 한 차례씩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오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연출했다. 전반은 결국 0-0 무승부로 끝났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후반에도 팽팽한 경기흐름이 이어졌다. 득점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낸 것은 불나방이었다. 박선영이 이혜정과 정혜인의 더블 수비를 드래그백으로 무력화시키며 중거리슈팅을 날렸으나 골문을 벗어났다. 중앙에서 송은영의 스루패스에 이어 조하나가 완벽한 일대일 찬스를 맞이했으나 힘이 실리지 못하며 골키퍼 장재희의 손을 맞고 밖으로 아웃됐다. 불나방은 연이어 소나기 슈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액셔니스타의 수비벽에 막혔다. 불나방은 많은 찬스에도 불구하고 결정력이 부족했다.

승부차기의 기운이 짙어가던 후반 막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액셔니스타의 세트피스 공격 상황에서 정혜인의 킥인이 골키퍼 안혜경의 펀칭을 맞고 튀어나왔고 이 공을 서동주가 손으로 건드려서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서동주는 그대로 그라운드에 쓰러지며 좌절했다. 후반 종료 1분을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최여진이 키커로 나섰다. "못 넣으면"이라며 긴장하는 최여진에게 이영표는 어깨를 툭 두드리며 "넣든 못넣든 이런 게 익사이팅한 삶이다. 그냥 갖다가 쌔려(?)버려라"며 격려했다. 자신감을 얻은 최여진은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 오른쪽을 가르며 귀중한 선제골을 뽑아냈다.
 
다급해진 불나방은 만회골을 넣기 위하여 총공세에 나섰다. 하석주는 종료 30초를 남기고 골키퍼 안혜경까지 빼고 전원 필드플레이어만 투입하는 초강수를 선택했다. 하지만 혼전 상황에서 이영진이 걷어낸 공을 이어받은 정혜인이 역습에 나서서 단독 돌파로 텅 비어있던 불나방의 골문에 추가골을 작렬시켰다.
 
마치 지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이 손흥민의 쐐기골로 독일을 격침시켰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공교롭게도 그때와 스코어도 동일했고 디펜딩챔피언이 다음 대회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된 것도 똑같았다. 경기는 2-0 액셔니스타의 승리로 끝났다. A조에서 나린히 1승씩 거둔 구척장신과 액셔니스타는 최종전 맞대결 결과와 상관없이 4강진출을 확정했고, 불나방은 2패로 탈락이 확정됐다.
 
서동주와 안혜경은 패배의 아쉬움과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하석주 감독과 선수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서로를 격려했다. 박선영은 "한 골을 먹히기 전에는 대등한 경기여서 승부차기를 예상했다. 진짜 아쉬웠다"면서도 "아직 5-6위전이 남아있다. 꼭 이겨서 5위는 하고싶다"며 애써 웃으며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불나방은 사실상 <골 때리는 그녀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모태가 된 팀이다. <골때녀>의 시작은 박선영, 신효범, 조하나, 안혜경 등이 출연했던 <불타는 청춘>에서 여성 출연진과 제작진들의 축구대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출발했다. 불나방의 멤버들은 막내인 서동주를 제외하면 전원 <불청> 출연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나방은 평균 나이 48.3세로 <골때녀> 9개팀을 통틀어 평균 연령 최고령팀이었지만 파일럿과 시즌1를 당당히 2연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에이스인 박선영은 <골때녀>의 '절대자'로 불리우며 엄청난 실력으로 주목받았고, 불나방은 박선영 외에 특출한 멤버들은 없었지만 탄탄한 팀워크와 조직력으로 훨씬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상대팀들을 압도하며 '언니들의 연륜'을 증명했다. 조하나는 "40~50대도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팀은 그런 마음이 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즌2에 접어들며 상대팀들의 전력이 점점 업그레이드된 반면 불나방의 노쇠화는 두드러졌다. 맏언니 신효범은 이미 시즌1을 마치고 하차를 고려했을 만큼 <골때녀> 모든 출연자를 통틀어 최고령이었고, 에이스인 박선영도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막내인 서동주가 39세인데 다른 팀의 최고령자들과 비슷한 연배다. 시즌1 준우승팀 국대패밀리-3위 월드클라쓰가 새로운 멤버보강으로 전력을 끌어올린 것과 달리 불나방은 유일하게 기존 멤버에 변화가 없었다.
 
불나방은 파일럿과 시즌1를 통틀어 조별리그에서 개벤져스에게 승부차기로 한 차례 패배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시즌2에서는 2경기 동안 단 한 골로 넣지 못하고 무득점 2연패로 슈퍼리그 첫 탈락팀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스포츠의 격언과 함께 최고령팀으로서의 체력과 전력보강의 한계를 드러낸 대목이다. 박선영은 "20대가 축구를 해서 느는 것과 50대인 저희는 다르다. 저희는 발전보다는 유지만 해도 다행이다. 그래도 이기고 싶은 마음은 큰데 아쉽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나방은 훨씬 젊고 체격조건도 우수한 선수들로 구성된 구척장신-액셔니스타를 상대로 내용 면에서는 팽팽한 경기를 펼치며 언니들만의 관록을 증명했다. 또한 나이를 뛰어넘은 투혼과 실력, 진심을 다한 승부욕은, 단지 <골때녀>는 단지 예능으로 생각하고 출발했던 다른 팀들에게도 자극과 동기부여를 안겨줬다. <골때녀>라는 리그 전체의 수준 향상과 상대팀들의 성장 서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 일종의 '멘토' 역할을 불나방이 해낸 셈이다.
 
<골때녀>는 최근 시즌을 거듭하면서 출연자들의 연령대가 젊어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파일럿 시즌때처럼 축구실력을 떠나 40~50대 이상이 중장년층 멤버들도 축구의 재미를 느끼고 도전할수 있다는 매력을 일깨워준 것은 불나방의 영향이 컸다. 만일 <골때녀>가 차기 시즌도 제작된다면 불나방은 역시 없어서는 안될 팀으로 꼽힌다. 한편 A조의 향방이 결정된 가운데 다음주에는 B조의 FC 월드클라쓰 대 FC개벤져스의 맞대결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골때녀 불나방 불타는청춘 액셔니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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