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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왼쪽)과 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오른쪽).
 몽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왼쪽)과 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오른쪽).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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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본격 논의를 시작한 것이 2007년이다. 그동안 법 제정을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최근 시도만 보더라도 작년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열어 10만 명 동의를 달성해 국회의 논의를 압박했고, 10월에는 이종걸과 미류, 두 활동가가 부산에서 국회까지 도보 행진을 하고 많은 시민들이 합류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을 꾸려 수도권을 누비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4월 11일, 미류와 이종걸 두 활동가는 단식에 돌입했고 4월 내 제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하고 있다. '나중에' 보자고 하던 대통령도 최근 임기 내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말했지만, 국회는 뒷짐만 지고 있다.

누구도 차별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루 가장 긴 시간 머물고 생계를 꾸려가게 하는 일터에서의 차별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고 건강을 손상시키기도 한다. 직장에서 성소수자나 장애인,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구조와, 노동자를 불안정하고 불건강하게 만드는 현실을 차별금지법이 바꿀 수 있을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몽,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호림 두 분을 만나 들어보았다.

일하는 모든 이에게 차별 없는 노동환경을

여성이라서, 이주민이라서, 장애인이라서, 비정규직,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누구나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 일터에서 나의 동료가, 동료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 차별을 겪지 않게 막을 수 있는 권리가, 근거가 차별금지법에 담겨 있다.

몽 : "법안 내용을 보면, 4가지 주요 차별금지 유형이 있어요. 고용, 재화용역서비스, 교육/훈련, 행정서비스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고용이에요. 차별금지법이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나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법으로 인식되잖아요. 사람들이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인식해왔죠. 차별금지법은 노동 현장에서 차별을 겪을 때 차별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언어와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요.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주요한 통로가 되는 거죠. 사회적 소수자만이 아니라 우리 삶과, 먹고사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 있는, 민생법안입니다.

또 차별금지법은 고용 영역에서 적용 대상이 폭넓어요. 사용자를 정의하는 폭도, 근로자를 정의하는 폭도 넓습니다. 기존 법에서 보호하거나 권리를 찾기 어려운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권리가 생겨요. 하루 중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긴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금지법에서 고용 영역의 의미가 알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장벽인 차별적 고용시장

발의된 차별금지법 법안 5개 중 4개에서 '모집·채용 시 건강진단을 받게 하거나 건강진단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사항으로 넣고 있다. 건강진단이 차별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조차 당사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이해의 차이가 크다. 모집 및 채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 요소는 무엇이 있을지 들어보았다.

호림 : "이건 병력 차별 문제인데요. HIV 감염인의 경우 치료제가 개발돼서 만성질환으로 관리하며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채용 전 혹은 직장 내 건강검진에서 감염 사실이 알려질 경우에 채용이 취소되거나 해고될 우려가 높습니다. 실제로 발생하기도 하고요. 직장 내 건강 상태를 본인 동의 없이 사측에서 알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사자는 결과가 회사에 알려질까 걱정이 커요. 이게 차별인데 제대로 금지하는 법이 없으니 HIV 감염인이라면 4대 보험 되는 직장을 오히려 기피하게 됩니다. 이렇게 감염인들이 고용시장에서 주변화되고, 취약한 위치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이 내용을 법안에 포함하게 되었어요."

몽 : "지금 건강검진 자료를 너무 당연히 제출하고 있잖아요. 회사에서 하는 건강검진 항목은 패키지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고, HIV 항목이 포함되어 있어요. 병원에서 회사에 제출하지 않을 수 있는데, 회사에서는 노동자에게 직접 제출하게 하죠. 이걸 문제라고 여기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제출합니다.

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때도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하게 하고 있는데, B형 간염 감염 사실이 확인되면 기숙사 주거를 불허하는 경우가 있어요. 특정한 건강 상태인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따져보면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질병에 대한 사회적 지식을 못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알게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에요.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법적 성별 정정 이전인 트랜스젠더의 경우, 기업에서 주민등록번호와 외모를 본 다음 일치하지 않으면 해고하는 경우도 있다. 트랜지션(사람의 성 정체성의 내부 감각을 젠더 외형표현&성별 특성과 일치하도록 바꾸는 과정)을 하는 시기에 구직을 하는 이들은 외모와 법률상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구직에 실패하기도 한다.

이런 차별 경험은 우울이나 자살 생각 같은 정신건강 문제로 나타난다. 또 비우호적인 직장에서 원치 않게 정체성이 드러날 경우 폭력이 되어 이들의 일상을, 건강을 파괴하기까지 한다.

호림 :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서 직장 내에서 부당한 대우, 폭력적 경험을 해봤는지를 묻고, 경험했다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물었어요. 경험한 사람 중 93.3%가 참거나 묵인했다고 답했어요.

왜 대응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대응하면 트랜스젠더인 게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입거나, 변화 없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알리고 싶지 않을 수 있는 정체성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거죠. 알려졌을 때 안전하다면 알릴 수 있겠지만, 그에 따르는 추가적인 괴롭힘이 너무 두려운 거예요."

 
인권의 가치와 기본권이 존중받는 사회로의 한 걸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많은 이들이 뜻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4월 28일,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회의 및 비상시국선언.
 인권의 가치와 기본권이 존중받는 사회로의 한 걸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많은 이들이 뜻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4월 28일,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회의 및 비상시국선언.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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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갖는 일, 시민권을 얻는 길

타인과의 공감을 말할 때 '누구의 가족인 감정노동자에게 욕설, 폭언을 하지 말라', '당신도 장애인 될 수 있으니 장애인 이동권을 인정하자'는 말을 보게 된다. 난민들에게 특별 기여자라는 이름을 붙여야 받아들이는 사회다. 이런 이해로 충분한 것일까? 동료 시민으로서 이들이 이 사회에서 시민권을 얻는다는 것은 먼 얘기로 보인다.

몽 : "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열심히 투쟁해왔는데요. 주요 요구가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권이에요. 장애인 예산은 복지로 다뤄져 왔던 건데 이분들이 권리를 붙여서 싸워온 것이에요.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 어떤 언어로 넣을지 논의했을 때 영어로 있던 말을 옮기는데 '정당한 편의 제공'을 정부는 '합리적 배려'로 하려고 했어요. 여기 엄청 큰 차이가 있거든요. 정당하다는 말에 시민의 개념, 권리라는 요구가 담긴 것이고, 그래서 그 말을 지켜냈다고 생각해요. '너랑 나는 똑같은 시민이다, 나에게 어떤 권리가 있다', 그런 게 제도에 담겨야 하는 거죠."


호림 : "정치권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아서 어렵다고 하는데, 차별 다 사라진 다음에 법을 만들자는 걸까요? 차별 있는 사회에 살기 때문에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도 이 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법으로 차별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거죠. 법이 사회적 인식을 견인할 수 있어요."

몽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하려고 싸울 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 재해 문제라는 얘기를 했었잖아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도 싸우다 보니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셨어요. 이런 속도, 효율로 비장애인들도 고통을 겪고 살고 있더라는 거죠. 그 체계를 바꾸지 않고는 노동권, 교육권이 보장된다 한들 장애인은 효율 떨어지는 사람인데 시혜적으로 일할 자리를 만들어주면 되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적 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만들어온 변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법이었다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에서 필요한 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구체적으로 자기 삶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그것이 없는 사회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직감할 수 있는 사회, 이런 조건을 제정운동이 만들어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법이 제정된다 해서 차별이 금세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차별에 공감하고 없애려는 시민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나도 차별 당하는 게 싫으니 나와 같은 사람이, 나의 동료가 차별을 당하게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할 수 있는 시민, 그런 시민들의 사회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사람들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청희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차별금지법, #안전하고_건강한_일터, #차별없는_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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