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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오토바이
 배달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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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정부는 2년 1개월 만에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과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을 전면 해제하며 진정한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다. 이에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외식 업계의 상황을 연일 보도했다. 특히 이번 재난 중 크게 성장했다는 배달업계의 동향을 분석하는 기사가 눈에 띄게 많았고 제목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배달음식점 울상, 배달업계 어닝쇼크, 홀에 손님 들자 배달 뚝'

그러니까 접객 전문 음식점들은 이제 한숨 돌렸지만, 그동안 특수를 누렸던 배달 전문 음식점과 배달 대행업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사 제목들처럼 배달 관련 업종은 앞으로 망할 일만 남은 걸까? 그리고 배달 음식점들은 이번 재난 기간 중 장사가 잘되었다는 뜻일까? 그도 아니면 언제나 그렇듯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침소봉대' 된 제목인 걸까?

과연, 배달 음식점은 돈을 벌었을까?

이번 코로나19 재난은 우리 국민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 그리고 필자 또한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이번 코로나19 재난 동안 신생 외식 프랜차이즈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하필 창업 초기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 회사가 배달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프랜차이즈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당시의 착각이었다.

출발은 좋았다. 우리 회사 가맹점들의 매출은 다른 브랜드에 비교해도 평균 이상이었다. 비록 사업이 자리를 잡기 전에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돌발 변수가 생기기는 했지만, 배달 전문 업종이라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반사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착각은 딱 2020년 5월까지였다.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가맹점들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자영업자들이 각종 영업 제한을 받으면서 너도나도 배달 음식업에 뛰어들거나 접객 음식점들도 배달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KBS가 '한국신용데이터' 자료를 인용한 기사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음식업의 배달 비중은 40%였지만,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12월에 음식점 배달 비중은 거의 100%에 다다랐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다못해 배달 업종과는 정말 무관한 '무한리필' 음식점들도 모두 배달에 뛰어든 것이다.

또한 지난해 3월 공정위는 '가맹산업 현황' 자료를 통해 2020년 공정위에 등록된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가 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으며 최초로 7000개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재난으로 최근 전체 자영업자 수는 분명 감소하는 추세지만, 최초 창업은 오히려 늘었다는 기사도 나왔다(매일경제, <코로나에 창업 줄었지만…'취업난' 20대, '은퇴족' 60대 자영업은 늘어>). 이런 통계자료만으로도 배달외식업 상황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되었겠는가. 밥은 언제나 한 그릇인데 올라가는 숟가락은 늘었으니 내 입에 들어가는 밥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거리두기 전면 해제 첫 날인 지난 18일 저녁 퇴근한 회사원들이 서울 시내 주점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거리두기 전면 해제 첫 날인 지난 18일 저녁 퇴근한 회사원들이 서울 시내 주점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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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과도한 공급은 언제나 지나친 경쟁을 유발한다. 사슬에 힘이 가해지고 그게 역치에 이르면 가장 약한 고리가 먼저 끊어지는 것이 이치이다. 필자가 몸담았던 회사처럼 자본과 경험이 부족한 신생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형 외식 브랜드들은 어떠했을까? 이미 보도된 일부 치킨 브랜드들의 코로나 재난 기간 중 기록적인 매출 상승 소식처럼 대형 브랜드들은 모두 승승장구했을까?

필자는 대형 외식 브랜드에서 투잡을 하고 있어 그들의 속사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들 빅 브랜드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 치열한 경쟁에 힘겨워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온갖 명분의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문제는 이런 프로모션은 본사가 거의 일방적으로 주도하고 점주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치킨 게임처럼 진행되는 잦은 프로모션에 점주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1만 6000원을 할인하는데(판매가의 50% 할인), 본사 부담은 3000원 배달 중계 플랫폼이 5000원 점주가 8000원을 부담하죠.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솔직히 힘만 들고 의욕이 생기질 않네요."

지난겨울, 본사의 프로모션 진행으로 그날 주문은 쏟아졌지만, 점주의 얼굴은 어두웠고 직원들은 파김치가 되었다. 그날, 오늘도 프로모션이 있었냐는 내 질문에 점주는 위와 같이 말했다. 그러니까 빅 브랜드들은 브랜드의 인지도와 자본 그리고 점주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매출을 끌어 올리거나 방어한 것이다.

4월은 원래 비수기였다

"오늘 왜 이렇게 한가하죠?"

4월이 되면 이런 글이 자영업 관련 커뮤니티나 단톡방에 자주 올라온다. 정말 처음 경험한 비수기에 당황한 초보 사장이 올리기도 하지만, 경력이 꽤 되는 사장들도 연례행사처럼 올린다. 이들은 자신의 하소연에 어떤 댓글이 달릴지도 대충 알고 있다.

"저도 엄청 한가하네요."
"요즘 비수기잖아요~"
"잘 견딥시다."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 4월은 상당수의 서비스, 소비 업종의 대표적인 비수기다. 본격적인 나들이 계절의 시작이라는 특성도 있지만, 학생들의 중간고사 시즌이라는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발생하는 가정의 교육비 지출 영향도 적잖다. 이렇게 매년 때가 되면 찾아오는 비수기이지만 자영업자에게는 언제나 새삼스럽다. 이건 수평의 공간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하루 매출에 일희일비하는 자영업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4월 비수기가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에 남다른 것은 분명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 앞에서 점심식사를 나온 직장인들이 줄을 서 있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 앞에서 점심식사를 나온 직장인들이 줄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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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후 처음 맞이하는 주말, 투잡으로 일하는 가게에 도착해보니 주문서가 꽂혀 있어야 할 자리가 너무 썰렁했다. 물론 비수기답게 이미 4월 초부터 주문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거리 두기 해제' 영향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거둘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퇴근 시간이 한 시간 남은 오후 9시, 저녁 식사 시간대에 몇 시간 바쁘더니 다시 한가해졌다. 사장은 내게 오토바이를 정리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곧 주문이 들어 올 수도 있지 않겠냐는 내 말에 그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9시 이후에 주문이 두어 건 정도만 들어오니 배달 대행 부르면 돼요."

난 이런 인사말로 위로를 전하고 문을 나섰다.

"잘 아시죠? 4월은 비수기인 거, 가정의 달 5월이면 다시 바빠질 겁니다."

집으로 가는 길, 도로 옆 상가에 크게 자리 잡은 어느 유명 브랜드 치킨점의 그 많은 테이블은 꽉 차 있었다. 이번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전까지만 해도 의자의 반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나마 빈 테이블도 손님이 드문드문 자리하여 그 큰 점포가 휑했는데... 그랬던 가게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가게를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한 호프집, 포차, 카페는 정말 오랜만에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순간 이 모습이 정말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 광경은 우리가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그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란 것을.

태그:#거리두기 해제, #배달음식, #자영업, #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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