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0 18:48최종 업데이트 22.04.2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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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병사 월급을 20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내년도 이행을 전제로 검토중이라는 소식이 화제다.

박근혜 정부가 물러날 때 병장 월급이 21만 6000원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2017년 기준)의 50%까지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인상 계획을 밝혔을 때만 해도 곳곳에서 무기 마련할 돈을 병사들에게 살포한다며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렇게 5년이 지나 병장 월급은 67만 6100원이 되었다.

병사 월급 200만원 시대

'병사 봉급 월 200만원'

20대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 1월 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 하나를 내놨다. 그 즈음 올리기 시작했던 페이스북 한 문장 공약 중 하나였다. 앞뒤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관련 공약을 내놨다. 그렇게 대선을 거치며 병사 월급 200만원 시대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불과 5년만에 병사 월급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많이 바뀐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1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을 공약했다. ⓒ 윤석열 후보 페이스북

 
그런데 이 공약은 당선 다음 날부터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당선인의 공약 중 대표적으로 수정될 것으로 점쳐지는 공약 중 하나로 꼽혔기 때문이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손을 볼 수도 있다는 추측도 무성했다. "당장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인수위 관계자의 발언도 나왔다. 그러던 차에 인수위가 병사 월급 인상을 금년부터 추진할 계획으로 방안을 고민 중이라 밝힌 것이다. 다만 예산 편성 등의 현실적 문제를 고려할 때 5월부터 월급을 올리기보단 200만원과 현재 급여의 차액을 적립하였다가 전역할 때 목돈으로 쥐어주는 방향이 유력해 보인다.

징집된 병사 월급을 간부에 준하는 수준으로 인상하는 건 오랜 세월 외면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일이다. 사회 전반의 경제력이 신장되고 군사력이 증강됨에 따라 병사 처우도 함께 개선되었어야 하는데 수십 년을 제자리에 멈춰두고 젊은이들의 피와 땀으로 때워온 무거운 빚이 뒤늦게 우르르 청구되는 격이다. 나라 살림에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 비용은 우리 사회가 함께 감당해내야 할 몫이다. 맹목적 희생에 우리 사회 공동체의 안전을 부담지울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점은 다른 데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에 걸쳐 병사 월급을 3배가량 올리고, 다시 2026년까지 100만원 수준으로 인상하는 국방중기계획을 세웠다. 순차적 인상이 의미하는 바는 외적으론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가장 크다. 그러나 '그런 식이면 늦게 입대할수록 이득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을 그리고 순차적 변화를 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나의 정책이 바뀌면서 만들어 낼 연쇄적 변화를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걱정은 다른 곳에

병사 월급 인상은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다. 병사와 초임간부가 비슷한 급여를 받으면 병역 의무 이행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소중한 젊은 시간을 나라를 위해 바쳤으니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기엔 모자라다고 봐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에 대해 터놓고 고민해본 적이 없다. 병사를 소모품만 못하게 다뤄온 상식 이하의 세상에 너무 오래 살아왔기 때문이다. 병사는 언제나 불쌍하고, 안타깝고, 끌려가서 고생하는 존재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 이상을 고민하기엔 병사의 처우가 너무 열악했다.

이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내면 병사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 법령체계 상에서 병사의 지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공무원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무원이 아닌 것도 아니다. 징병제 하에서 징집되어 있는데다 공무원으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요, 책임을 갖는 것도 아니니 공무원은 아니다. 그러나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공무를 수행하고, 잘못을 하면 공무원 마냥 행정 처분에 해당하는 징계를 받고, 국가로부터 월급도 받는다. 징집병이란 법의 테두리에서 대체 어떤 존재인지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답을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예된 고민이다.

일선 부대에서는 동계 훈련을 앞두고 방한용품 등 개인용 훈련자재를 사비를 모아 공동구매 하는 일이 암암리에 벌어지곤 한다. 부대에 훈련비가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겪었던 병사들의 고충 호소를 몇 차례 상담한 적이 있다. 들어보면 이 황당한 일을 가능케 했던 여러 요인 중에는 최근 몇 년 얼마간 올랐던 병사 월급에 대한 일부 간부의 왜곡된 인식도 있었다. 돈 많이 받는데 자기가 쓸 훈련용품 좀 사비로 사면 어떠냐는 식이다. 그런 간부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은 차치하더라도, 월급 몇 십만 원 올려줬다고 징집된 병사의 의식주 생활을 국가가 무한히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흔들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병사 월급이 200만원이 되면 한층 낯선 논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병사는 더 이상 불쌍하고 고된 존재로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당장 인수위에서는 병사 월급에 세금을 떼야 하는지 고심 중이라 한다. 일각에서는 간부와 마찬가지로 피복비, 식비 등을 공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데, 국가가 의무로 데려가 놓고 그 정도는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병사의 업무상 과오와 책임에 비교적 관대한 현실도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인식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뿐인가. 징병제에 기반을 둔 병역제도는 기본적으로 징집의무대상자에게 고르고 평등한 희생을 요한다. 우리 사회는 징집병들에게 오랜 세월 열악한 처우를 강제했기 때문에 이러한 의식이 한층 강하다. 그래서 국가가 만들어 놓은 신체 기준에 미달한 이들의 병역을 면제하지 않고 사회복무라는 다른 형태의 희생을 요구해왔다.

기본적으로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공공기관에 일손이 부족해서 만든 제도가 아니다. 지금도 많은 보충역이 복무하러 갈 자리가 없어 소집 대기중이다. 그런데 병사들에게 월급 200만원을 주자면 다른 형태의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사회복무요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월급 200만원을 줘야 한다. (지금도 병사들과 사회복무요원은 같은 월급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병사들에게 월급 200만원을 쥐어주는 시대에도 '고르고 평등한 희생'을 위해 보충역과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효율적인 정책 방향인지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병역제도 전반 운영의 재검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예된 고민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병사 월급 인상은 국방 개혁의 한 갈래
 

윤석열 당선자가 지난해 12월 20일 강원도 철원 육군 3사단 부대(백골 OP)를 방문해 손식 육군 3사단장(오른쪽)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 국회사진취재단

 
병사 월급 인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인상 시점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병사 월급 인상이 빚어낼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고, 대책을 마련할 역량이 있다면 당장 내일 올려도 괜찮다. 그러나 다음 정부를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과연 그러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당선인의 공약이니까', '임기 시작과 동시에 달성하면 좋으니까'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임기 시작과 동시에 무언가 대대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는 강박이 곳곳에서 읽혀 더욱 그렇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병사 월급 인상도 사안은 다르지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비치는 인식이 비슷하게 읽힌다. 취임도 안 했는데 한 달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무리해서 추진하지 않아도 충분한 논의와 고민을 거쳐 빠른 시일 내에 병사 월급을 인상할 방도는 얼마든지 있다. 반드시 취임과 동시에 시행하겠다고 고집할 일이 결코 아니다.

병사 월급 인상은 국방 개혁의 한 갈래다. 당선인이 병사들이 인간다운 처우를 받게 하는 데 굳은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장차 우리 군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한 청사진도 함께 그려야 한다. 우리 군의 병역제도 개편 문제와 병력 구조, 적정 병력 규모, 미래 병영의 모습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병사 월급 인상이 만들어 낼 여러 가지 변화는 오롯이 사회적 갈등의 장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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