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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속 세상을 읽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기자말]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장애인차별철폐의날 인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장애인 관련법 등의 제개정 촉구 투쟁결의대회를 마치고 행진하고 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장애인차별철폐의날 인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장애인 관련법 등의 제개정 촉구 투쟁결의대회를 마치고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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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학습 목표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을 알아봅시다'였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우리는 이미 다 배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뭘 했는데 벌써 배웠다는 건지 의아한 표정이다. 교과서를 미리 훑은 눈치 빠른 정현(가명)이가 적막을 깬다.

"아~ 다수결의 원칙! 이거 뭐 맨날 하는 거잖아!"

반장 뽑을 때도 하고 전교회장 뽑을 때도 하는 거라면서 내가 뭘 설명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말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알고 있는 내용에 두 줄만 덧붙이겠다며 칠판에 적는다.

1. 다수의 의견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2. 인권 문제는 다수결의 예외다.

100명이 편하고 1명이 불편한 상황 속에서 다수의 편의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더니,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이다. 그냥 그 한 사람만 참으면 안돼요? 아니 1명만 손해인 거면 이득 아닌가? 100명이랑 1명인데? 우수수 물음표가 쏟아진다.

나는 예시로 장애인 이동권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뉴스에 나오는 장애인 이동권 이야기도 그렇다고. "누구나 원하는 곳을 못 간다면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 물었더니 지난주 코로나에 걸려 내내 학교를 못 나온 민재(가명)가 말했다.

"난 일주일 집에 있는 것도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누구나 지루하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원하는 곳을 못 가면 답답하다. 나는 민재에게 격리가 끝난 날 뭘 했는지 묻는다. 가족들이랑 다 같이 장 보러 갔다는 민재. 가족이 모두 확진되고 격리가 끝나던 날 민재는 없는 일정을 만들어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빵집에 들렀다. 집에만 있는 것, 나오지 못하는 것, 횡단보도 건너로 갓 나온 빵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봄나들이가 아쉬운 것. 민재가 7일간 아쉬웠던 것들을 7년간, 17년간, 그 이상을 아쉬워 한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4월 국회 국토교통위 진성준 의원이 서울시-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저상 버스 설치 비율은 2021년 3월 기준으로 59.8%였다. 지하철의 경우, 엘리베이터 등 승강 편의시설을 한 곳은 지난 3월 기준으로 93.6%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장애인 콜택시의 평균 대기 시간은 32분이다.

휠체어를 타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버스 2대 중 1대를 눈앞에서 보내야 하고, 내릴 수 없는 지하철 역이 존재하며, 영화 시작 시간을 맞추려면 1시간 먼저 나가야 한다. 대기시간을 생각하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24시간이 아니라 20시간, 16시간 같은 하루를 보낸다고 할 수 있다. 누구의 시간은 금이고 누구의 시간은 돌멩이인가.

더 좋은 세상은 서로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장애인철폐의날 인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 탈설지원법, 평생교육법 등의 제개정 촉구 투쟁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장애인철폐의날 인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 탈설지원법, 평생교육법 등의 제개정 촉구 투쟁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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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다리는 게 너무 싫다. 맛집이든 놀이기구든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면 안 먹고, 안 타고 말지 싶어진다. 그런데 대단한 식사도 아니고 대단한 풍경을 보려는 것도 아닌데 매번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기다림의 총량이 있다면, 나는 분모를 키우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큰 수로 나눌수록 각자가 맡아야 하는 기다림은 줄어든다. 저상버스에 휠체어가 올라서는 시간이 분명 걸릴 것이다. 이런 기다림은 분모가 커진 세상 속 우리가 함께 해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사회 구성원이니까.

나는 수업 중 떠드는 아이에게 남들에게 피해 주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공부하는 시간이니 집중하자고 이야기한다. 남에게 피해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 피해주는 건 나쁜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사는 게 아니다. 더 좋은 세상은 서로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처럼 사는 게, 버스와 지하철, 택시을 타는 게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나처럼 거리를 다닐 수 없다면 나는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로 늦어지는 출근길의 10분, 퇴근길의 20분, 봄나들이 가는 30분도 더 기다릴 수 있다.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 버스 도입은 사실 1명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몸이 작아 높은 계단을 오르기 힘든 아이들도 저상버스라면 쉽게 탈 수 있을 것이다. 또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는 다친 이들에게 지하철역 계단은 끝없는 등산로 같았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무릎 관절이 약해진 이들은 엘리베이터도 저상버스도 반가울 것이다. 이동권을 위한 정책은 내 몸의 모양과 상태를 불문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주말엔 뭐하셨나요? 벚꽃 구경 나갔어요. 요즘 꽃이 예쁘게 폈더라구요. 그쵸. 인생사진 찍으셨어요?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누구나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의도로 벚꽃을 구경 갈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 버스나 타고 가 지하철을 타고 눈에 보이는 가까운 출구로 나간다. 벚꽃 길을 천천히 둘러보고 풍경이 좋다는 계단뿐인 2층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실 것이다. 나의 안락은 너무 가깝다. 벚꽃 길 가는 방법을,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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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의 핵심은 소수의 의견 존중이라고 생각하는 초등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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