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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와서 살면서, 3년 전부터 마늘을 조금씩 심어서 키우고 있다. 엄청난 일일 거라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 사실 별로 손이 안 가는 것이 마늘 농사다. 물론, 판매할 실한 마늘을 키워야 한다면 또 다른 얘기일 것이다. 집에서 먹을 정도의 양이면 이렇게 마당 한 귀퉁이에서 키우면 좋다.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풍미 좋은 무농약 마늘이 탄생한다.

문제는 내가 마당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발생했다. 심어야 할 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보니 마늘을 심을 곳이 마땅치 않아진 것이다. 마늘은 가을부터 시작해서 여름 직전까지 밭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어야 한다. 봄 농사를 할 만한 텃밭에 마늘을 심어버리면 다른 농사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꽃밭의 장미 옆에 심어봤다. 해충들이 마늘 냄새를 싫어해서 진딧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주장도 있었기에 더욱더 얼씨구나 하고 심었다. 그러나 장미의 진딧물은 마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창궐하였다. 그리고 장미꽃 사이사이에 심어놓은 마늘은 그리 예뻐 보이지 않았다. 
 
장미 사진을 찍을 때 마늘은 되도록 흐리게 처리를 해서 감췄다
 장미 사진을 찍을 때 마늘은 되도록 흐리게 처리를 해서 감췄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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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번엔 어디에 심을까 고민스러웠다. 사실 이 고민은 이미 작년에 한 것이다. 마늘은 가을에 심어야 한다. 겨울을 나야 쪽이 갈라지면서 제대로 마늘 모양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부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고, 결국은 뒷마당 바깥쪽에까지 마수를 펼치게 되었다.

산을 일궈 마늘을 심다

우리 집 뒷마당 경계선은 산으로 연결되는데, 이 산은 입구가 없어서 행인이 없다. 아무도 오지 않는 산인 것이다. 방문객이라고는 매일 산책처럼 지나다니는 곰과 들짐승들뿐이다. 하긴, 뭘 심기에는 땅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돌밭이다.

욕심이 들어서 파 보았지만, 파도 파도 돌만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돌 밑은 거의 비어있는 듯했다. 물론 사이에 미세하게 흙이 섞여 있긴 하지만, 그 흙들은 야생 블랙베리가 이미 장악하고 있어서, 그 질긴 뿌리를 끊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늘 심을 땅은 마땅치 않고, 양지바른 뒷산 자락이 계속 눈에 밟히니 결국 나는 돌밭 매기를 시도하였다. 제법 큰 돌도 섞여 있었고, 돌끼리 서로 엉켜 있어서 거둬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쪼그리고 앉아서 몇 날을 고생해서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거름흙을 날라다 채웠다. 흙이 제법 많이 들어갔다. 버켓으로 여러 번을 날라서 채우고 나니 그럴싸해 보였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마늘을 가지런히 심었다. 그게 작년 10월 말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확인 삼아 올라가 봤더니 들짐승들이 와서 파헤친 흔적이 있었다! 이상하다. 누가 마늘을 먹겠는가! 사슴도, 다람쥐도, 곰도 먹지 않을 것이다. 설마 캐나다 곰이 웅녀가 되겠다고 마늘을 훔쳐다가 동굴에서 먹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자세히 보니 먹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이 뭔가 묻었던 것 같으니 궁금해서 파본 것 같았다. 파놓은 마늘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돌밭을 일궈 마늘을 심었으나 동물들이 파냈다
 돌밭을 일궈 마늘을 심었으나 동물들이 파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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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그냥 도로 적당히 아무 데나 묻어놨다. 또 며칠 후에 보면 다시 두세 개가 뒹굴고... 그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이 되었다. 나중에 낙엽으로 덮어 놓고는 겨울이 되었다. 

지난 겨울은 많이 춥고 눈도 많이 왔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2월쯤 되어 올라가 보니 또 한 번 파헤친 흔적이 보였다. 나는 굴하지 않고 또 묻어놨다. 와중에, 뒹굴고 있는 마늘에 조그마한 싹이 보여서 희망을 가졌다.
 
겨울을 나고 싹을 내밀어주는 마늘
 겨울을 나고 싹을 내밀어주는 마늘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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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마늘 싹 올라온 것 봤느냐고. 정말 마늘 싹들이 귀엽게 조금씩 올라와 있었다. 파헤쳐진 마늘은 대충 아무 데나 밀어 넣었더니, 두 개가 바짝 붙어서 나온 것도 있고, 전혀 가지런하지 않았지만 무척 예뻤다.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마늘은 쑥쑥 자랐다. 여전히 추운 밴쿠버 마당에는 4월에도 눈발이 날리고 아침이면 서리가 내린다. 하지만 마늘은 노래하듯 즐겁게 자라 오르고 있다.
 
산기슭 입구에서 자라고 있는 마늘
 산기슭 입구에서 자라고 있는 마늘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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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산자락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마늘이 이제는 제법 굵고 튼실하다. 마늘밭에서 집 쪽을 내려다보니 여기만 봄이 무성한 것처럼 보인다. 
 
산기슭에서 자라고 있는 마늘
 산기슭에서 자라고 있는 마늘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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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늘이 정말 얼마나 잘 자랄지는 모른다. 비록 돌을 다 파내고 거름흙을 채웠지만, 뽑아버린 야생 블랙베리 뿌리는 옆에서 다시 진입하여 밭으로 들어갈 것이 뻔하다. 야생의 식물들은 생명력이 정말 강하니까. 하지만 우리 마늘들도 겉보기엔 그 어느 해보다도 튼실해 보인다. 

해도 잘 들고, 이젠 동물의 간섭도 없다. 들짐승들도 포기한 듯하다. 도시의 시멘트 아파트 속에서 살던 내가 호미를 들고 돌밭을 캘 줄 누가 알았던가! 하지만 이젠 쭈그리고 앉아 능숙하게 돌을 고르고, 흙을 다듬고, 식물들을 건사하니 인생은 하루 앞을 모른다는 것이 정말 맞는구나 싶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마늘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마늘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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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친구에게 이 사진을 보내니 "돌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노랫가락이 화답으로 왔다. 노래처럼 설움이 들어 밭을 매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도 또 흙을 일굴 것이다. 돌밭이든, 콩밭이든 호박밭이든, 땀 흘려 열심히 한국의 것들을 키워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알맹이에서 이렇듯 생명이 솟아오르는 것이, 초보 농부인 내게는 몇 년이 되어도 신비롭다. 그리고, 이런 생명체를 통해 고향과 연결될 수 있으니 감사하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비슷한 글이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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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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