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결코 입증될 수 없고 단지 제시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행위도 결코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빌헬름 딜타이의 이 말은 얼추 춤에도 해당한다. 관객에게는 춤 자체가 제시되며 그것은 춤으로부터(from) 설명되지 않고 대신 관객에게(to) 이해하기가 던져질 뿐이다. 이해(理解)는 성서의 씨앗 비유처럼 좋은 땅에 떨어져 발아하여 성장하지만, 더러 길가에 떨어져 새에 먹히거나 발아엔 성공하나 흙이 깊지 않아 말라버린다. 무엇보다 춤은 발아와 무관하게 그저 씨앗을 뿌리는 행위에 국한하여야 한다. 무책임한 뿌리기가 되어선 안 된다는 얘기는 사족에 가깝다.
   
4월 1~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 <몸쓰다>(안무 안애순)가 분류하면 이런 연극의 전형적 사례이다. 공연 제목이 '몸쓰다'이다. 무용이 몸쓰는 예술이니, 제목으론 사전정보를 매우 적게 준 셈이다. '쓰다'에서, 주최측의 요청 대로 "쓰고(writing), 쓰며(using), 닳도록 써버려(exhausting), 소모되어 버린(consuming)" 모종의 연상이나 전언을 상상할 수는 있겠다만 중의로 넘어가지 않고 단의에 머물면 그것은 그냥 '무용'이 된다. 서울 도심 어딘가에 '더 레스토랑'이란 식당이 있듯이.

다만 중의로 문턱을 넘어서려면 단의가 확정 또는 바로 서야 한다. 단의 없는 중의는, 성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두 포스트모던 어쩌고저쩌고하며 무의미를 의미로 적당히 포장하는 알맹이 없는 기교에 불과하다.
 
설명 대신 이해?
 
<몸쓰다>는 어떨까. 한국 무용계의 대표적 안무가의 한 사람인 안애순은 "'몸'이라는 것이, 시대적으로 또 환경적으로 외부의 상황에 학습되고 순응하는 몸인가, '행동하는 몸'은 지금의 물리적인 시공간을 자유로운 저항의 몸의 시공간으로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작품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몸'이 각자의 경험, 역사, 시간을 기록하고, 이를 사용하여 새로운 상상을 펼쳐나간다는 의미와 닿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몸쓰다>는 "자유로운 저항의 몸의 시공간"의 공연으로 펼쳐져야 한다.
   
미디어가 '행동하는 몸'이다. '몸쓰다'는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도래한 비대면이란 새로운 세상을 통과하는 우리의 몸을 그린다. 11명의 무용수가 각자의 방식으로 무대를 점유하며 각자의 행동을 내뿜는다. 그러다가 몸과 행동은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조우 속에서 충돌하기도 한다. 각자가 표현하는 인물상과 감정은 전체 공연을 통해서는 세세하게 파악되지 않고 많은 결이 포함된 하나의 현상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이 또 전체가, 각자이자 함께하는 무대를 보여주려고 애썼을 텐데, 많은 토론과 협업 연습을 거쳤을 텐데, 관객은 부분이 스며든 전체만을 보게 된다. 당연히, 정교한 부분 없이 하나로서 완성된 무대를, 그것이 비록 스치는 인상이라 할지라도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사람에 따라 망막에 특별히 남은 무용수가 있기는 할 것이다. 나에겐 세 명 정도가 기억에 남았다. 시작과 함께 앞뒤로 트인 큰 무대에 걸어들어온 남자 무용수 조형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출연 무용수 명단의 사진엔 안경을 쓰지 않았다. 공연 중 안경을 쓴 두 명의 무용수 중 하나로, 특별히 그의 안경이 캐릭터와 관련한 오브제로 활용돼 기억에 남았다.

그의 동선은 내가 느끼기에 '10 대 1'로, 고립·고독과 함께 선지와 초월의 상을 행동한다. 표시 나는 방식으로 안경을 걸치고 활용한, 즉 안경을 쓴 그는 피날레 부분에서 상승하는 무대에서 독무를 춘다.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인상이 전체 공연에서 어떻게 녹아들었을지, 관객은 그의 존재를 어떤 '이해'로 받아들였을지 궁금했다.
     
공연 중에 울려퍼진 4차원 음성
 
대다수 관객이 기억할 무용수는 박유라가 아닐까. 공연 내내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여주었을뿐더러 막판의 기이한 비명 또는 처절한 울음, 하여간 객석을 관통하는 어떤 소리로 뚜렷한 기억을 주조했다. 음악이 아닌 유일한 음성. "4차원 무용수"(안애순 설명)라는 박유라가 추상 기조인 현대 무용에 이번 공연이 의도한 구상 중 하나를 감각적으로 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구상은 또 다른 추상으로 되먹임하며 '이해'의 숙제를 남겼다.

무용수는 춤추고, 필요하면 울음 울겠지만, 왜 그렇게 추었는지 왜 그렇게 울었는지를 묻는다면 그에게서 답을 얻어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설령 얻는다고 하여도 정답을 얻어내지는 못한다. 설명을 획득하려고 하지 말고 이해를 수용하는 것이 무용이란 예술의 가능성이자 한계이다.
   
음성의 가격(加擊) 잠시 뒤의 피날레. 내려온 스크린 뒤에서 실루엣으로 춤을 추는 다른 무용수들과 달리, 스크린 가운데 아래에 사람 한 사람 정도의 공연이 가능한 정도로 뚫린 사각의 구멍에서 유일하게 비(非)실루엣으로 춤춘 무용수는 정재우였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 대화에서 정재우는 "감정을 배제한 몸쓰임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정재우가 춤춘 것은 사실 자신의 춤이 아니라, 스크린 너머 다른 무용수들의 춤이다. 그의 구상이 현존하기에 다른 이들의 추상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독무이지만 군무이고, 군무이자 독무이다. 고립이지만 연대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
   
전체적으로 무대사용이 조명과 시너지를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뒤쪽까지 훤하게 보여준 깊은 공간으로 시작해서 끊임없는 분할과 이동, 평면의 계층화, 수직화 등은 시선뿐 아니라 '이해' 욕구를 사로잡았는데, 공연이 끝나고 무용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순간 그런 이해 욕구가 그다지 요긴하지 않았다는 또 다른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구상'을 양념처럼 넣은 사운드, 맥락에 따라 유연한 적응을 보여준 조명 등 전체적으로 볼거리가 많았지만 아무래도 춤 공연이다 보니 무대 사용에 가장 주목하게 됐다. '몸쓰다'가 아니라 '무대쓰다'의 혐의가 있었지만, 마샬 맥루한이 지적한 대로 미디어는 인간 몸의 확장일 수밖에 없어서 결국 <몸쓰다>는 '몸쓰다'가 된 듯하다. 혹은 다른 무엇을 썼을지도. 예컨대 '○쓰다'?

글 안치용 춤평론가, 사진 국립현대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