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이나 입식격투기에서는 상대가 쓰러지면 더 이상 공격을 하면 안 되지만 종합격투기에서는 심판이 말릴 때까지 쓰러진 상대에게도 공격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미 스탠딩 타격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대에게 '확인사살'에 가까운 추가타격이 들어가면서 보기 아찔한 잔인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심판이 말리기 전까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수의 도리이기 때문에 딱히 때린 선수를 탓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지난 2018년까지 UFC에서 활약했던 '슈퍼사모안' 마크 헌트는 조금 달랐다. 2001년 K-1 월드그랑프리 우승자 출신의 킥복서 헌트는 UFC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지키며 철저히 입식타격 위주로 경기를 풀어 나갔다. 특히 무시무시한 펀치로 상대를 쓰러트린 후 상대가 전의를 잃었다고 판단하면 심판이 말리기 전에 쿨하게 돌아서는 경기스타일로 유명했다. 헌트 외에도 '동업자 정신'을 발휘하는 파이터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실 파이터들은 당장 링이나 케이지에서 서로 원수처럼 싸워도 돌아서면 모두 각자의 가족과 삶이 있는 '생활인'이다. 따라서 승리를 확신한 후엔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입힐 수도 있는 추가타격을 자제하는 것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야만인들의 싸움' 취급을 받았던 종합격투기가 세계적인 인기스포츠로 사랑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에 등장하는 8가지 규칙들과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파이트 클럽>은 슈퍼스타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음에도 기대만큼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진 못했다.

<파이트 클럽>은 슈퍼스타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음에도 기대만큼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진 못했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 대표하는 범죄 스릴러의 대가

20대 시절부터 CF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뛰어난 감각을 뽐내던 데이빗 핀처 감독은 1992년 만28세의 젊은 나이로 < 에일리언3 >을 연출했다. 사실 <에일리언>의 전작들은 리들리 스콧과 제임스 카메론 같은 거장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핀처 감독은 시작부터 많은 압박에 시달렸고 실제로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핀처 감독은 1995년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한 신작 <세븐>을 선보이며 자신에 대한 평가를 바꿨다.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 기네스 펠트로 등이 출연한 범죄스릴러 <세븐>은 세계적으로 3억27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세븐>은 MTV 영화제에서 최고 영화상을 수상했고 개봉 20년이 지난 후까지도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될 정도로 범죄 스릴러의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1997년 <더 게임>을 선보인 핀처 감독은 새천년을 두 달 앞두고 또 하나의 신작 <파이트 클럽>을 공개했다.

할리우드 최고의 미남스타로 자리잡은 브래드 피트와 <프라이멀 피어>를 통해 괴물신인으로 떠오른 에드워드 노튼이 출연한 <파이트 클럽>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하지만 63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파이트 클럽>은 세계적으로 1억 달러 흥행을 기록하며 만족스러운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사장될 뻔 했던 <파이트 클럽>은 비디오와 DVD 등 2차시장을 통해 반전을 만들었고 핀처 감독의 숨은 명작으로 재조명됐다.

<파이트 클럽>의 흥행 실패에도 핀처 감독의 평판은 점점 올라갔다. 2002년 <패닉룸>, 2007년 <조디악>을 연출한 핀처 감독은 2008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통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2010년 <소셜 네트워크>로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작품상을 차지한 핀처 감독은 2014년 <나를 찾아줘>로 3억6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흥행과 비평을 모두 잡은 스타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 드라마로 진출한 핀처 감독은 정치 스릴러의 명작으로 꼽히는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의 제작과 연출에 참여해 자신의 커리어에 에미상 감독상까지 추가했다(지금은 연출에서 물러나 책임프로듀서로만 참여하고 있다). 2017년과 2019년 넷플릭스 드라마 <마인드헌터>와 2020년 영화 <맹크>를 연출한 핀처 감독은 현재 넷플릭스 영화 <더 킬러>를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서로를 존중하며 주먹을 교환하는 곳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연기신동(?) 에드워드 노튼은 <파이트클럽>에서도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연기신동(?) 에드워드 노튼은 <파이트클럽>에서도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파이트 클럽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는다, 상대가 "그만"이라고 외치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땅을 치면 싸움을 멈춘다, 싸움은 1대 1로만 한다 등 8가지 규칙을 지키면 '파이트 클럽'은 답답한 세상에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최고의 해방구다.

언제나 무기력한 삶을 살던 보험회사의 사고 조사원인 주인공(에드워드 노튼 분)도 우연히 알게 된 친구 타일러(브래드 피트 분)와 파이트 클럽 덕분에 활기를 되찾았다.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파이트 클럽>은 '이중인격'에 관한 영화다. 에드워드 노튼은 데뷔작 <프라이멀 피어>에 이어 또 한 번 이중인격을 가진 인물을 연기했는데 이번엔 1인2역이 아닌 2명의 배우가 하나의 자아를 연기했다. 매사에 소심하고 마음에 드는 여성 밀라(헬레나 본햄 카터 분)에게도 다가가지 못하는 주인공이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자아 타이러를 창조해내고 파이트 클럽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창조해낸 타일러는 그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 버렸고 파이트클럽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결성한다. 급기야 타일러는 미국의 주요도시에 폭탄을 설치해 금융망을 모두 제거해 문명을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겠다는 이른바 '초토화 작전'을 계획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아이자 자신이 가장 동경했던 친구 타일러가 세운 계획을 막기 위해 나선다.

CF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데이빗 핀처는 뛰어나고 스타일리시한 영상을 만들어 내던 감독답게 <파이트 클럽>에서도 금융 관련 건물들이 폭파되는 인상적인 라스트신을 연출했다. 내면 속의 타일러를 죽인 주인공은 밀라(헬레나 본햄 카터 분)에게 "우린 참 이상한 때 만났어"라고 속삭이며 멋진 야경을 보듯 건물들이 무너져 가는 장면을 바라본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엔딩은 원작 소설을 쓴 척 필라닉도 극찬한 명장면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소문난 완벽주의자로 꼽히는 핀처 감독은 멋진 액션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촬영을 앞두고 두 주연배우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에게 엄청난 강도의 액션 훈련을 받게 했다. 물론 성룡이나 이연걸 같은 홍콩의 액션스타들처럼 고난도의 액션을 구사한 것은 아니지만 두 배우(특히 브래드 피트)는 <파이트 클럽>에서 현란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며 많은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배우
 
 '변신의 대가' 헬레나 본햄 카터는 <파이트 클럽>에서 묘령의 여인 밀라 싱어 역으로 묘한 매력을 선보인다.

'변신의 대가' 헬레나 본햄 카터는 <파이트 클럽>에서 묘령의 여인 밀라 싱어 역으로 묘한 매력을 선보인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미녀배우 샤를리즈 테론은 2003년 영화 <몬스터>를 준비하면서 일부러 살을 찌우고 피부를 망가트리는 연기 투혼을 발휘했다. 테론은 2004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고생을 보상받았고 그녀의 변신은 할리우드 여성배우의 용기 있는 변신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여성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에게는 그런 변신이나 망가짐이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85년 <전망 좋은 방>으로 데뷔한 본햄 카터는 <레이디 제인>, <햄릿>, <십이야> 등 주로 시대극에서 강세를 보여 온 배우였다. 본햄 카터는 <파이트 클럽>에서 커피를 공짜로 마시기 위해 불치병 환자 모임을 찾아 다니는 '묘령의 여인' 밀라 싱어를 연기했다. 물론 불치병 환자들의 모임에 나가는 멀쩡한 여자 역할도 충분히 이상했지만 앞으로 맡을 그녀의 연기 경력에서 <파이트 클럽>의 밀라는 사실 평범한 쪽에 속한다.

본햄 카터는 2001년 팀 버튼이라는 괴짜 감독을 만나면서 무난하던 배우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혹성탈출>의 원숭이 아리, <빅피쉬>의 마녀 지니, <해리포터>의 벨라트릭스 레스트레인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붉은 여왕, <다크 섀도우>의 줄리아 호프먼 박사 등 본햄 카터는 어느 순간부터 독특한 역할 전문 배우가 됐다. 2000년대 들어 그녀가 맡은 멀쩡한 역할은 <낯선 여인과의 하루>와 <킹스 스피치> 정도에 불과했다.

<파이트 클럽>에는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 헬레나 본햄 카터 외에도 관객들에게 익숙한 배우가 한 명 더 등장한다. 바로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리그>에서 조커를 연기했던 자레드 레토가 그 주인공이다. 레토는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에게 두들겨 맞는 엔젤 페이스를 연기했다. 비중은 크지 않지만 꾸준히 영화 내내 얼굴을 비췄고 2002년에는 핀처 감독의 신작 <패닉룸>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파이트 클럽 데이빗 핀처 감독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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