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5 06:08최종 업데이트 22.04.05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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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 <오마이뉴스>에 "지하철 EV 94%, 외국 장애인이 보면 '원더풀!'"(http://omn.kr/1y4i6)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외국 장애인들은 한국의 지하철 시설을 보고 "원더풀"이라고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입니다. 그의 발언은 "한국이 해외에 비해선 오히려 지하철 내 장애인 이동권이 잘 보장되어 있다는 취지"랍니다.

처음엔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최근의 전장연 시위에 대해 싱가포르 친구들과 이야기했을 때는 한국이 아직 그 정도인 줄 몰랐다는 안쓰러운 반응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싱가포르에서 왜 한국의 지하철을 두고 안쓰러워하는지는 싱가포르 지하철을 한 번만 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독자 여러분을 싱가포르 지하철에 한 번 태워 드리겠습니다.
 

싱가포르 지하철에 설치된 티켓판매기. 반드시 하나는 휠체어에 앉아서 이용할 수 있도록 높이가 낮은 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바로 옆으로 장애인 화장실 표시도 보입니다. ⓒ 이봉렬

 
친구들 "한국이 아직 그 정도인 줄 몰랐다"
  
우선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반드시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경사로 끝에는 개찰구와 바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가 있기 마련입니다. 보통은 교통카드나 휴대폰으로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지만 혹시 교통카드를 따로 구입하거나 충전을 해야 한다면 자동 충전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동 충전기 중에는 장애인들이 휠체어에 앉아서 작동할 수 있도록 높이를 낮춘 게 반드시 하나는 있습니다.

몸으로 밀지 않아도 되는 자동 개찰구 중 하나는 반드시 휠체어용으로 넓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교통카드를 대면 문이 열리는데 휠체어가 완전히 통과하는 걸 센서로 확인한 후 닫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닫힘 시간이 10초로 설정되어 있는 한국의 개찰구에서 종종 휠체어가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문이 닫혀서 사고가 나는 걸 감안한다면 센서 형태인 싱가포르 방식이 훨씬 더 안전합니다.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넓은 개찰구와 그 옆에 수동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 형광색 조끼를 입은 안내요원이 있고 그 뒤로 엘리베이터가 보입니다. 장애인이 불편을 느낄 일이 없습니다. ⓒ 이봉렬

 
휠체어용 자동 개찰구 옆에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수동문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보안 직원이 늘 상주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휠체어용 개찰구 가까운 곳에 지하철 승강장과 바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싱가포르 여섯 개 노선 모든 역사에 100%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면 대부분의 경우 지하철 객차 바로 앞입니다. 아무리 멀어도 5미터 이상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지하철 객차 중 두 칸은 휠체어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엘리베이터는 그 휠체어용 객차와 가까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승강장의 객차까지 거리는 5미터가 안됩니다. 설계 자체가 휠체어가 최소한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 이봉렬

 
역사를 설계할 때부터 엘리베이터 위치와 휠체어용 객차의 위치를 우선순위로 삼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비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객차 안 휠체어 공간이 워낙 넓어서 동시에 여러 대의 휠체어가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휠체어용 객차가 아니더라도 휠체어를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객차 안 휠체어 전용공간에 장애인 승객 한 명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해 지하철을 타는 것이 시위가 아니라 일상입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의 모든 역사에는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화장실 역시 장애인 전용 칸이 별도로 있으며 장애인 전용 칸이 아니라고 해도 장애인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원더풀"이라는 감탄은 이럴 때  

지하철에서 내린 후 버스로 갈아타는 경우에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싱가포르의 모든 시내버스는 저상버스인 데다 타고 내리는 문 바로 앞 공간이 휠체어 전용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휠체어를 탄 채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버스 승강장에 휠체어를 탄 승객이 있으면 버스 기사가 제일 먼저 경사판을 내려 장애인을 먼저 태운 후 다른 승객이 탈 수 있도록 합니다. 지하철에 비해 움직임이 심한 버스의 특성으로 인해 버스 안 휠체어 공간에는 휠체어를 고정할 수 있는 시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차할 때는 장애인 승객용 버튼이 따로 있어서 그걸 누르면 기사가 인지를 하고 제일 먼저 하차할 수 있도록 경사판을 내려 줍니다.
  

휠체어를 탄 채로 버스에 오르는 승객.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이고 휠체어의 승하차가 우선이라 운전기사가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 이봉렬

 
물론 싱가포르의 모든 건물과 아파트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고, 인도와 다른 길이 연결되는 지점에도 역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집에서 나와 대중교통을 타고 볼일을 보고 다시 집에 돌아가는 동안 휠체어가 가지 못하는 길을 만날 일이 없습니다. 모든 설계가 장애인 우선으로 되어 있기에 전동휠체어를 타면 오히려 더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원더풀"이라는 감탄은 이런 모습을 보고 해야 하는 거지,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위해 몇 년째 시위하고 투쟁해야 하는 나라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도 싱가포르만큼은 해놓고 "원더풀"이라 말해야 면구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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