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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 시절엔 모든 유행을 따르고 싶었다. 친구와 같은 걸 함께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같은 학용품을 사용하고 매점에서 먹는 간식도 정해져 있었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나에게 필요한 것, 소중한 것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유행은 그저 지나가는 것으로 여기고 살았다. 특히 이번 유행에는 절대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주 후반부터 강물(큰 아이)이가 몸살 증상이 있었다. 증세는 매우 가벼웠고 안 하던 운동을 시작했던 때였기에 나는 100% 몸살이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목이 아프냐고 수시로 물었고 아이는 아니라고 답했다.

3월부터 학생들은 수요일과 일요일에 의무적으로 자가 진단키트로 검사해야 한다. 강물이는 일요일을 포함해 증상이 있던 날부터 하루에 한 번씩 검사했다. 계속 음성이 나와서 나름 안심하고 있었지만 마이산(작은 아이)과 나도 증상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증상이 매우 가벼웠는데 나는 몸살이 심했다. 자가진단키트에서는 계속 음성이 나왔기에 코로나19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겨울 아이들은 독감 예방접종을 했는데 나는 하지 않았기에 독감인가라는 생각만 했다. 그날은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강물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우리 반에서 확진자가 있어서 신속 항원 검사해야 해. 검사하고 갈게."

30분쯤 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나 양성이래."

벼락같은 소식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옆에 있던 마이산과 나는 바로 자기진단 키트로 검사했다. 둘 다 두 줄이 나왔다. 바로 신속 항원 검사를 받았다. 나는 아주 희미하게 두 줄, 마이산은 뚜렷하게 두 줄이 나왔다. 남편은 음성이었다. 나와 마이산은 이어서 PCR검사를 받았고 다음 날 오전에 나온 결과는 양성이었다. 남편은 이틀 후 양성 판정을 받았다.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조심했는데 
 
결국 2줄이 나왔습니다.
▲ 자가검사키트 결국 2줄이 나왔습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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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은 학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다. 수업을 휴강하면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일단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휴강 안내문을 보내고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엄마, 우리도 햇반이랑 라면 받아?"

수개월 전 이모가 자가 격리하면서 받았던 물품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니, 지금은 자가 격리자가 너무 많아서 못 받아. 대신 많이 아프면 약은 집으로 보내줘."

아이는 아쉬워한다.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중학생 아이는 얼마나 무거운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일이 일어날 걱정에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조심하고 살았다. 외식은커녕 잠깐 카페에 들어가 본적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보고 싶던 영화가 개봉해도 VOD로 제공될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면 친구들과 PC방과 만화방에 가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 소원은 언제 이룰 수 있을지 아직까지도 불투명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그래서 무섭다. 우리 집 경우를 짐작하건데, 강물이가 학교에서 바이러스에 전염된 것 같다. 집에서 식구끼리 격리하지는 않으니까 강물이에게 있던 바이러스가 집안 곳곳에 퍼지면서 나와 마이산에게 전달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미크론은 감기와 확실히 달랐다 

준비 없이 하는 자가격리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프지만 식사를 계속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 내가 먼저 아프고 내 증세가 가벼워질 즈음에 남편의 증세가 심해졌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서로가 얼마나 아픈지를 이보다 더 잘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려고 했고 상대방이 해주는 배려는 눈물 나게 고마웠다. 결혼 17년 차에 흔히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아픈 것보다 아이들의 증세는 가벼웠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기 바이러스와 달랐다.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목이 많이 아프고 기침이 심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몸살이 심하고 열과 기침은 경미했다. 경미했지만 쉬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내일쯤이면 털고 일어나겠다'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느낌이 들었다가도 다음 날 아침 다시 증세가 심해졌다. 처음 겪어보는 질병에 우리 가족은 모두가 힘겨웠다.
 
결코 받고 싶지 않았던 연락
▲ 확진 결과 문자 결코 받고 싶지 않았던 연락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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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방학이 길어지고 온라인 수업을 하며 등교하지 않던 무수한 날, 나는 아이들을 보며 몸에 사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의 나이에 해보아야 하는 경험, 읽어야 하는 책, 배워야 하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채 컴퓨터와 스마트폰 게임을 몇 시간 동안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이번 격리 기간 동안은 달랐다. 상대적으로 증세가 가벼웠던 아이들도 피로감을 쉽게 느꼈다. 그토록 좋아하던 게임도 못 할 정도로. 우리 부부는 더 했다. 생존할 만큼의 식사만 간신히 끝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만 봐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증세가 나아질 즈음 TV로 함께 영화를 보면서는 극강의 행복감을 느꼈다.

자영업자 입장에서의 코로나19는 기피대상 1호였다. '만약에 내가 걸린다면'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학생들에게 돌아갈 피해와 학부모들의 컴플레인 뿐이었다.

내 좁은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학부모들의 다정한 연락에 눈물 날만큼 고마웠다. 우리의 식사를 걱정하며 여러 먹거리를 문 앞에 전달해주고, 포켓몬 빵을 구해준 지인들 덕분에 우리는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격리 해제 된 지 4일째이지만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있다. 수시로 머리가 아프고 많이 피로하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걸리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 (brunch.co.kr/@sesilia11)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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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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