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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재 서울녹색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과 질환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이 많습니다. 제가 보는 환자들도 주로 만성질환 환자들입니다. 많은 환자들이 고령 어르신들로 이미 은퇴하신 경우가 많아,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와는 달리 저는 노동자 건강 문제를 일상적으로 접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저는 인간의 노화, 노쇠와 관련된 경험을 자주 합니다. 이 병원에서 근무한 지 5년이 넘었습니다. 수 개월에 한 번씩 약을 처방 받으러 오는 어르신들을 정기적으로, 몇 년씩 만납니다. 몇 년 동안 어르신들을 만나다 보면, 점점 근육이 줄고 체격도 작아지고 활동범위가 줄어드시는 것을 느낍니다. 때로는 이전에 잘 소통하던 환자에게 치매가 생겨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노쇠해가는 환자들의 여러 가지 만성질환에 대해 약 처방을 합니다. 하지만 약만으로 노쇠해가는 몸을 막지는 못합니다. '나이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명제는 일상에서 체험하는 진리입니다. 생로병사의 과정 중에서 '로병사'를 지켜보면 '나도 수십년 후면 노쇠해져 죽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해답 없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이런 나이 듦, 노화와 관련된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혈압이 상승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혈관벽의 탄성이 줄어들고 딱딱해지면서 혈압이 증가합니다. 말랑하던 고무 호스가 딱딱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혈압이 상승하는 데에는 아주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연령이 증가하는 것도 중요한 혈압 상승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50대 이상 노동자들에게는 고혈압이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고용과 직결되는 노동자 건강
 
건설현장의 뇌심혈관질환 예방법은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인데, 회사에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 혈압을 재, 높은 사람은 일을 못 하게 하거나 의사 소견서를 받아오게 한다.
 건설현장의 뇌심혈관질환 예방법은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인데, 회사에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 혈압을 재, 높은 사람은 일을 못 하게 하거나 의사 소견서를 받아오게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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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주로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진료실에 들어와서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왜 필요한지 물으면 일하는 데서 작업하기 전에 혈압을 쟀는데 혈압이 높아 의사소견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 혈압이 아주 높지 않다면 작업하는 데 큰 이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소견서를 작성해 드립니다.

건설현장에서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면 과로사, 산업재해가 될 수 있지요. 많은 건설현장에서 노동시간은 보통 길지 않은 편이지만, 신체 부담이 높은 작업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업무관련성 뇌심혈관질환의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됩니다. 건설현장의 뇌심혈관질환 예방법은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일텐데, 회사 입장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요.

현장에서 뇌심혈관질환 발생을 막겠다며, 심혈관질환의 고위험자들을 미리 걸러내자는 회사의 욕심이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심혈관질환의 요인 점검 중 혈압측정이 제일 간편하니 작업하기 전에 혈압을 재, 높은 사람은 일을 못 하게 하거나 의사 소견서를 받아오게 합니다. 하지만 급격한 뇌심혈관 질환 발생에서 고혈압이 주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혈압만 조절한다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알려진 것만 해도 고지혈증, 당뇨, 흡연 등 다른 요인들도 있습니다.

혈압 상승의 원인, 야간 노동

고혈압이 문제 되는 노동자들이 건설노동자뿐이 아닙니다.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들 중 야근하는 분들을 보면 난감합니다. 야근한 다음 날 오전에 진료실에 와서 혈압을 쟀는데 높다는 것이지요. 제가 만났던 이런 야근 고혈압 환자들의 직업은 택배, 대리운전, 동대문에서 옷 도매상을 하던 분, 호프집 사장님, 사회복무 요원 등 다양했습니다.

밤샘 근무는 혈압 상승의 원인입니다. 보통 잠을 잘 때는 혈압이 떨어집니다. 야간 혈압이 주간 혈압보다 10~20% 정도 떨어지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야간에는 혈압도 떨어지고 맥박도 떨어집니다. 심혈관계도 밤에 휴식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밤새 일하고 돌아와 낮에 자면 이 공식이 깨집니다.

야간에 일하면 교감신경계가 흥분해 혈압이 올라갑니다. 작업을 마친 후 휴식을 취하더라도 혈압이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야근을 하다 보면 야식을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식을 먹으면 체중이 늘기 쉽고 체중이 늘면 혈압도 덩달아 오르게 됩니다.

근본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밤에 일하지 말고 주간업무를 권유해야겠지만 이 분들이 남들 다 자는 밤에 일을 해야 하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혈압조절을 위해서는 야근 시 쉽지 않겠지만 낮에 잠을 충분히 자고, 혈압약도 저녁에 복용하는 걸 권유합니다. 그리고 밤에 또는 일을 마치고 과식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도 혈압 조절이 되지 않으면 혈압약을 증량합니다.

여러 연구에서 야간노동이 심뇌혈관 질환, 정신질환 등과 관련돼 있고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과 관련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야간 노동이 가져오는 건강 위험을 고려할 때 우리도 꼭 필요한 분야 이외에 불필요한 교대근무와 야간근무는 될 수 있는 한 줄여야 하겠습니다. 왜 새벽에 택배를 받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영우 님은 내과 전문의로 한노보연 선전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 3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고혈압, #야간_노동, #고용_불안, #건설_노동자, #노동_안전_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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