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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1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법 앞에 남녀가 모두 평등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노동 현장에서 여성은 설마, 아직도 10년째 대리이다.

유리천장(능력을 갖춘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지칭) 실태조사의 일환으로 시작된 '10년째 대리라니?' 프로젝트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아래 사무금융노조) 산하 21개 사업장 사무직(또는 일반직) 여성 조합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행되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배나은 사무금융노조 부장과 함께 기획의도, 고용과 승진에서의 성차별 현실을 알아보았다.
 
 “10년째 대리라니?” 프로젝트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산하 21개 사업장 사무직(또는 일반직) 여성 조합원과의 인터뷰로 기획되었다.
  “10년째 대리라니?” 프로젝트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산하 21개 사업장 사무직(또는 일반직) 여성 조합원과의 인터뷰로 기획되었다.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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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던 이야기

- 사업 이름을 "10년째 대리라니?"라고 정한 이유가 있나요?
"사무금융노조 여성위원회는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유리천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어요. 매번 '여성 임원이 적다'라는 똑같은 결과를 발표만 하고 후속 대책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제도적 보완점을 논의하는 여성위원회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 한 여성위원이 웃으며 "나도 아직 10년째 대리인데요. 아마 대리로 퇴직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대리까지 갔으면 잘 간 거다"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다들 웃으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 분위기와 그 발언이 무척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 진행하면서 어려웠거나 고민이 되었던 지점이 있었나요?
"결과가 명확하게 숫자로 나오는 유리천장 실태조사와 달리, '10년째 대리라니' 프로젝트는 숫자 이면에 복잡하게 얽힌 성차별과 학력차별, 세대 갈등, 그 외 여타 이해관계의 문제를 확인하고 기록해 보기 위한 사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앙에서 분리직군제 폐지를 아무리 강하게 주장해도, 현장 조합원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실제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으니까요. 

실제 인터뷰를 진행해 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여러 문제가 무척 복합적으로 섞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제도적 보완책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일단은 기록을 충실하게 남겨보자는데 초점을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지원 업무에 여성이 많은 이유

- 고용상 차별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분리 채용'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분리 채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증권사나 보험사 지점에서 고객 응대와 같은 대면 업무나 콜센터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90% 이상이 여성 노동자입니다. 회사의 주요 사업을 '지원'하는 업무에는 대체로 여성이 채용되거나 배치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업무에 따라 여성과 남성을 선별하여 채용하는 것을 현장에서는 분리 채용이라고 부릅니다. 

현재는 대부분의 기업이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기 때문에 특정 업무에 여성 또는 남성을 선별하여 채용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 채용 결과를 보면 지원 업무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영업 업무 등 일반직에는 남성이 많습니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분리 채용 제도를 두고 있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분리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채용 단계에서부터 여성이 조직 내에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다고 평가되는 지원 업무에 주로 채용되다 보니 배치나 승진에서도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 지원직과 일반직 사이에 근로조건 차이가 큰가요?
"차이가 있습니다. 승진 테이블은 대부분 다르고, 급여체계까지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같은 업무를 하는데 어디로 입사했는지에 따라 급여가 달라져서 불만이 나오기도 합니다."

직군 전환제도로 차별을 해소할 수 있을까

- 회사에 따라서 근로자가 추후에 직군 전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직군 전환 제도가 차별 해소에 도움이 되지는 않나요?
"노동조합의 요구로 직군 전환제도가 마련된 사업장도 있습니다. 직군 전환이 되면 지원 업무로 입사한 여성 노동자도 경력이 쌓이면 다른 주요 업무로 전환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문화나 제도가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직군 전환제도가 있는 사업장이라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습니다. 한 예로, 한 사업장에서 실험적으로 남성을 지원 업무에 배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두셨다고 해요. 재직 중 '여성이 하는 업무를 한다'는 시선을 느껴 힘드셨다고 하더라고요. 여성 노동자 역시 직군 전환 이후에도 여전히 차별을 받는다고들 해요. '출신성분'이 이후의 승진에도 암묵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죠."

- 직군 전환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분도 계신 것 같아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노동은 다 똑같이 중요하다면서, 왜 지원직 업무를 하는 사람은 승진할 수 없냐는 문제의식을 가진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건 노동조합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다 주는 업무'와 '그런 업무가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를 자본의 관점으로 '격'을 나누는 시선이 노조 내부에도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또 직군이 전환되면 지원직에서 영업직으로 직무가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요. 영업으로 전환하게 되면 실적 압박도 심해지고, 개인적인 시간을 줄여가며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여성 노동자 입장에서는 굳이 익숙하지도 않고 실적을 계속 점검받고 평가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가는 것이 달갑지는 않은 것이지요. 

꼭 영업이 아니더라도 연령이 많은 경우 새로 익혀야 할 직무에 대한 부담감으로 직군 전환을 굳이 할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건 회사의 문제이기도 하죠. 

연차가 낮은 시기에는 지원업무만 시키다가 연차가 높아지고 급여가 올라갈 시점이 되면 비용을 절감할 목적으로 '승진하려면 다른 일,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생해서 직군 전환을 한 이후에도 승진이나 배치에서의 차별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데 굳이 노력해야 하냐는 태도가 있기도 합니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영업 관행 때문에 진입장벽을 느낀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 회사가 분리 채용 제도를 방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회사가 분리 채용을 단순하게 찬성한다, 반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반대와 찬성 모두 비용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는 봅니다. 공채와 분리해서 승진이나 급여 등 차이를 두고 지원직군을 채용하면 상대적으로 전 직원을 같은 조건의 공채 일반직으로 채용해 순환보직을 하는 경우보다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잖아요. 지원직에게는 교육, 연수의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게 제공하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연차가 높아지면서 급여 수준이 올라간 여성 지원직에게는 '이제는 영업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직군전환을 유도하면 구조조정 효과를 볼 수 있기도 하고요."

뒤늦은 승진과 형식적인 여성할당제 

- 일반직 내에서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근로조건 차이가 있나요?
"같은 일반직 사이에서는 급여 테이블이 다르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승진이죠. 일반직으로 채용된 여성 노동자는 같은 동기 남성들보다 스펙이 높은 편이라고들 하는데요. 그런데도 승진은 뒤처지곤 합니다. 임신·출산·육아로 노동 현장을 이탈하는 것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고요.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승진에서 불리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10년째 대리라니"프로젝트는 다음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s://samuwomen.modoo.at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10년째 대리라니"프로젝트는 다음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s://samuwomen.modoo.at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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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는 인터뷰 중 '여성할당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에 여성 노동자 대부분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여러 가지 차별을 경험하지만, 여성할당제 도입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성할당제가 고용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현재 기업에서 여성할당제를 형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운동장이 이미 오랜 기간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여성을 관리자로 육성하기 위한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내내 손을 놓고 있다가 임원 비율만 맞추려 하니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여성이 실제 관리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하기보다 마치 상징처럼 제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다 알고 있는 현장 여성 노동자 입장에서는 여성할당제라는 제도 자체가 도움이 되는 제도로 기능한다고 느끼기 어렵겠지요. 회사가 제도만 제대로 운영한다면 여성 노동자들이 느끼는 바도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혜인 님은 공인노무사로 한노보연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 3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성별_임금_격차, #성별_격차, #여성_유리_천장, #성별_직종_분리, #여성_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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