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tvN <스물 다섯, 스물 하나>는 IMF 위기 동안 청춘을 보낸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젊은이들의 삶이 시대의 영향을 받아 휘청이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드라마 초반 주인공 희도(김태리)는 IMF로 꿈을 키워오던 펜싱부가 사라지는 아픔을 경험한다. 그때 펜싱부 코치는 이렇게 말한다.
 
니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니야. 시대지. 

하지만 얼마 후 새로운 펜싱팀에 들어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갈 자격을 얻었을 때 양찬미 코치(김혜은)는 이렇게 말한다.
 
시대가 너를 돕는다. 

희도는 이 두 말 중 어떤 말이 맞는지 갸우뚱하면서도 시대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른 주요인물인 이진(남주혁)과 유림(보나)도 시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간다. 이들을 통해 시대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개인의 마음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살펴본다.
  
 IMF의 폭풍우를 건너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tvN<스물 다섯, 스물 하나>의 포스터

IMF의 폭풍우를 건너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tvN<스물 다섯, 스물 하나>의 포스터 ⓒ tvN

 
희도_나를 멀리서 바라본다
 
다정다감했던 아버지를 일찍 여읜 희도는 엄마 재경(서재희)과 둘이 산다. 인정받는 앵커 엄마 덕에 희도는 IMF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피해갈 수 있었지만, 꿈을 빼앗길 뻔한 위기를 경험한다. 희도는 이때 처음으로 자신이 시대와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처음이었을까. 나는 시대적, 환경적 요건들이 엄마를 통해 아주 오래전부터 희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홀로 아이를 양육하면서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방송사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엄마 재경은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거기에 예외는 없어"(6회)라는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이 원칙은 희도에게도 적용된다. 때문에 재경은 희도에게 공감과 위로, 격려 대신 채찍만을 제공한다. 경쟁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녀를 둘러싼 환경들은 이런 특성을 더욱 강화했을 것이다.
 
좌절했을 때조차 위로해 주지 않는 엄마를 둔 희도는 스스로 위안하는 법을 터득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4회 희도는 이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비극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어." 이 방법은 심리학적으로 매우 타당한 방법이다. '자기 자신을 책장에 붙은 파리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라'는 한 심리학자의 말처럼 스스로를 거리 두고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수용하되 매몰되지는 않는 좋은 방법이다. 덕분에 희도는 긍정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희도 곁엔 늘 믿어주는 코치 찬미와 "네가 나를 좋게 만든다"고 말해주는 이진이 있다. 이들의 믿음은 스스로를 '가치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을 것이다. 때문에 희도는 국가대표선발전서 "나는 아직 나를 못 믿어, 그런데 나를 알아봐 준 당신을 믿어"(6회)라고 되뇌이며 실력을 마음껏 펼친다. 때로는 낯선 이들의 위로도 힘이 되어 준다. 아시안 게임 판정시비로 상처받은 희도에게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위로와(7회), 처음 만난 유림 어머니의 포옹은 큰 힘이 되어준다(9회).
 
이렇게 희도는 자신을 거리 두고 바라보며,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믿고, 주변의 따뜻함에 마음을 여는 것으로 가혹한 시대와 냉담한 엄마 사이에서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가혹한 시대 속 냉담한 엄마에게서 자란 희도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터득하고 주변 사람들의 믿음을 내면화하면서 성장해간다.

가혹한 시대 속 냉담한 엄마에게서 자란 희도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터득하고 주변 사람들의 믿음을 내면화하면서 성장해간다. ⓒ tvN

 
이진_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이진은 IMF의 직격탄을 맞은 인물이다. 풍요롭게 자란 그는 명문대 공대를 다니며 NASA 연구원을 꿈꾸던 공학도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를 맞은 후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이진은 대학을 중퇴한다. 학력 제한이 철폐된 덕에 방송사 기자가 되지만, 보수적인 방송사 사람들은 툭하면 '고졸 혹은 망한 재벌집 도련님 출신'이라며 그를 폄하한다. 그에게 시대는 "꿈뿐만 아니라 돈도 뺏을 수 있고, 가족도 뺏을 수 있고, 세 개를 한꺼번에 다 뺏을 수도 있는"(1회) 무시무시한 존재다.
 
이렇게 모든 것을 잃고, 편견과 맞서야 하는 이진은 아무리 봐도 재미를 느끼며 살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그는 9회 "너 일 재밌구나?"라는 선배의 질문에 "그래서 잘하고 싶습니다"라고 답한다. 어떻게 이진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재미를 붙이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이진은 9회 졸업한 고등학교를 촬영차 방문해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선생님께 이렇게 답한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습니다." 나는 바로 이것이 그가 삶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드라마 초반부터 그랬다. 이진은 절망 속에 지내면서도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현재를 원망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은 수용하고, 신문 배달, 도서대여점 아르바이트 등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한다. 그랬기 때문에 희도와도 연결될 수 있었고, 희도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책임감 있게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것. 아마도 이것이 '무엇이 되는지와 상관없는' 이진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오랜 꿈이 좌절됐어도, 그 자신으로 살아간다. 이진은 10회 이런 취중진담을 한다.
 
저는 진짜 잘해야 해요. 내가 못하면 학력 제한이 다시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럼 나 같은 사람은 기회조차 없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현재에 충실할 수 있었기에 이진은 시대에 휘청거리면서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유림_나만 힘든 게 아님을 기억한다
 
유림은 따뜻하고 지지적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다. IMF는 유림의 가족에게도 큰 타격을 준다. IMF는 유림의 이웃 모두의 삶을 어렵게 했고, 유림의 부모는 더 힘든 이웃을 위해 보증을 서준다. 하지만 보증을 서준 이웃이 야반도주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유림네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가난을 표 내지 않으려고 하는 부모에게 유림은 늘 미안한 마음이다. 때문에 유림은 더 잘하고 싶고 더 오래 정상에 있고 싶어 한다. 게다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대중들은 영웅을 원한다. 7~8회 일방적으로 유림만을 응원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어려운 시기 사람들이 얼마나 영웅을 갈망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우리도 IMF 시기 박세리와 박찬호 등 스타에 열광하고 힘을 얻지 않았던가.
 
힘든 가정형편과 대중의 기대는 유림에겐 커다란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희도의 선의를 받아줄 수 없었던 것도,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해야만 그나마 마음이 진정됐던 것도 유림이 얼마나 큰 부담감 속에 지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유림은 이런 사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쓴다.
 
다행히도 유림은 "힘든 때 일수록 정신 쏙 빼놔야 한다. 웃는 날 있어야 잊는 날도 빨라지거든. 잊어야 또 살아내지"(찬미, 8회)라며 몰려와주는 펜싱부원들의 응원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10회에 유림은 지웅(최현욱)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집이 어려워진 사정을 털어놓는다. 친구들은 이에 자신들의 불행을 하나 둘 꺼내 놓으며 '누구나 다 힘든 비밀이 하나씩 있음'을 알려준다.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도 안전하다는 걸,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 친구들의 지지는 유림을 한결 가볍게 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최고의 펜싱선수가 된 유림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대중들의 기대라는 부담감 속에 살아간다.

어려운 환경에서 최고의 펜싱선수가 된 유림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대중들의 기대라는 부담감 속에 살아간다. ⓒ tvN

 
이처럼 시대는 결코 개인의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시대적 요건은 가까운 주변 환경들을 변화시키고 이는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개인의 마음에 스며든다. 때로는 이런 요인들이 각자가 지닌 고유한 특성들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와 사회적 요인을 제거한 순수한 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희도가 냉담한 엄마와 살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터득하고, 경제적 어려움과 대중의 기대에 지쳐가던 유림이 지지적인 친구들 덕에 마음을 열어가듯, 개인은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변화해 간다. 때로는 이진처럼 원했던 자리가 아닌 곳에서도 삶을 대하는 고유한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내기도 한다.
 
중요한 건, 어떤 경우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덕에 희도, 이진, 유림은 시대가 내게 미친 영향을 알아차리고 이를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면 어떨까. 들어주고, 믿어주고, 연대하면서 함께 할 수 있다면 피해갈 수 없는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남주혁 김태리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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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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