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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비상계엄 즉각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1980년 5월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비상계엄 즉각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 나경택 전 전남매일신문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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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에서 여명의 횃불을 든 것은 언제나 '미네르바의 부엉이'(지식인그룹)가 아니라 청년학생들이었다. 1950년 6.25 한국전쟁과 함께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부끄럽고 희생이 컸던 1980년의 학살극, 그 동토에서 다시 저항의 싹을 틔운 것 역시 학생들이다. 

1980년 12월 11일 12시 경, 서울대생들이 학생식당과 도서관 앞에서 '반파쇼학우 투쟁선언문'을 살포하면서 교내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시위를 주도한 것은 이른바 '무림그룹'이었는데, 이들은 1980년 5월 투쟁의 좌절이 통일적 지도부와 굳건한 대중 기반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고 판단하고, 학생운동이 전체 운동의 전위는 아니지만, 그 형성의 모체이므로 소모적인 시위만능주의를 배격하고 기층 민중운동으로의 이전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석 1)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항일독립운동, 반분단통일운동, 민주회복운동으로 이어져온 저항의 맥락은 그때마다 수단과 방법을 달리하여 전개되었다. 실제로 1981년부터 반전두환 투쟁은 반유신 투쟁과는 양상이 바뀌었다.

70년대 반유신 저항운동의 중심축이었던 정의구현사제단은 1981년에도 예전의 첨예한 모습이 아니었다. <1981년 가톨릭 일지>에는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주교단의 결정에 따라 그동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펼쳐온 인권회복과 정의구현을 위한 기도회를 이어왔다. 그러나 교구에 따라서는 교구산하 정평위 구성에 비협조적이자 민주화운동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서울ㆍ부산ㆍ대구ㆍ청주 교구장 앞으로 정평위의 조속한 구성을 바라는 '건의서'를 발송."(주석 2)이라 기록됐다.

천주교 내부의 역학관계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주교단의 결정에 따라 정의구현사제단이 해왔던 역할을 정평위가 수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이 해체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1974년 출범 이후 사제단의 활동이 침체된 것은 사실이다.

4월 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사순절을 맞아 평신도 지도교육의 일환으로 월요강좌를 개최하면서 함세웅 신부를 초청, 강론을 들었다. 〈누가 진정으로 우리의 신부입니까〉란 주제의 강론은 이 시기 천주교 내부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 있을 것 같다. 강론 중 <교회는 지금 권력자의 들러리가 아닌가>라는 대목이다.

한국 교회는 억눌린 형제자매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복음선포이며 교회의 근본 소명은 신자들의 사목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성화(聖化)라는 등 여러 주장을 내세워 감옥에 갇히고 짓눌리고 억압받는 많은 형제자매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교회는 진정 어느 부류의 사람에게 이웃이 되고 있습니까? 권력자들의 들러리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다음의 대목도 주목된다.

요사이 우리는 가치가 전도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럴 듯한 구호 아래 새 시대, 새 질서, 정의, 자유, 민주 등 온갖 단어가 난무하고 있지만 그 참뜻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현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전도된 가치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뿐더러 병에 걸린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사회적 스톡홀름 병에서 우리 모두가 치유되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석 3)

이 시기에 정평위와 특히 광주교구사제단의 활동은 치열했다. 5월 18일 5.18 1주년 추도미사를 마친 광주교구사제단은 수감된 심성용 신부와 모든 구속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는 등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정의구현사제단이 10월 26~27일의 피정에 이어 11월 14일 상지회관에서 '오늘의 현실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과 견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 자신이 침묵을 지켜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 현실에 대한 단정적인 규정을 유보하면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의문과 의구심의 내용을 밝힌다."면서 시국 현안을 지적, 비판했다. 〈성명서〉가 지적한 첫 번째 부분이다.

1.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새시대와 구시대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시대의 그릇된 억압의 질서와 비민주적 요소는 그 청산이 이유 없이 유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상의 명문(明文)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된 하위법 체계는 부분적으로는 구시대보다 더 비민주적인 내용과 방식으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자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언론기본법, 사회보호법 등). (주석 4)


주석
1>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394쪽, 2006.
2> <암흑속의 횃불(4)>, 360쪽. 
3> <암흑속의 횃불(4)>, 381~383쪽, 발췌.
4> 앞의 책, 41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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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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