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있는 K리거들이 이 날을 기다려 온 것처럼 펄펄 날았다. 손흥민, 황희찬 등 국가대표 팀 에이스들의 부상 소식에 새 해 첫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지만 벤투호에 모인 K리거들이 그들의 빈 자리를 충분히 메워준 것이다.

상대가 유럽의 최고 레벨은 아니었지만 체격 조건이 고르게 뛰어난 아이슬란드의 수비벽을 정확도 높은 패스 플레이로 허물며 5골을 뽑아낸 것은 분명히 고무적인 결과다. 이용, 김태환 등 삼촌뻘이나 다름없는 베테랑들과 첫 대표팀 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19살 막내 엄지성(광주 FC)의 데뷔 골을 포함하여 무려 네 선수가 A매치 첫 골맛을 봤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5일(토) 오후 8시 터키 안탈리아 마르단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이슬란드와의 평가전에서 5-1로 기분 좋은 대승을 거두고 월드컵이 열리는 시즌 첫 발걸음을 기분 좋게 내디뎠다. 

29분만에 3-0으로 압도해버린 '팀 플레이'
 
 15일(한국시간) 터키 안탈리아의 마르단 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과 아이슬란드의 친선경기. 김진규가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15일(한국시간) 터키 안탈리아의 마르단 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과 아이슬란드의 친선경기. 김진규가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축구 실력을 뽐낼 수 있는 K리거들이 대거 뽑혀 치르는 평가전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미드필더 김진규(부산 아이파크)를 비롯한 우리 대표팀 새 얼굴들은 예상보다 더 잘 뛰었다. 무엇보다 형들과 어울려 만드는 간결한 패스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무리한 솔로 플레이가 거의 보이지 않은 게임이었기에 토요일 밤 TV 앞 축구팬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절로 새어나왔다.

게임 시작 후 15분만에 완벽한 패스 플레이로 첫 골을 뽑아낸 것부터 남달랐다. 오른쪽 풀백으로 나온 김태환부터 시작한 전방 빌드 업 과정이 모두 원 터치 패스 플레이였다. 그 중심에 A매치 데뷔 게임을 치르는 미드필더 김진규가 빛났다. 그의 감각적인 오른발 어시스트를 받은 골잡이 조규성(김천 상무)은 각도를 줄이고 달려나온 아이슬란드 골키퍼 하콘 발디마르손을 완벽하게 따돌리고 오른발 데뷔골을 터뜨린 것이다.

이로부터 약 15분 뒤 게임 시간 29분만에 점수판을 3-0으로 만든 우리 선수들의 자신감은 터키의 하늘로 솟아올랐다. 27분에 까까머리 신병 권창훈(김천 상무)이 이동경(울산 현대)의 왼발 패스 타이밍을 기막히게 읽어내며 빠져들어가 상대 팀 오프 사이드 라인을 완벽하게 허물고 왼발 추가골을 터뜨렸고, 29분에는 K리그1 5년 연속 우승에 빛나는 전북 현대의 두 선수가 완벽한 합작품을 만들어냈다. 송민규가 뒤로 밀어준 공을 잡아놓은 수비형 미드필더 백승호가 과감한 오른발 감아차기로 아이슬란드 골문 오른쪽 톱 코너를 꿰뚫어낸 것이다. 하콘 발디마르손 골키퍼가 자기 왼쪽으로 날아올랐지만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완벽한 골이었다.

아이슬란드도 꽤 많은 멤버들이 A매치 데뷔 게임을 치르는 중이라 그랬겠지만 29분만에 3-0 점수판을 만든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25분에 권창훈의 왼발 페널티킥을 기막히게 막아낸 발디마르손 골키퍼를 포함한 아이슬란드 수비수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하는 기색이 눈에 띄었다. 

벤투 감독은 후반전을 시작하면서 권창훈 대신 이영재(김천 상무)를, 김진수 대신 홍철(대구 FC)을, 김영권 대신 정승현(김천 상무)을 들여보내며 더 많은 선수들에게 뛸 기회를 열어주었다. 

아이슬란드가 54분에 왼쪽 측면 공격으로 한 골(스베이든 귀드욘센)을 따라붙기는 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간결한 원 터치 패스 플레이를 변함없이 펼치며 근래에 보기 드문 대승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완성해 나갔다. 가운데 미드필더 김진규는 72분에 뛰어난 세컨드 볼 집중력을 자랑하며 오른발로 데뷔골을 터뜨렸다. 김진규의 감각적인 패스를 받은 골문 앞 이동경의 왼발 발리슛이 상대 골키퍼 발디마르손에게 막히자 김진규가 따라들어가며 성공시킨 것이다.

86분에는 후반전 교체 선수 둘이 대승의 마침표를 멋지게 찍었다. 이영재가 왼쪽 측면에서 감아올린 크로스를 반대쪽에서 엄지성(광주 FC)이 솟구쳐 올라 헤더로 성공시켰다. 엄지성은 송민규 대신 들어와 뛰다가 10분만에 뜻깊은 데뷔골을 터뜨린 것이다.

이후에도 우리 선수들은 이영재, 홍철 등 뛰어난 왼발잡이 키커들의 날카로운 실력을 자랑하며 몇 차례 위협적인 세트 플레이를 펼쳐 조규성 대신 들어온 골잡이 김건희에게 골과 다름없는 좋은 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솔로 플레이 욕심을 버리고 팀 플레이로 이룬 5-1 대승이어서 더 인상적인 새 해 첫 축구 소식이 된 셈이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돌아오는 금요일에 같은 장소에서 몰도바를 상대로 평가전을 한 번 더 펼친 뒤 레바논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 어웨이 게임을 위해 사이다로 날아간다.

남자축구 대표팀 평가전 결과(15일 오후 8시, 마르단 스타디움, 터키 안탈리아)

★ 한국 5-1 아이슬란드 [득점 : 조규성(15분,도움-김진규), 권창훈(27분,도움-이동경), 백승호(29분,도움-송민규), 김진규(72분), 엄지성(86분,도움-이영재) / 스베이든 귀드욘센(54분)]

◇ 한국 대표팀
FW : 조규성(61분↔김건희)
AMF : 송민규(76분↔엄지성), 이동경, 김진규, 권창훈(46분↔이영재)
DMF : 백승호
DF : 김진수(46분↔홍철), 김영권(46분↔정승현), 박지수, 김태환(61분↔강상우)
GK : 조현우

◇ 이어지는 A매치 일정
2022년 1월 21일(금) 오후 8시 ☆ 한국 - 몰도바 (마르단 스타디움, 터키) 평가전

2022년 1월 27일(목) 오후 9시 ☆ 레바논 - 한국 (무니시팔 스타디움, 사이다)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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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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