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세영이 열연한 성덕임이 극중 정조는 물론이고 MBC까지 살렸다.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연출 정지인 송연화/극본 정해리)(이하 옷소매)이 2022년 1월 1일 16회, 17회 연속 방송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성덕임은 이산(이준호)과 마침내 동침하고 승은상궁이 됐다. 이산은 성덕임을 이용하여 자신을 압박하려는 대비(정순왕후, 장희진)의 계략에 맞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곁에 두기로 결심한다.

성덕임은 끝까지 이산의 후궁이 되는 것을 거부하려고 했으나, 이산은 "평생 나를 보지 않고 살수 있냐"며 "정말로 나를 거부한다면 너를 보내줄 것이다. 대신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성덕임은 결국 이산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돌고돌아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두 사람은 잠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다.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 MBC

 
하지만 짧은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성덕임의 아들 문효세자가 병으로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성덕임은 아들의 임종을 보지 못하고 사망 소식 역시 내관을 토하여 전해 들어야했다. 여기에 성덕임과 가까웠던 궁녀 동무 손영희(이은샘)마저 별감과 사통한 죄를 지어 처형당한다. 마음의 병을 얻은 성덕임은 결국 앓아 눕게되고 남편인 이산과도 갈등을 빚는다.
 
성덕임은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이산은 자신이 아닌 동무들을 먼저 찾는 성덕임에 "너는 나를 조금도 연모하지 않았냐. 작은 마음이라도 내게는 주지 않았냐"고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다. 하지만 성덕임은 "내키지 않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멀리 달아났을 것이다, 결국 전하의 곁에 남기로 한 것이 저의 선택이었음을 모르겠나"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슬픔에 빠진 이산은 성덕임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이산은 성덕임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묵묵히 정치에 매진하며 성군의 길을 걸었지만, 성덕임을 결코 잊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날 성덕임의 조카가 군사로 궁에 들어온 것을 알게 된 이산은 그동안 버려뒀던 성덕임의 처소에서 그녀가 남긴 유품을 보고 슬퍼한다.
 
세월이 흘러 나이든 이산도 병을 얻게 되고, 홀로 찾은 별당에서 과거 풋풋했던 시절 성덕임의 무릎을 베고 누웠던 행복한 추억을 다시 회상한다. 이산의 환상 속에서 다시 만난 성덕임은 그에게 계속 현실로 돌아가라 권하지만 이산은 두 번 다시 성덕임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그러니 날 사랑해라, 제발"이라고 말하며 성덕임에게 진심을 고백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따뜻하게 안았고, 죽음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강미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를 표방했다. 실존인물인 조선의 22대 국왕 정조 이산과 의빈 성씨의 사랑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정조 시대는 워낙 극적인 이야기와 인물상이 넘쳐나다 보니 대중문화에서 여러 장르에 걸쳐 활용된 소재다. 특히 죄인의 자식(사도세자와 임오화변)이라는 태생적 약점과 정치적 격변을 극복하고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성군으로 거듭나는 정조의 인생 여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계급적 질서 뛰어넘으려던 성덕임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 MBC

 
<옷소매>는 훗날 의빈 성씨가 되는 성덕임의 시각으로 정조라는 인물을 재조명한다. 이미 대중문화에서 너무 많이 다루어져서 자칫 식상할 수 있었던 정조 이야기를, 그동안 사극에서는 조연에 머물렀던 '궁녀들'의 관점을 이야기의 주역으로 내세워 풀어낸 신선한 접근법이 돋보였다. 실제로도 의빈 성씨는 정조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으로 알려졌지만, 드라마는 여기서 더 나아가는 극중 덕임을 신분의 계급적 질서를 뛰어넘어 자신의 꿈과 사랑에 솔직당당한 현대여성에 가까운 캐릭터로 재해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신분질서가 엄격하고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조선 시대에 성덕임은 궁녀라는 특수한 신분을 감안해도 무척 '간 큰 여성'이다. 생각시 시절 영빈의 시신앞에서 국왕 영조와 본의아니게 독대로 서슴없이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할아버지가 금지한 서적을 읽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위기에 처한 어린 세손을 구하려고 본능적으로 책을 찢어버리는(실제 역사에서는 홍국영)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나인이 되어서는 세손을 지키려다가 궁궐 생활내내 숱한 위기를 겪고도, 노회한 임금과 중전, 홍국영 등 무시무시한 권력자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보이는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자신이 모시는 주인이자 절대권력자가 되는 이산에게도 그녀의 뻣뻣함은 꺾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산 앞에서 "궁녀도 자신의 의지가 있다"고 당당히 주장하고, "소인은 전하를 연모한 적이 없다. 한 번도 사내로서 바라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단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진심을 숨긴 거짓말까지 서슴없이 저지른다.

한낱 힘없는 궁녀에게 몇 번이나 사랑을 거절당하는 굴욕을 겪으면서도 이산은 끝내 그녀를 밀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속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계급질서를 넘어선 '현대판 밀당'이다.
 
출생의 약점과 정적들 때문에 평생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했던 이산에게 성덕임은 유일하게 순수한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자 유일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덕임은 남자의 일방적인 선택과 보호를 받기만 하는 여인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미래를 개척하려는 능동적인 여성상을 대변하는 캐릭터였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비록 시대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고 그들의 행복은 일찍 막을 내려야했지만, 죽음과 운명조차 갈라놓지 못했던 두 남녀의 진심어린 사랑은 끝까지 시청자들에게 절절한 여운을 남겼다.
 
극중에서는 조연이었지만 정조와 성덕임의 인생에 그림자처럼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영조 역할을 열연한 이덕화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영조-정조의 권력교체기를 보여주는 중반부는 사실 영조가 진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이덕화의 명연기가 빛을 발했다.
 
영조-사도세자-정조의 3대로 이어지는 애증의 관계, 거울처럼 대칭을 이루는 영조와 영빈-이산과 성덕임의 로맨스는 '왕과 인간'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비극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치매에 걸려 흔들리는 병악한 노인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죽인 회한, 권력에 대한 집착, 손자에 대한 사랑까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영조의 감정선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낸 이덕화의 열연은 <옷소매>의 클라이맥스를 한층 풍성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팬들에게 유일한 아쉬움은 17회라는 회차안에 다루어낼 이야기가 너무 많다 보니 정조 등극과 의빈으로 봉해진 이후의 이야기가 너무 축약되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굳센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왔던 성덕임이 정조의 후궁이 된 후 임신과 자식-동무의 죽음으로 궁중여인들의 불행한 전철을 밟으며 급격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이전까지 성덕임의 당찬 행보를 지지해왔던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쓸쓸하고 맥빠지는 결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편으로 실제 인물을 다룬 만큼 아무리 재해석을 한다고 해도 '역사가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 대목이다.

입소문타면서 두 자릿수 시청률 돌파
 

2021년 사극 열풍의 후발주자로 합류한 <옷소매>는 지난해 11월 12일 첫 방송을 시작할 당시에만 해도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은 아니었다. 정조 시대가 많이 다루어진 소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5.7%로 시작했던 <옷소매>는 방영을 거듭될수록 입소문을 타며 방영 4주차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돌파하는가 하면, 드라마 부문 화제성에서 최근 7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마지막 2회가 연속 방송된 16회는 순간 최고 시청률 19.4%(닐슨코리아), 17회가 17.4%(전국 기준)의 평균 최고시청률을 각각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성덕임이 정조의 파란만장한 삶에 한 가닥 빛이 되어주었듯이, <옷소매>는 MBC에 있어서도 구세주와 같았던 드라마였다. MBC 미니시리즈 가운데 2년 만에 10%를 돌파한 작품은 <옷소매>가 처음이었다. 2021년 MBC에서 방영된 모든 미니시리즈와 특집 드라마(일일-주말극 제외)을 통틀어 최고 시청률이다.

이세영과 이준호는 기대 이상의 캐릭터 소화력과 커플 케미를 보여주며 2021 MBC 연기대상에서 나란히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나마 <옷소매>가 있었기에MBC 드라마가 2021년을 마감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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