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kt 대 두산의 경기.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한 kt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1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kt 대 두산의 경기.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한 kt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1년 한국야구는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교차했다. 막내구단 kt 위즈의 첫 우승과 역대급 스토브리그까지 화제들도 많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흥행 부진과 선수들의 연이은 사회적 일탈, 국제대회 부진 등 한국야구의 현실을 보여주는 위기의 적신호들도 쏟아졌다.

올해 프로야구 KBO리그는 그야말로 역대급 순위 경쟁이 펼쳐졌다. 우승팀이 정규리그 마지막 날까지 정해지지 않으며 사상 초유의 1위 결정전까지 치러야 했다. kt가 대구 원정에서 삼성을 1점 차로 제치고 결국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2위 삼성은 비록 정규리그 우승은 놓쳤지만 6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에 진출하며 오랜만에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가을야구는 또 다른 반전의 연속이었다. 정규리그 4위에 그쳤던 두산은 포스트시즌에서 키움-LG-삼성을 연파하고 무려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미라클'을 달성했다. 10개 구단 체제에서 와일드카드 시리즈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에 오른 것은 두산이 최초였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의 주인공은 kt였다. 구단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라는 부담감이 무색하게 kt는 4연승으로 두산을 스윕 하며 창단 첫 통합우승에 성공했다.

2013년 KBO 리그 10구단으로 출범해 2년의 퓨처스리그 경험을 거쳐 2015년 1군 무대에 데뷔한 kt는, 첫 3년간은 꼴찌에 그쳤으나 창단 7년 만인 2021시즌 통합우승에 성공하며 한국프로야구사에 새 장을 열었다. 프로야구 역사상 신생팀 창단 최단기간 우승, 사상 최초 선발 4연승 우승이라는 화려한 기록까지 추가했다. 한국야구의 전설인 이강철 kt 감독은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 출신 우승 감독이라는 이색적인 기록까지 세웠다.

이로써 프로야구는 2020년 제9구단 NC 다이노스의 통합우승(창단 9년, 1군 합류 8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신생 구단들이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는 10구단 체제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던 기존 구단들과 야구계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 신선한 자극이 됐다.

신인 구단 강세, 외국인 감독 신드롬 붕괴... 달라진 KBO리그

상대적으로 전통의 명문구단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젊은 선수들로 리빌딩을 내세운 한화는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고, KIA는 10개 구단 체제에서 구단 역사상 가장 낮은 순위 9위에 머물렀다. 롯데는 시즌 초반 허문회 감독이 경질된 데 이어 4년 연속 가을야구 탈락과 프로야구 역사상 최장기간 연속 무관(29년) 기록을 또 경신했다.

올 시즌에는 특이하게 외국인 감독이 무려 3명(KIA 맷 윌리엄스, 롯데 래리 서튼,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이나 동시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지휘한 팀들이 나란히 8, 9, 10위에 그치며 KBO의 외국인 감독 신드롬은 깨졌다.

SK 와이번스 선수단을 인수하여 새롭게 창단한 SSG는 첫 해 6위에 그치며 아쉽게 가을야구에 탈락했다. 지난 시즌 통합우승팀 NC가 올시즌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일탈과 사건사고 속에서 7위까지 추락한 것도 이변이었다.

KBO리그 최우수선수는 3년 연속 외국인 선수가 차지했다. 두산의 투수 아리엘 미란다는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하며 정규리그 MVP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독식했다. 특히 미란다는 올 시즌 무려 225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한국야구의 전설 고 최동원의 1984년(223개) 기록을 무려 37년 만에 갈아치우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KBO리그는 최근 7년간 5명이나 외국인 선수가 MVP를 차지하며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10일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 외야수 부문 수상을 한 키움 이정후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1.12.10

10일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 외야수 부문 수상을 한 키움 이정후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키움의 간판타자 이정후는 올 시즌 타격왕(타율 .360)을 차지해 부친 이종범 LG 코치(1994년)에 이어 사상 첫 부자 타격왕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한국보다 역사가 오래된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찾기 힘든 업적이다. 오승환(삼성)은 44세이브를 올리며 9년 만의 구원왕에 이어 최고령 40세이브 기록을 세웠다. 홈런왕 최정(SSG)은 역대 두 번째로 40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빛나는 족적을 세운 추신수는 올해 SSG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진출하여, 만 39세의 나이에 KBO 리그 역대 최고령 20홈런-20도루-100볼넷 기록도 세우며 클래스를 증명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한 해외파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시즌이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간판 류현진(토론토)은 개인 최다승 타이인 14승을 달성했으나 시즌 후반기 극심한 부진에 빠지며 개인 최다패(10패), 4점대 평균자책점(4.37)으로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올해 빅리그에 새로 입성한 김하성(샌디에이고)도 로테이션 멤버에 그치며 올 시즌 117경기 267타수 54안타(.202), 8홈런, 34타점, 6도루의 성적을 남겼다.

김광현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7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했다. 올해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 계약이 만료된 김광현은 FA 신분이 돼 거취를 고민 중이다. 양현종은 텍사스에서 12경기에 등판해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5.60에 그치며 1년 만에 국내로 컴백하여 친정팀 KIA 타이거즈로 돌아왔다.

최지만(탬파베이)은 소속팀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지만 개인으로는 부상자 명단에만 세 번이나 오르는 고전 끝에 83경기 타율 .229, 11홈런 45타점에 그쳤다. 박효준(피츠버그)은 첫 시즌부터 뉴욕 양키스에서 트레이드되는 우여곡절 끝에 45경기 타율 .195, 3홈런 14타점을 기록했다.

리그 중단과 도쿄 올림픽 참사... 쏟아진 비난 여론

올해 한국야구가 가장 뼈아프게 돌아봐야 할 부분은 팬들의 호응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정상적인 관중 동원에 어려움을 겪으며 흥행 부진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했다. 그나마 거리두기 완화로 조금씩 유관중 경기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전성기에는 턱 없이 못 미치는 123만 명의 관중(2020년 관중 33만)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불안 요소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프로야구에 치명타를 안긴 것은 바로 선수들의 도덕적 일탈이었다. 지난 7월 NC(박석민, 박민우, 권희동, 이명기)와 키움(한현희, 안우진) 선수들이 각각 원정 숙소와 외부 호텔 등에서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겨가며 일반인들과 술판을 벌인 것이 드러났다. 자리에 참석했던 선수들 중 코로나19에 감염자가 다수 발생하며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선수들의 연이은 확진은 초유의 리그 중단 사태까지 이어졌다. KBO는 전반기 일정을 예정보다 1주일 앞서 끝냈는데 이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 여파로 NC는 대표이사와 단장 등 구단 수뇌부들까지 경질됐다.

또한 이 과정에서 KBO가 코로나 대응 매뉴얼을 지키지 못하고 리그 중단을 강행한 점. 몇몇 구단들이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중단을 부추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 사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프로야구의 국민적 인기를 등에 업고 부와 명예에 도취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던 프로야구계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설상가상 곧바로 이어진 '도쿄올림픽 참사'는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2008년 베이징 대회 금메달 이후 13년 만의 2연패를 위해 도쿄로 향했던 김경문호는 선수 구성 단계에서부터 경기 운영, 실력, 투지 등 모든 면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6개 팀 중 4위로 노메달에 그쳤다. 실력이 하향 평준화된 KBO리그에서 스타 대접을 받던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한국야구의 실력 거품, 세대교체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처럼 안팎으로 야구계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선수들의 몸값은 오히려 더욱 치솟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올해 프로야구 스토브리그는 정규시즌 이상으로 뜨거웠다. 현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풀린 돈은 무려 937억 원으로 2016년 766억2000만 원을 아득히 추월한 역대 최고액이다.
 
 외야수 나성범이 프로야구 역대 자유계약선수(FA) 최고액 타이기록을 세우고 KIA 유니폼을 입는다.

외야수 나성범이 프로야구 역대 자유계약선수(FA) 최고액 타이기록을 세우고 KIA 유니폼을 입는다. ⓒ KIA 타이거즈 제공

 
KIA는 NC 출신 나성범과 역대 최대 규모 타이인 6년 총액 150억 원,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양현종과 4년 총액 103억 원에 계약을 맺는 등 무려 253억 원을 쏟아부었다. 두산 김재환과 LG 김현수는 각각 총액 115억 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으며 원소속팀에 잔류했다. 박건우는 두산을 떠나 NC 유니폼을 입으며 총액 100억 원을 기록하며 올해 한 해에만 무려 다섯 명의 '100억 클럽' 가입자를 배출했다.
 
이밖에 kt가 우승 멤버 황재균(4년 60억)과 장성우(4년 42억)를, 삼성이 강민호(4년 36억)와 백정현(4년 38억)을, 한화는 최재훈(5년 54억)을 잔류시켰다.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 손아섭은 4년 64억에 NC에 새 둥지를 틀었다. FA는 아니지만 올해부터 도입된 비FA 다년 계약 제도로 SSG 랜더스가 한유섬(5년 60억), 박종훈(5년 65억), 문승원(5년 55억 원)을 잡은 것을 감안하면 선수 계약 총액이 이미 1000억 원을 훌쩍 넘겼다. 여기에 아직도 박병호, 정훈, 허도환 등 굵직한 준척급 FA들이 남아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적 시장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광풍은 장기적으로 한국 프로야구 산업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19로 수익이 크게 줄어들면서 재정을 사실상 모기업에 의존하던 프로구단들이 더욱 힘든 상황에 봉착했고, 선수들의 실력이나 스타성이 전성기보다 더 나아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야구선수들의 연이은 일탈에 팬들이 점점 실망하고 등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는 야구계에 결코 좋지 않은 조짐이다. 프로야구 산업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 혹은 퇴행의 기로에 놓여있는데 몇몇 스타 선수들의 배만 점점 불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한국야구의 미래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냉정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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