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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편집자말]
[기사 수정: 24일 오전 11시 30분]

올해를 잘 버텨낸 당신에게, 성애가 드립니다


(* 아래 오디오 버튼을 누르시면 편지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지낭독 서비스는 오마이뉴스 페이지에서만 가능합니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 · 16번째 편지: 대통령, 가장 크게 '아파하는' 사람을 뽑겠다

편지를 잘 쓰고 싶어 요가를 하고 왔습니다. 쓰기 전 몸을 굴리면 이슬아 작가 같은 필력이 나올까 싶어서요. 요즘 저는 다시금 운동하는 페미니스트인데, 주말엔 2030 여자 친구들과 함께 풋살을 하고 주중엔 요가를 합니다. 제 요가 선생님은 늘 말합니다. 너무 무리하진 말고 동작이 가능한 만큼, 몸이 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요.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말은 제가 10여 년 전 낙상사고를 당한 뒤 병원에서 혼자 자주 되뇌던 말이기도 한데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양다리 정강이뼈가 모두 부러져 걸을 수가 없었거든요. 휠체어 생활을 1년 남짓 하고 발목재활운동을 또 1년 정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저는 주말마다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공을 차고 있어요.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최근 저는 틈날 때마다 SBS 여자축구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찾아보곤 합니다.
 최근 저는 틈날 때마다 SBS 여자축구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찾아보곤 합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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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틈날 때마다 SBS 여자축구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찾아보곤 해요. 골문을 시원하게 때리는 송소희-황소윤, 일명 '쌍소'의 활약을 보다 보면 속에서 '나도 축구 잘하고 싶다'는 결의가 막 차오릅니다. 실제론 아니지만요. (못 간 날도 있었지만) 10월 초부터 했으니 무려 꼬박 3개월을 연습했는데, 아직도 골 한 번 못 넣은 저 실화인가요? 정작 저는 잊고 있었는데, 지난주 '데뷔골 넣자!' 외치던 친구 말에 현실을 깨닫곤 약간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습니다(그날도 못 넣었어요...ㅋㅋ).

대통령, 가장 크게 아파하는 사람

운동 얘기를 기일-게 했는데, 실은 정치 얘기가 답답해서예요. 저는 정치부 에디터라 대선 기사를 계속 보는데 미간이 찌푸려지는 뉴스들이 많았거든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의혹,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아들 문제가 잇달아 터지는데… 환멸감이 들어 기사를 끝까지 읽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제가 유심히 본 건, 대선후보들이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였습니다. 나이·성별·장애, 성적 지향과 학력 등 어떤 이유의 차별이건 막자는 차별금지법이 대표적 예일텐데요. 특히 제겐 이 장면이 마음에 가시처럼 걸려 자꾸 떠올랐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과거) 발언에 사과하라'고 외치는 청년들을 마주친 이재명 후보가 "다 했죠?"라 짧게 답한 뒤 지나간 일이요(관련 기사: "차별금지법 발언 사과하라" 청년들에 "다 했죠?" 물은 이재명)
 
12월 7일 서울대 강연회에 참석하러 가던 이재명 후보가 강연장 입장 직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시위자들을 만났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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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차별금지법은 개인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11월 25일)" "법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12월 14일)"는 등 발언을 한 윤석열 후보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재명 후보가 딱히 더 나아 보이지도 않는 건 왜일까요. 정의당이 "잔인한 미소"라 주장한 당시 표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약간의 존중이라도 있었다면, 이 후보가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었을 것 같아서요(안타깝게도 현재 법 제정에 온전히 찬성하는 대선후보는 딱 한 명, 심상정 정의당 후보뿐입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2017년 5월 대선을 전후로 쓴 칼럼들에서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한다"고 짚은 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더 깊게 느끼는 이에게 투표하리라 결심했다면서요(<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191~204쪽).

"타인에게 열려 있는 통각이 마비돼 있거나 미발달된 이들이 하는 정치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는 그런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대통령(大統領)이 대통령(大痛領)이면, 우리 중에 가장 크게 아파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보통 사람들, 여성들의 삶을 아는 정치인

제 엄마 순호씨는 오는 12월 30일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요. 공공 의료원 세탁실에서 세탁원으로 만 31년을 꼬박 일하셨어요. 저를 낳고 잠시 쉬다가 1990년 입사해 한 해도 쉬지 않고 일한, 피와 오물이 묻은 환자복들을 빨래해 자식들을 다 공부시킨 엄마. 순호씨에게 전화해 은퇴를 앞둔 심정을 물으니 "싱숭생숭해, 믿기지가 않아"라며 웃으시네요. 그 순간 멋진 워킹맘이 아니라, 가난한 남편을 따라 와 외지에서 고생하며 산 여성이 보여서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갑작스레 엄마 얘길 꺼낸 이유는 여성들의 지난한 삶이 반복되고 있다는 얘길 하고 싶어서예요. 최근 통계청(12.14) 자료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 아닌 현실이었거든요. 한국에서 1983년 태어난 기혼 여성 4명 중 1명은 출산 뒤 직업을 잃는 경력 단절을 겪었다고 합니다(2019년 기준, 전체의 25.5%). 반면 1983년생 남성의 경우, 10명 중 1명을 뺀 9명(93%)이 결혼·출산에 관계없이 경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통계청 발표(12.14)에 따르면, 혼인과 출산 유무에 따른 남녀의 직업유지 차이는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통계청 발표(12.14)에 따르면, 혼인과 출산 유무에 따른 남녀의 직업유지 차이는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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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친구들을 보면 경력 단절은 흔한 얘기입니다. OECD는 보고서(2020.8)를 통해 이런 젠더불평등이, 한국이 매년 OECD국 중 가장 큰 성별 임금 격차를 보이는 이유라 지적합니다(2018년 기준, 남성이 1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600원을 버는 식이에요). 최근 제 주변엔 육아로 단축근무를 신청했더니 상사가 '승진은 포기했느냐'고 물었다던 친구도 있어요. 지난해 출산율이 1명(0.84명)이 채 안됐던 이유, 그 원인도 여기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런 보통 사람들 아픔에 공감하는 대통령을 뽑고 싶습니다. 자신이 겪지는 않았어도 타인의 선 자리, 그가 느낄 고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행동하는 정치인 말이에요. 성착취물 유통을 막으려 도입한 'n번방 방지법'을 국민의힘이 '사전검열'이라 우기는 등, 마주하는 현실은 절망적이지만요(관련 기사: "n번방 방지법은 사전검열법" 국민의힘 주장 '대체로 거짓').

1주일 뒤면 새해네요. 그간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언제나 "할 수 있는 만큼"을 되뇌였던 것 같아요. 편지를 쓰며 저는 반려묘 쨔삐를 만나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됐고, 심리치료와 요가·풋살을 시작해 마음과 몸이 더 단단해졌어요. 돌아보니 우리는 차별금지법·생활동반자법을 비롯해 교제살인과 모성쓰기운동, 난민 인권과 젠더데이터 공백(월경 장애) 등 참으로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네요. 

올해 당신에겐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요. 답장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차별금지법은 나중에'를 외치는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픈 비트 하나, 캐럴 대신 들을 만한 신나는 곡을 소개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필수 비트(Beats for Social Consensus)'

"그거 나중에 해, 나중에. 네가 자는 거 먹는 거 싸는 거 사는 거, 그거 사회적 합의될 때 나중에 해. 그 인생 그거 나중에 살아, 지금 그거 살 때가 아니야. 너 말고 살겠다는 인생 줄 선 거 안 보여?"

이런 세상이라면 대선도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요? (웃음) 
 

2021년 12월 23일
한 해 동안 살아낸 우리를 칭찬하며, 성애 드림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 긍정적인 피드백과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편지를 즐겁게 읽으셨다면, 여기(링크)를 눌러 응원을 남겨주세요.

덧붙이는 글 | 기사는 추후 개인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 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회복지사.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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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편집부.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자세히 보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A political reporter. I'm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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